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인 요순

요순(堯舜)시대라고 하면 우리는 곧 태평시대로 이해한다. 유교문화권에서 요순은 가장 살기 좋은 시대를 만든 성인이다. 《중용(中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공자는 요순(堯舜)을 잇고 문무(文武)를 본받았다.”1)

이 말은 “공자는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을 교주(敎主)로 받들며 그의 가르침을 펼치고, 문왕과 무왕을 법으로 삼아 밝혔다”는 뜻이다. 또 《논어(論語)》에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는 공자의 말씀이 있다. 이 말은 “받들어 펼쳤을 뿐 짓지 않았다.”라는 의미이다. 기독교로 말하면, “오직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히 전할 뿐, 내가 창작해서 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와 같다. 그러니까 공자는 스스로 예언자임을 자처했을 뿐 메시아가 되고자 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독교적 메시아는 바로 요순이다. 불교로 말하면 부처의 지위를 갖는 셈이다. 요순우탕문무주공(堯舜禹湯文武周公)으로 내려오는 이른바 유교의 도통연원(道統淵源)도 요순으로부터 시작한다. 잠시 도통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하늘의 운세가 그대에게 있으니 진실로 그 중(中)을 잡으라.”2)

윤집궐중(允執厥中). 이른바 그 중을 잡으라는 이 네 글자가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천하를 선양(禪讓)하며 전수해준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을 순임금이 다시 우임금에게 전수할 때는 “인심은 더욱 위태롭고 도심은 매우 은미하니 오직 정밀하고 오직 순일하게 살펴 진실로 그 중을 잡으라.”3)라고 하였다. 주자(朱子)에 따르면, “윤집궐중”에 “인심은 위태롭고……”하는 구절을 덧붙인 이유는 요임금의 본래 가르침에 보다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배려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여튼 요임금으로부터 유교 교설이 시작되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전한다.

“요임금은 하늘처럼 인자하고 신처럼 지혜로웠다. 사람들은 햇살이 비치는 태양을 바라보듯, 단비를 몰고 오는 구름을 대하듯 의지하고 우러렀다. 부유하여도 교만하지 않았고, 귀하여도 오만하지 않았다.…… 구족이 화목하고 만국이 화합하였다.”

실로 완벽한 성인의 모습이다. 순임금 또한 조금도 덜 하지 않았다. 순임금이 일반 서민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순임금의 아버지는 어리석은 장님이었는데, 새로 후처를 얻었다. 그런데 이 후처가 고약한 사람이어서 데리고 온 아들과 공모하여 순을 죽이려고 하였다. 순에게 지붕을 수리하게 하여 지붕 위로 올라간 뒤에 사다리를 치우고 집에 불을 질렀다. 또 우물을 파게하고는 우물로 내려간 뒤에 우물을 흙으로 매웠다. 이처럼 고약한 부모형제지만 젊은 순은 효성과 자애를 극진히 하여 효자로 소문이 났다. 결국 요임금에 의해 발탁이 되고 나중에는 임금의 자리까지 물려받았다.

선양(禪讓)은 자식이 아닌 현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다. 요임금이 후계자를 정하여야 할 때가 되었다. 신하들에게 적임자를 묻자 요임금의 아들인 단주(丹朱)를 가리켰다. 하지만 요임금은 자신의 친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단주가 현명하지 못하다 하여 반대한다. 그리고 여러 명의 후보들을 이리저리 따져보고 마침내 순에게 천자 자리를 물려주었다.

유교의 도통이 선양으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는 그 의미가 대단히 크다. 중간에 세습(世襲)이 있어서, 우(禹)임금의 하왕조(夏王朝), 탕(湯)임금의 상왕조(商王朝), 무왕의 주왕조(周王朝)가 교체하였지만, 크게 보면 덕이 있는 자에게 천하는 돌아간다는 천명사상(天命思想)이 도통연원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옛날 왕들은 요순이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왕의 입장에서 요순의 선양은 내 자식에게 왕위가 물려지는 게 아닐뿐더러, 잘못하면 언제라도 현인에게 왕위를 물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조선의 왕들 대부분이 이랬을 것이다. 입만 열면 요순을 말하는 신하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조선은 신하들에 의해 두 번이나 왕이 내쫒긴 역사가 있지 않은가. 조선시대 신하의 입에서 나오는 요순이란 말은 곧 “당신, 똑바로 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쫓겨날 수 있소이다.”라는 말과 다를 게 없었던 것이다.

동양 역사에서 요순이란 단어는 한 순간도 그 존엄성이 퇴색되어 본 적이 없었을 성 싶다. 동양인에게서 요순시대란 꿈에서도 그리운 태평성대를 나타낸다. 역사에서, 문학에서, 예술에서 이 두 글자는 이상과 현실 모두를 지배했다.

