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가야에서 1박을 하고 왕사성(王舍城)으로 향했다. 왕사성은 주변에 5개의 언덕으로 둘러싸인 좋은 조건을 갖춘 부처님 당대의 강국이었던 마가다왕국의 수도였다. 이곳에서 부처님은 당대의 빔비사라왕과 수십만 명의 바라문과 장로들에게 설법을 펼쳤으며 오랜 기간 머물기도 했다.

왕사성을 거쳐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영축산에 올랐다. 영축산 설법좌는 비탈길을 따라 올라야 하는데 순례자들을 위해 잘 다듬어져 있었다. 설법좌에 이르기까지 중간에 ‘아난존자’와 ‘사리불존자’ ‘마하가섭존자’의 동굴이 나온다.

설법좌의 여래향실에는 참배 순례자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부처님이 이곳 영축산 설법좌에서 법회를 갖는 장면을 가리켜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고 한다. 여래향실에서 참배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사리불과 목련존자, 아난존자의 수행처인 석굴에 예를 올렸다. 이어 빔비사라왕의 감옥터를 방문했다. 감옥터는 돌담만 둘러 처진 공터였다.

우리 일행은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곧 나란다 대학으로 향했다. 나란다 대학은 약 1500년 전 굽타왕조의 쿠마라쿱타왕 시대에 건립된 세계 최초의 불교대학이자 건립 당시 세계최대의 종합대학이었다. 그러나 11시기 경 이슬람 세력의 침략으로 파괴되어 현재는 빈 터만 남아있다. 이 대학은 파괴될 때까지 전 아시아 불교연구 중심지였다. 당시 인도 각지와 한국, 중국, 일본, 몽고, 스리랑카, 등 각국에서 온 만여 명의 학생들과 승려들이 기거했다하며 중국의 용수(龍樹:Nagarjuna), 무착(無着:Asanga), 현장법사도 5년간(AD 637~642)이곳에 머물러 수학했다. 나란다대학은 가로 10㎞, 세로 5㎞의 면적이 말해주듯 그 규모가 컸다.

나란다 대학의 순례를 마치고 죽림정사로 발걸음을 했다. 죽림정사는 중인도(中印度) 마가다(Magadha)에 있었던 최초의 불교사원으로 인도 승원(僧院)의 시초라 할 수 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성취한 초기 이곳에 머물며 자주 설법하셨다. 죽림정사는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이 부처님께 자신의 벨루바나 동산을 기증해 만든 것이다.

죽림정사에서 참배를 마친 우리는 다시 부다가야로 떠났다. 부다가야로 가는 길에는 부처님께 유미죽을 공양 올린 수자타(Sujata)의 생가가 있었다. 생가에는 수자타 스투파가 세워져 있고 생가에서 멀리 않은 곳에 니란자나 강이 흐른다. 거기에서 2천6백년전 6년 고행으로 지치디 지친 몸을 강물에 씻고 있는 부처님을 본다.

▲ 캐라시아 대탑 앞에서

2015년 1월 27일 우리는 부다가야 마하보디사원에서 아침을 맞았다. 이날은 성도재일. 우리는 마하보디 대탑(Mahabodhi Stuva)에서 아침기도를 시작하는 것으로 일정에 들어갔다.
마하보디 대탑은 기원전 3세기경 아쇼카왕이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자리에 세웠다고 한다. 높이가 55m나 되는 이 탑은 방추형의 9층탑으로 3km 떨어진 곳에서도 보이는 웅대한 탑이다. 단, 현재의 탑은 아쇼카왕 때 세워진 것이 아니고, 중국의 법현과 현장의 기록에 따르면 409년과 637년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대탑 주위에는 세계 각지의 불교도들이 건립한 봉헌탑이 있으며, 외벽 감실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다. 대탑 서쪽에 있는 금강보좌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자리로 보리수 한그루가 심어져 있다. 기도를 마치고 유마경의 설법지 바이샬리(Vaishali)와 열반지인 쿠시나가라(Kusinagara)로 향했다. 우리는 바이샬리에서 릿차비족(族)이 세운 사리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어 캐사리아에 도착해 대탑을 참배했다. 캐사리아는 부처님이 처음 가사를 입고 삭발한 장소다. 캐사리아 대탑은 발우 위에 탑을 세워 일명 ‘바루대탑’이라고 했으며 만드라왕식으로 건립됐다. 인도의 바이샬리는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다. 북인도 최초의 공화국을 꾸렸던 릿차비왕국의 수도이기도 하며. 부처님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여성의 출가를 허락했다.

우리는 이날 늦은 오후 5시 쿠시나가르에 도착해 열반당으로 향했다. 열반당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바닥이 벽돌로 깔려져 있고 좁은 길과 길옆에는 울타리 역할을 할 수 있는 낮은 사철나무로 장식 되어 있다. 우리는 열반당 앞에서 3배를 올린 후 오른 쪽으로 세 번 돌며 참배했다. 열반상은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서쪽을 향하여 누워있다. 열반상의 왼쪽다리가 위에 올라져 있으며 그리고 황금색 천이 부처님을 덮고 있다.

▲ 쿠시나가르 열반당의 열반상

열반당 한가운데 황색 가사를 입은 채 옆으로 누워 계신 부처님!, 6m 남짓의 장대한 부처님이 목전에 온전히 드러나자 모두 엄숙하고 숭고해진 분위기에 젖는다. 열반당에서 나와 뒤편에 있는 열반탑(Nirvana Temple & Stupa)을 둘러 보았다. 아쇼카 대왕이 세웠다는 열반탑은 계속 증축돼 최근 미얀마 스님들이 완성했다고 한다. 열반당을 나오는 길목에 사라쌍수가 순례객의 눈길을 끈다. 원래 사라쌍수는 부처님이 열반하실 때 동서남북에 각각 한 쌍씩 서 있었던 나무다. 동쪽의 한 쌍은 상주와 무상을, 서쪽의 것은 진아와 무아를, 남쪽의 것은 안락과 무락을, 북쪽의 것은 청정과 부정을 상징한다고 한다. <계속>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