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쟁적 관점으로 사회적 해법을 모색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갈등을 치유해 나가겠다.”

대한불교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은 지난 13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어 자승 원장은 ‘희망을 잃지 말라’며 “꿈과 희망을 나누며 이웃과 함께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자”고 역설했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수장답게 자승 원장은 화합과 평화와 희망을 강조했다. 자승 원장의 이러한 신년기자회견문은 이날 전파와 활자를 통해 국민들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그러나 정작 그가 몸담고 있는 조계종을 들여다보면 꿈도 없고 희망도 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오히려 그 자신이 안고 있는 각종 갈등과 대립의 문제는 화쟁적 관점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게 아니라 억압과 응징이라는 방식으로 풀려고 한다.

지난 해 교계 내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동국대 사태와 용주사 주지 은처 의혹, <불교포커스>와 <불교닷컴> 해종언론 지정 등의 문제 해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총무원은 “범계행위에 대해선 종법에 따라 엄중 대처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언론탄압과 관련해선 “익명성 댓글이 종단 안위까지 흔들고 있어 고심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다”고도 했다.

총무원이 고심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다는 말은 조계종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대문짝만한 크기의 움직이는 화면에 올라 있는 ‘해종언론대책위원회 공동지침’은 취재지원 중단, 출입금지조치, 광고 후원 중단, 기게재 광고 삭제, 보도자료 배포·간담회·인터뷰 금지, 해당언론 접속금지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총무원은 이 지침을 조계종 산하 모든 기관에 시달하고 있고 있으며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감수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게 총무원이 말하는 ‘엄중대처’다.

이를 보더라도 자승 원장의 말은 안과 밖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자승 원장은 올해 종무기조로 ‘희망의 길벗이 되겠다’를 내세웠다. 하지만 종단 내 산재해 있는 사안들을 들여다보면 종무기조란 강력한 응징과 억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대중적 지지기반이 없는 권력이 선택하는 수단은 폭정(暴政)이다. 또 폭정은 언론의 탄압에서 시작된다. 1979년 12·12사태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가 제일 먼저 한 일이 언론탄압이었다. 그들은 언론·방송의 통폐합을 자기들 멋대로 결의하고 통폐합 대상 발행인과 경영인을 보안사로 끌고 가 강제로 도장을 찍게 했다. 진실과화해위원회의 자료에 의하면 이로 인해 당시 64개에 달하던 매체가 18개 매체로 통합되고 정기간행물 172종이 폐간됐다. 강제해직된 언론인도 1천200여명에 달했다. 친정부·보수언론사와 언론인들은 이러한 악의적 상황에 내심 통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언로(言路)를 차단한다고 해서 부도덕한 정권의 부패가 감추어지는 건 아니다. 신군부는 집권 내내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과 민심이반에 시달려야 했다. 이게 역사다.

조선왕조는 고려에 이어 대간제도(臺諫制度)를 그대로 계승했다. 대간은 언관(言官)으로서 왕에 맞서 간쟁과 탄핵의 권한이 주어졌다. 대간에게는 지켜야 할 원칙이 있었다. 첫째, 지부극간(持斧極諫)으로서 비록 도끼로 죽을지언정 왕에게 한 말을 물릴 수 없다는 다짐으로 쓴소리를 하는 것이다. 둘째는 순지거부(順志拒否)로 제아무리 왕의 뜻이라 할지언정 옳지 않으면 비판하여 바꾸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왕과 다투다보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게 대간의 ‘목숨’이다. 그래서 생겨난 게 대간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대간불가죄(臺諫不可罪)다. 또 대간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왕은 출처를 묻지 않는 불문언근(不問言根)이 적용됐다. 조선왕조가 이 제도를 활용한 이유는 바로 언로를 통해 소통을 이루려 한 때문이다.

현재 시점에서 말하자면 지부극간은 언론의 비판기능을 말함이고, 순지거부는 언론이 추구하는 사명이다. 대간불가죄는 언론의 책임과 자유를 강조하는 말이고, 불문언근은 취재원의 보호를 의미한다. 조선시대에도 알고 있던 언론정책을 조계종만 시간을 거슬러 막무가내로 언로를 막고 있는 것이다.

자승 원장은 불교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있는 것도 모자라 종사자의 생계까지 위협하는 탄압책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 스스로 폭압의 종단정치를 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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