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0년 병신년 새해가 밝았다. 세상의 이치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하지만 행복을 염원하는 인간의 심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또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종교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심리와 직결된다.

세상의 인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실의 삶과 내세의 삶이 모두 행복하길 바랐다. 종교는 이러한 인류의 염원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지도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어떠한 형태의 꿈이 허황되거나 부질없는 것이라면 이를 바로 깨우쳐 현명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종교의 역할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언제나 부단히 깨어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해 한국불교를 되돌아보면 안타깝고 아쉬웠던 대목이 한 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범계승 문제는 불자들이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사회의 비난이 됐다. 심지어 은처승이 주지를 하면 소나 개도 주지할 수 있다면서 신도들이 소를 끌고 일주문으로 몰고 들어가는 장면은 한국불교 1700년 역사에 처음 있었던 일로 기록되고 있다.

법원은 이 일로 인해 벌어진 가처분 소송에서 신도들의 손을 들어줬다. 청정승가의 구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범계에 대한 자정능력 또한 조계종단 지도부가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하므로 신도들의 문제제기가 적법하다는 이유였다.

태고종은 연초부터 총무원 청사를 놓고 폭력행사를 벌인 것이 결국 종단 지도부의 구속으로 이어졌다. 종단권력을 서로 차지하려고 승려의 신분으로 용역 깡패들을 동원하는가 하면 폭행을 스스럼없이 자행한 부분에 대해 사법당국이 엄중히 다스린 결과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성찰과 참회는커녕 새로이 개원된 중앙종회 역시 욕설과 멱살잡이 등 추태를 보였다. 세속의 이권다툼이 오히려 무색할 정도로 승가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어떠한 말로도 변명이 될 수 없다. 한마디로 승가의 위의가 땅에 떨어졌다.

우리는 새해에 승가의 위의가 바로 서길 기대한다. 승가의 위의가 바로 서야 불교가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불교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불교를 걱정한다는 조롱에서 벗어날 수 있다. 승가의 위의를 바로 세우는 일은 무엇보다 지도부부터 솔선수범하여 청규를 실천해야 가능하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다. 지도부가 부패하고 무능하면 그 조직은 힘을 상실하게 될 뿐 아니라 분규와 갈등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도부가 먼저 뼈를 깎는 각고의 정진으로 늘 청정한 모습을 유지한다면 구성원들이 신뢰와 존경으로 든든한 응원군이 될 것이다.

또한 자정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는 점도 주문하고자 한다. 잘못된 점을 바로 고치고 더러운 것을 정화하는 능력이 없다면 어떠한 수술로도 건강한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정화능력이 없는 악취가 진동하는 곳에 사람이 모일 리 없고 이러한 곳을 의지처로 삼을 사람은 전무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정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선 엄격히 법이 적용되어야 하고 원칙이 바로 서야 한다. 권력자와 가깝다는 이유로 결혼한 사실이 적발돼도 묵인되고 도박과 성매수를 해도 용서가 되는 풍토가 더 이상 지속돼서는 안 된다.

승가는 화합과 평화를 상징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화합과 평화는 계율을 지키고 청규를 실천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이를 위해 승가는 자자와 포살이라는 제도를 통해 서로를 점검하고 격려한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분란과 반목이 발생한다.

따라서 새해엔 승가의 위의를 회복하기 위한 교계 차원의 의식전환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바다. 초발심시변정각이라 했듯이 처음 불문에 들어올 때의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한국불교는 건강한 승가 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다. 승가위의 회복에 전력을 다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