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 관음전으로 피신한지 25일 만에 자진출두 형식으로 조계사 일주문을 나갔다. 사태는 일단락되었으나 종단으로써는 풀어야할 숙제가 있으니 첫째, 법원으로부터 구속 또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확신범 즉, 정치적으로 억울하다는 피의자에 대해 조계사 등 도량을 사실상 도피처로써 제공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두 번째는 종단이 사회적 이슈에 대응할 시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상균 위원장의 사례에서 시위의 폭력성 논란에 집중하다보니 정작 본질인 <민주노총>이 ‘노동개악’이라 칭하는 노동개혁 5대 법안(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기간제법, 파견법)과 ‘민중총궐기대회’측이 정부와 국회에 요구한 11개 분야에 대한 내용적인 것들은 결과적으로 중요시 하지 않았다.

세 번째는 종단이 사회적 문제에 개입할 시 전문성이다. 과연 화쟁위원회(위원장 도법 스님)가 복잡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종단을 대표해서 탁월한 대안을 제시하고 대응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다. 노동법이나 노동현실에 깨어있는 사람이 아니고선 어려울 수밖에 없는 문제를 종교인들이 나서서 다루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종단에 실력 있는 연구소기능으로 하여금 부처님가르침에 입각하여서 전문성과 시사적 식견으로 독자적인 대안을 생산해 내고 이를 바탕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전문성에 한계가 있으니 견지망월(見指望月)식이다.

교육원장 현응 스님이 모 교계 언론에 기고한 ‘재가불자의 길을 묻다-출가자와 재가자의 바람직한 관계’라는 글에서 “오늘의 첨단문명시대의 사회는 전문적인 학습과 각종 노력을 통해서 그 세부사항이나 전체 시스템을 알게 되는데, (중략) 승려는 사회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을 갖지 못한다”라 했다. 한상균 위원장 사태를 보면서 이해가 되기도 한다. 향후 종단은 중요한 사회문제에 개입 시 종단기능에 전문가를 더하여서 종단의 목표와 진행방향을 결정한 후 행동해야 한다.

필자는 94년도 개혁 당시부터 종단에 제대로 된 연구소를 설치하자는 주장을 해왔다. 제대로 된 연구소가 구성돼 있다면 이번 같은 경우에 손가락이 아닌 달 즉, <노동개혁 5대 법안>과 전술한 11개항의 요구사항에 대해 조계종 나름의 의견을 내고 신뢰성 있는 행보가 가능했을 것이다. 10년이 넘게 걸리더라도 연구소를 설립해야 한다.

그리고 11월 9일 15:30경부터 경찰이 관음전 내부로 진입을 시도하면서 조계사 관리주체에 한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 또는 관음전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의 사전 제시가 없었던 것으로 안다. 경찰이 한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하려면, 그것도 조계사라는 신성한 도량에서 집행을 하려면 사전 관리주체에게 체포 또는 압수수색영장을 제시하고 정당한 법 절차임을 눈으로 확인시켜야 하는 것이 국가가 규정한 절차며, 예의다. 사법경찰관이 그 대상이 누구든 법집행을 하면서 절차와 예의를 무시하거나 대충해서는 안 된다. 종단은 내부적으로 이번 사태에 대해 냉철하게 평가하고 그 결과를 종도들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2010년 8월 11일 <불교닷컴>에 “조계종화쟁위 현판식에 부쳐”라는 기고문을 등재했다. 집단 간 갈등의 해결에 대해 사이몬(H. A. Simon)과 마치(J. G. March)의 이론을 예로 들어서 설명했다. 이를 다시 상기해 본다. 첫째, 문제해결(problem solving) 당사자 간에 직접 접촉하여 공동의 노력에 의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탐색활동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평가를 통해 당사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문제해결안을 찾는 것이다.

둘째, 설득(persuation) 비록 개별목표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느 수준(상위수준)에선가 공동목표의 차이는 공동목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설득이 필요하다.

셋째, 협응(bargaining) 토론을 통한 타협이다. 협상에 의해서 얻어지는 결정은 어느 당사자에게도 최적의 결정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협상은 갈등의 원인을 제거하지 못하고 갈등을 일시적으로 모면하게 하는 것이므로 잠정적인 갈등해소법이라 할 수 있다.

넷째, 정치적 타결(polictics) 각 갈등 당사자는 정부나 이론, 대중 등과 같은 제 3자의 지지를 얻어 협상하려는 것이다. 협상과 마찬가지로 갈등의 원인을 제거하지 못하고 표출된 갈등만을 해소시키는 방법이 된다.

이번 한상균 위원장(이하 한위원장)사태의 해결에 있어서 화쟁위원회의 행보 자체가 ‘화쟁’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이다. 한위원장 사태의 해결을 위한 화쟁은 갈등의 주체(정부, 노동계 등)들과 사회라는 또 다른 주체가 있기에 포괄적이고 입체적이며, 내용적이어야 했다.

한위원장의 문제는 정부와 정치권, 노동계, 농민,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등 한국사회 전체를 들썩거리게 한 문제로써, 화쟁위원회는 각계각층을 상대로 다양한 노력을 했어야 했다. ‘공개토론회’가 그것이니 ‘전문가와 누구나 참여 가능한 긴급 공개토론회’를 개최해서 다양한 의견을 듣고 판단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이러한 과정 자체가 화쟁이며, 한위원장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사회적 중지와 지혜를 모으는 동시에 대화를 거부하는 측에 대한 압박의 기능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2,3일 정도의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사회적 의견을 듣는 노력은 고사하고 종단내부의 다양한 의견을 듣는 계기마저도 부재했다. 이번 한위원장 사태의 해결은 학자들의 이론대로라면 총무원장스님의 결단에 의한 “정치적 타결(polictics)”이라 할 수 있다.

고 지관 스님 불심검문 사태 시 종단은 국제회의장에서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토론회를 개최한바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화쟁위원회는 갈등 해결에 직면 시 행동할 ‘치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사회는 집요하고 첨예하게 움직이며, 첨단을 달리고 있는데 아집과 구태에 머물러서는 될 일이 아니다. 화쟁위원회의 한위원장사태 종결에 대한 공개 토론회를 기대해 본다.

法應(불교사회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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