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허 성우(1846~1912)

스님의 풍모와 일상생활을 말하면, 신장은 크고 용모는 고인(古人)과 같았으며, 뜻과 기운은 과감하고 음성은 큰 종소리 같았으며, 걸림 없는 변재(辯才)를 갖추었으며, 세상의 일체 비방과 칭찬에 동요하지 않음이 산과 같아서 자신이 하고 싶으면 하고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두어 남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았다. 그래서 술과 고기도 마음대로 마시고 먹었으며 여색(女色)에도 구애되지 않은 채 아무런 걸림 없이 유희(遊戱)하여 사람들의 비방을 초래했다. 이는 이통현(李通玄)·종도(宗道)와 같은 옛사람들처럼 광대한 마음으로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증득하여 자유로이 초탈한 삶을 산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면 때를 만나지 못하여 하열(下劣)한 사람의 자리에 자신을 숨긴 채 자신을 낮추고 도(道)를 스스로 즐긴 것이 아니겠는가. 홍곡(鴻鵠)이 아니면 홍곡의 큰 뜻을 알기 어려운 법이니, 크게 깨달은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작은 절개에 구애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님의 시에,

술도 혹 방광하고 여색도 그러하니
탐·진·치 번뇌 속에서 나귀의 해를 보내노라

酒或放光色復然 貪嗔煩惱送驢年

부처와 중생을 나는 알지 못하노니
평생토록 술 취한 중이나 되어야겠다

佛與衆生吾不識 平生宜作醉狂僧

라 하였으니, 스님의 일생 삶의 모습을 잘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안거(安居)할 때는, 음식은 겨우 숨이 붙어 있을 정도로 먹고 종일토록 문을 닫고 앉아서 말없이 침묵하며 사람을 만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큰 도회지에 나가 교화를 펴기를 권하니, 스님은 말하기를 “내게 서원(誓願)이 있으니, 발이 경성 땅을 밟지 않는 것이다.” 하였으니, 그 우뚝하고 꿋꿋한 풍모가 이와 같았다.

천장암(天藏庵)에 살 때에는 추운 겨울에도 더운 여름에도 한 벌 누더기를 갈아입지 않아 모기와 파리가 온 몸을 에워싸고 이와 서캐가 옷에 가득하여 밤낮으로 물어뜯어 피부가 다 헐었는데도 고요히 움직이지 않은 채 산악처럼 앉아 있었다. 하루는 뱀이 몸에 올라가 어깨와 등을 꿈틀꿈틀 기어갔다. 곁에 있던 사람이 보고 깜짝 놀라 말해주었으나 태연히 개의치 않으니, 조금 뒤 뱀이 스스로 물러갔다. 마음이 도(道)와 합일한 경지가 아니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한번 앉아서 여러 해를 찰나처럼 보내더니, 하루는 절구 한 수를 읊었다.

속세와 청산 어느 것이 옳은가
봄이 오매 어느 곳이건 꽃이 피는 것을
누가 나의 경지를 묻는다면
돌계집 마음속 겁외가라 하리라

世與靑山何者是 春城無處不開花
傍人若問惺牛事 石女心中劫外歌

그리고는 짚고 다니던 주장자를 꺾어서 문 밖에 집어던지고는 훌쩍 산을 나와서 곳곳마다 다니면서 교화를 펴되 형식이나 규율의 굴레를 벗어났다. 때로는 저잣거리를 유유자적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섞여 어울리고, 때로는 산 속의 솔 그늘 아래 누워 한가로이 풍월을 읊음에 그 초일(超逸)한 경지를 사람들은 헤아려 알 수 없었다. 때로 설법할 때는 지극히 온화하고 지극히 자상하여 불가사의한 묘지(妙旨)를 설명하였으니, 선(善)도 철저하고 악(惡)도 철저하여 수단(修斷)으로써 수단할 수 없는 경지라고 할 만하다. 게다가 스님은 문장과 필법도 모두 뛰어났으니, 참으로 세상에 드문 위대한 인물이었다.

