이어 열반당에서 5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다비장인 최초의 불탑인 라마바르 스투파(Ramabhar Stupa) 참배를 위해 이동했다. 소똥처럼 보이는 독특한 형태의 탑이 보였다. 붉은 벽돌로 쌓아서 만든 탑이었다. 이것이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난 직후에 만들어진 소박한 형태의 다비장이다. 이 다비장은 47미터의 원형 연단 위에 높이 34,14미터의 반구형태로서 부처님이 열반에 들어선 곳에 세워진 탑이다. 또한 이곳에서 부처님의 다비식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 최초의 불탑 라마바르 스투파. 열반당에서 5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다비장으로 소똥 모양을 하고 있다.

부처님의 다비 때에는 사리가 3말이나 나왔다고 하며 다비 후 남겨진 사리는 8개국의 나라에 분배되었다고 한다. 다비장의 옆쪽에는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몸을 씻고 물을 마신 히라이냐바티(Hirainyavati)강이 현재도 남아 있어 입멸하신 부처님의 뜻을 전하고 있다.

다음 일정지 쉬라바스티는 부처님께서 가장 오래 머무르셨던 기원정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옛날 사위성이 누렸던 영광은 정글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지만 그 성터 안에는 앙굴리말라의 스투파와 수닷타 장자의 스투파를 만나볼 수 있었다.

여기서 기원정사는 기수급고독원정사(祇樹給孤獨園精舍)의 약자이다.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 주 북쪽, 사위성지(舍衛城址, 마헤트 [Maheth])남문 밖의 사헤트(Saheth) 숲이 이에 해당되는 지역으로서  200×500m 약 3만여 평의 불교사원터이다. 기수급고독원이란 문자그대로 기수(祇樹)가 고독(孤獨)에게 주었다는 뜻으로 기수란 인도 마가타국의 기타태자(祇陀太子)를 의미한다. 

고독은 고독장자를 의미하는데 이 사람은 오늘날 밝혀진 바로는 해상실크로드를 장악하고 있던 거상으로 부처님께 귀의한 후 부처님이 기거하시고 설법하실 장소를 기부하기로 결심하고 당시 태자의 소유였던 이 정원을 구입하기를 청했다. 팔 의사가 없었던 태자는 정원전체를 금화로 깔면 팔겠다고 했다. 이에 장자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금을 가져와 깔기 시작했다. 오늘날 돈으로 계산하면 황금 5억 그램으로 USD.200억불이다. 

태자는 고독장자의 진짜 의중을 파악한 후 감동하여 정원의 모든 시설을 기증했고 이에 기수급고독원정사로 이름지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 사원의 별칭은 포금정사(布金精舍)이다. 부처님은 이곳에 거하시면서 많은 설법을 행했는데 특히 대승불교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금강경을 설법 하셨다.  

▲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순례단.

쉬라바스티의 기원정사를 들러 룸비니까지 가는 길은 인도와 네팔의 국경선을 넘어야했다. 쉬라바스티에서 국경선까지는 약5시간 소요 되었다. 국경선의 마을이름은 ‘소나울리(Sonauli)’. 막대하나 걸쳐놓은 것으로 국경선을 표시하고 있다.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룸비니는 불교의 4대성지로 네팔국경에 있다. 룸비니는 원래 인도땅이었는데 근대 인도가 독립을 하면서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등으로 나뉘다 보니 국경에서 머지않은 곳이지만 비자를 밟는 등 번거로운 과정을 통하는 의례를 거쳐야 오가는 곳이 됐다. 룸비니 동산의 사원에 들어 갈 때는 신발을 모두 벗어야 했다. 입구 쪽에 덧버선이 준비되어 있었다. 룸비니는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불교의 성지순례지이므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길이 잘 정비돼 있다. 이곳에 마야부인당(摩耶夫人堂)과 그 앞에는 목욕지(池)가 있고, 그리고 마야부인 뒤쪽에 부처님 탄생지였음을 알리는 아쇼카대왕의 석주(石柱)가 자리한다.

우리는 이후 포카라에서 여정을 풀고 히말라야 산맥에 펼쳐진 설경을 감상하며 최종목적지인 담푸스까지 트레킹을 했다. 이때 눈에 들어 온 안나푸르나산은 결코 잊지 못한다. 구름 위에 하얗게 솟아있는 광경은 참으로 신비스럽고 환상적이었다.

▲ 보드나트 대탑 앞. 맨 왼 쪽이 필자 김상규 박사다.

2015년 2월 1일 오전 9시 50분 우리는 네팔 최대 사원지 보드나트에 들렀다. 보드나트는 네팔에서 가장 높은 사리탑으로 티베트와 네와르족 불교신자들의 숭배지이기도 하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높이는 38미터로 5세기경에 축조됐다. 탑은 4개의 방형(方形) 기단부 위에 세워져 있으며 돔과 정상부 사이에는 13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첨탑이 있는데 이것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13단계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탑 이름을 보디(Bodh: 깨달음)의 나트(Nath:사찰), 즉 보드나트(Bothnath)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불탑의 두 눈은 한눈은 용서를, 다른 한눈은 화해를 의미한다. 보드나트 대탑의 주변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불교송가는 주변의 평화로움을 더해준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옴마니반메홈(부처님은 내 마음에 있다)을 따라 봉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날 2일 아침 인천상공에서 아침을 맞았다. 짧은 기간 동안 성지순례를 마치고 고국으로 들어서는 일행들의 얼굴에는 마냥 밝은 빛이 감돌고 있었다. 끝으로 본 기행문이 작성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신 팀원 모든 분들과 특히 사진을 제공해 주신 당시 108사108배 성지순례팀 회장(고봉 임외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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