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승들의 피폐를 그들의 문중과 함께
 책에 분명히 기록해 후대에 교육시켜야

개인이든 사회이든 예측이 가능한 것이 좋다. 상황에 따라 변덕을 부리면 관계 맺기 어렵다. 세상일이 변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변화란 살아있음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그 변화에는 예측 가능성, 소위 내적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저도 모르고 남도 모르게 변한다면, 자신도 그렇고 남도
그렇고 그 변화에 적응할 수 없다. 나도 망하고 남도 망한다.

최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의 법인법 정책은 예측 가능성이 많이 떨어진다. 대한민국 법질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삼보의 재산을 재판비용에 낭비하는 것도 모자라, 재단법인선학원과의 재판에서 패소하자, 법인법 시행을 유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가하면, 각종 으름장만 그것도 비공식 라인을 통해서 흘려내고 있다. 종단 총무원에서 규칙을 세웠으면 예외 없이 그 사안을 시행해야 한다. 부득이 하게 수정이 필요하면 그에 따르는 논리와 대책을 마련하고, 또 대중들에게 설득하고 설명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법인법을 둘러싼 행정은 그렇지 못했다.

선학원 쪽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과 결별을 선언한 적이 없다. 조계종의 종지와 종풍을 봉대하는 것은 예나제나 변함이 없다. 역사적으로 때에, 선학원은 일제시기 당시 조선 승려들의 친일적 불교행각과 결별을 하려는 선각자들이 세운 단체이다. 당시의 법령을 잘 활용하여 우리 불교의 권리를 보호한 지혜로운 처사였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조선불교계가 조선총독부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은 역사가 증언한다. 자주적으로 1929년 각황사에서 발기한 ‘조선불교선교양종’은 별도이지만, 1941 조선통독부에서 인가 받은 ‘조선불교조계종’은 일제와 무관하지 않다. 이 점은 우리 모두 다 알면서도 예의상 입에 담지 않을 뿐이다.

그러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 친일 청산의 차원에서 ‘조계종’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조선불교’로만 우리의 불교교단을 명명했던 것이다. 당시의 초대 교정(敎正) 즉 지금 종정(宗正)에 해당하시는 분이 바로 석전 영호 박한영 대강백이셨다. 이런 연장선에서 ‘대한불교조계종’이 1962년에 출범한 것이다.

이런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거나 무지한 채로 ‘대한불교조계종’이 ‘재단법인선학원’을 내치는 것은 반역사적 처사이고, 나아가 원칙도 없는 행정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더 이상 지금의 조계종 집행부는 어리석음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권세와 직위로 구성원을 인솔하려 해서는 안 된다. 불교적인 이념과 이상으로 해야 한다. 일제강점기 치하에서 선불교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역사적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 종지와 종풍을 기반으로 한 결속이어야지, ‘힘’으로 해서는 안 된다.

해방 후 우리 불교계의 역사가 ‘힘’으로 얼룩진 오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도 소위 한국 제2의 불교종단임을 자임하는 종무원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하여 법원 재판 중이다. 가장 원시적인 것이 ‘주먹’이다. 그 다음 원시적인 것이 ‘권세와 직위’로 위협하는 것이다. 인간 지성의 최고인 종교가, 그것도 인문주의적 전통이 강한 불교가 이래서는 안 된다. 인간의 이성으로 예측 가능하고 양심의 원칙에 입각한, 그러면서도 역사적 전통에 입각한, 그런 종지와 종풍으로 결속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조계종 총무원은 그런 방향으로 더욱 나아가야 한다.

전법의 계보상으로는 선종의 법통을 유지하면서, 이념적으로는 ‘간화수행’과 ‘화엄교학’과 ‘정토신앙’을 솥의 세발처럼 균형 있게 실천해야 한다. 그것으로 승려들이 서로를 결속해야지, ‘권세와 직위’로 종도들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원칙이 서고, 예측이 가능한 종단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별들의 전쟁처럼 하루아침에 절을 빼앗고 빼앗기는 지난 역사는 이제 멈춰야 한다. 종단 정치의 ‘힘’에 빌붙어 석가세존의 가르침을 능멸하고, 역대 조사들의 정신을 분탕질하면서도, 소위 종단 정치의 높은 자리만을 맴도는 출가승들이 있다면, 역사가들은 그들을 기억하고 책에 적어 후손들에게 그 이름과 행적을 교육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권승들이 속해 있던 문중들도 더불어 기록할 것이다. 그리하여 명문의 후예들이 불조의 혜명을 이어가도록 하게 할 것이다.

-연세대 철학과 교수, 한국선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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