해설

한암(漢巖 : 1876~1951)이 지은 <선사경허화상행장(先師鏡虛和尙行狀)>의 일부이다. 경허(鏡虛)를 모시고 공부했던 한암이라 경허의 풍모를 누구보다 잘 알고 형용하였을 터라 경허의 글을 연재하기에 앞서 소개한다. 지리산에서 경허를 친견한 분들의 말에 의하면, 경허는 얼굴이 매우 검고 키가 컸다고 한다.

이통현(李通玄 : 635~730)은 중국 당(唐)나라 때 사람으로 승려가 아니라 속인으로 장자(長者)라 일컬어진다. 그는 두 여인의 시봉을 받으며 불후의 명저인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을 저술하였다. 종도(宗道)는 송(宋)나라 때 승려로 선지(禪旨)는 깊었으나 술을 매우 좋아하여 늘 술에 취해 지냈다. 하루는 목욕하는 중에 누가 술을 가지고 왔다고 하자 벌거벗은 몸으로 나와서 술을 받아 들고 들어갔다고 한다. 남의 비방과 칭찬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진솔하게 산 경허의 모습과 흡사하다.

‘선(善)도 철저하고 악(惡)도 철저하여 수단(修斷)으로써 수단할 수 없는 경지’란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나오는 사정단(四正斷)의 하나로, 수행해서 정도(正道)를 짓고 그 정도가 점점 자라서 악(惡)을 끊어 없애는 것이다. 경허는 선과 악에 모두 철저하여 선악의 경계를 벗어났으므로 바른 도를 닦아서 악을 제거하는 유위(有爲)의 수행에 머물 수 없는 초일(超逸)한 경지에 있다는 뜻이다.

경허는 때로는 음주 식육을 하는 일탈도 서슴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자기 수행에 철저했다. 또한 큰 도회지에 나가서 활동하면 신도들이 많이 따라 여불(如佛) 대접을 받으며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을 터인데도 발로 경성 땅을 밟지 않기로 맹서했다고 한 사실에서 그가 명리(名利)를 멀리한 맑고 곧은 지조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문하에서 근세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고승들이 배출될 수 있었겠는가. 무애행 일면만으로 경허의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술도 혹 방광(放光)하고 여색도 그러하니 酒或放光色復然
탐·진·치 번뇌 속에서 나귀의 해를 보내노라 貪嗔煩惱送驢年

<불명산 윤필암에 들러서 우연히 읊다〔過佛明山尹弼庵偶吟〕>란 제목의 절구 중 앞의 두 구(句)이다. 방광은 원래 불보살(佛菩薩)이 하는 것인데, 술과 여색(女色)도 방광한다고 하였다.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이 본래 부처라 하였고, 나아가서 온 우주의 삼라만상이 마음 아닌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좋다 싫다, 중생이다 부처다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술과 여색도 고기도 부처의 모습 아님이 없다는 것이다. 나귀는 십이간지(十二干支)에는 없는 동물이다. 따라서 나귀의 해란 본래 없다. 그런데 왜 나귀의 해를 보낸다고 했을까. 불교에서는 시간과 공간은 원래 없다고 한다. 원래 우주는 전체성인 하나의 성품〔一性〕 뿐인데, 사람들이 스스로 세상과 세상에 대응하는 나를 설정해 놓음으로써 공간이 벌어지고 공간의 전개되는 모습을 보고 시간이 가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탐(貪)·진(嗔)·치(癡)를 삼독(三毒)이라 하여 일체 번뇌의 근본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이 본래 없고 온 우주가 하나의 성품 뿐이라면, 탐?진?치 삼독도 그 자성(自性)이 따로 없어 그 자체가 본래 공(空)하다. 따라서 번뇌 망상이 일어나는 이대로 번뇌 망상이 본래 없는 것이다. 세상의 번뇌 속에서 본래 번뇌가 없는 세계에 노니는 경허 자신의 심경을 표현한 것이다.

부처와 중생을 나는 알지 못하노니 佛與衆生吾不識
평생토록 술 취한 중이나 되어야겠다 平生宜作醉狂僧

<술 취하여〔作醉〕>란 제목의 절구 중 앞의 두 구이다. 불교는 본래 불이법(不二法)이다. 불이법이라면, 세상의 모든 차별상(差別相)이 둘이 아니고 그 차별상이 둘이 아님을 보고 있는 나도 그 차별상의 세계와 둘이 아니다. 따라서 성불(成佛)을 목표로 삼지만, 부처를 좋아하고 중생을 싫어한다면 그것은 바로 중생의 분별심이요 불이법이 아니다. 그래서 경허는 깨닫고 보니 부처니 중생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덧없는 말일 뿐, 모두가 본래 한 성품의 현현(顯現)일 뿐이니, 불법(佛法)을 말하는 따위의 좀스럽고 구차한 짓은 하지 않고 그저 술이나 마시며 살겠다고 한 것이다.

속세와 청산 어느 것이 옳은가 世與靑山何者是
봄이 오매 어느 곳이건 꽃이 피는 것을 春城無處不開花
누가 나의 경지를 묻는다면 傍人若問惺牛事
돌계집 마음속 겁외가라 하리라 石女心中劫外歌

이 시는 경허가 동학사에서 오도(悟道)하고 천장암(天藏庵)에서 소위 보임(保任) 공부를 마친 뒤에 읊은 것으로 자신의 경지를 가장 간약(簡約)하고 분명히 표현하고 있다. <제홍주천장암(題洪州天藏庵)>이란 제목으로 《경허집》에 실려 있다.

봄이 오면, 청산 속이든 속세 저잣거리든 어느 곳이고 꽃이 피듯이 속세와 청산이 본래 둘이 아니고 한 성품의 표현일 뿐이다. 그래서 경허는 이 게송을 읊은 뒤로 산을 내려가 저잣거리에서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청산 속에서 한가로이 선열(禪悅)을 즐기기도 했던 것이다.

겁외가(劫外歌)는 겁 밖의 노래란 말로 생사를 벗어난 해탈의 노래를 뜻한다. “돌계집 마음속 겁외가”, 이것은 경허가 일상에서 보고 느끼는 자신의 경계(境界)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중생은 본래 전체성(全體性)인 하나의 불성(佛性)이 본래의 자기임을 잊고 세상과 세상을 대응하는 자기가 따로 있는 줄로 착각하여, 그 자기와 세상 사이에서 끊임없는 번뇌와 갈등을 일으킨다. 이렇게 세상과 나를 분별하는 생각을 정식(情識)이라 한다. 사람들은 이 정식으로 세상을 대응하고 사물을 파악하는 과정을 두고 자신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며, 정식을 놓으면 공허(空虛)한 데 떨어져 자신은 죽어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래 나도 없고 내가 따로 대응할 세상도 없어 오직 하나의 성품뿐이므로, 정식은 일어나되 일어나는 그 자리〔當處〕가 본래 텅 비어 공(空)하다. 따라서 정식이 허공꽃과 같이 체성(體性)이 없는 것임을 투철히 알면, 정식이 아무리 일어나도 나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정식이 일어나되 일어남이 없어 자신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경계를 아무런 감정이 없는 ‘돌계집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겁외가’라고 표현한 것이다. 경허의 제자인 만공(滿空)은 함경북도 갑산(甲山) 웅이면(熊耳面) 난덕산(難德山) 아래에서 경허의 법구를 다비할 때 “예로부터 시비에 여여한 분이 난덕산 아래에서 겁외가를 그쳤네〔舊來是非如如客 難德山止劫外歌〕.”라고 읊었다. 돌계집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을 뜻하는 말로도 쓰이지만, 여기서는 목녀(木女), 석인(石人)과 같은 말로 돌로 만든 사람이란 뜻이다.

글쓴 이 : 이상하

민족문화추진회 상임연구원과 전문위원 및 조선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교수로 재직하며 한문 고전을 번역할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저서로 《냉담가계》, 《주리철학의 절정 한주 이진상》, 《퇴계 생각》 등이 있고, 번역서로 《십지경론》, 《십송률》, 《한암·탄허 선사 서간문》, 《월사집》, 《용재집》, 《읍취헌유고》, 《석주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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