2, 거짓의 역사

만약 요순선양은 거짓말이고, 오히려 잔인한 권력쟁탈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나? 요순 선양을 거짓이라고 본 학자들은 이미 전국시대(戰國時代)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순자(荀子)이다. 순자는 “요순이 선양하였다는 말은 실로 거짓말이다. 이는 천박한 자가 전하는 말이며, 고루한 자들의 주장일 뿐이다.”4)라고 하였다. 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 한비자(韓非子)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순(舜)은 요(堯)를 핍박하였고, 우(禹)는 순을 핍박하였으며, 탕(湯)은 걸(桀)을 내쫓고, 무왕(武王)은 주(紂)를 토벌했다. 이 네 명의 왕들은 신하의 몸으로 그들의 임금을 시해한 것인데, 세상은 오히려 이들을 기린다. 네 왕의 실상을 살펴보면 실로 탐욕스런 사람들이요, 그들의 행동은 폭력적인 전쟁이었다. 그들은 제멋대로 일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위대하고 밝은 군주라고 칭송한다. 그 이름이 드날리고 그 위엄이 천하에 떨치니 세상은 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5)

우리가 알고 있는 성인 요순우탕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탐욕스럽고 난폭한 폭군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공자와 맹자인가? 아니면 순자와 한비자인가? 유교 경전이며 요순 선양의 강력한 근거자료인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보면, 순임금이 “공공(共工)을 유주에 유배시키고, 환도(驩兜)는 숭산으로 내쫓고, 삼묘(三苗)는 삼위로 몰아내고, 곤(鯀)은 우산에서 죽였다. 이 네 명을 벌하자 천하가 복종하였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이들 네 명은 요임금을 도와 태평시대를 만든 요임금의 충직한 신하들이었다. 만약 요순 선양이 사실이라면, 굳이 요임금 시대를 대표하는 신하 네 명을 죽이거나 유배시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서경》의 이 기록은 순이 요임금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하였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한편 279년 하남성(河南省) 급현(汲縣)에 있는 위(魏)나라 양왕(襄王, 재위 BC 334〜BC 319)의 무덤에서 상당한 죽서(竹書)가 발굴되었다. 죽서란 대나무를 엮어 만든 책을 말한다. 위양왕의 무덤에서 나온 책들은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기 전에 묻혔기 때문에 분서갱유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죽서 중에 기년체 역사서 한 권이 있어서, 이를 《죽서기년(竹書紀年)》이라 한다. 출토된 지명을 따서 《급총기년(汲塚紀年)》이라고도 부른다. 이 책에 “옛날에 요의 덕(德)이 쇠하자 순에 의해 갇히게 되었다. 순이 요를 감금하고 요의 아들 단주를 막아 아버지와 만날 수 없게 하였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요임금이 늙고 힘이 약해지자 요임금의 신하로 있던 순이 군주를 감금하고 그의 아들과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비록 이 책의 기록이 상당 부분에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오늘날 고고학적 발굴과 연구 성과를 종합하여 상당한 역사성이 긍정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몇 가지를 추론해 보자. 먼저 《죽서기년》은 처음 발견 당시에는 매우 중시되었으나 수차례의 정변을 겪으며 유실되고 흩어졌다. 그렇게 유실된 것들을 모아 정리하고, 또 다시 흩어지길 반복하였는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죽서기년은 송(宋)대에 유실된 것을 중화민국이 성립된 후에 부분적으로 복원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왜 유실을 반복하였을까? 적어도 누군가는 이 책의 내용을 싫어하였고, 유실을 방조하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더구나 중국처럼 큰 나라에서 복원이 난제일 정도의 유실이 나타났다면, 그것은 지배권력의 영향력이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북송(北宋)시대의 유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오대십국(五代十國)의 혼란을 평정하고 다시 세운 통일제국 송나라는 이른바 사대부라고 하는 지식인계급을 폭넓게 등용하며 학문과 문화를 꽃피웠다. 그러나 북방민족, 특히 여진족이 세운 금(金)나라에 밀려 남쪽으로 도읍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이게 남송(南宋)이다. 이런 시기에 이른바 오랑캐의 핍박에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사대부 지식인들에 의해 중국 전통의 유교사상이 재조명되며 새롭게 형성된 것이 바로 성리학(性理學)이다. 성리학은 이민족의 종교인 불교에 대응하여 등장한 것이다. 북송의 성리학에 더욱 강력하고 교조적인 중화의식이 결합한 것이 남송의 주자학(朱子學)이다. 이들 송대의 사대부들에게 《죽서기년》은 금서(禁書)와 다를 게 없는 책이었다고 보아도 크게 잘못된 추리는 아닐 것이다.

3. 교화(敎化), 거짓과 진실 사이

▲ 나치의 선전상이었던 괴벨스.
“절제(sophrosynē), 용기(andreia), 자유로움(eleutheriotēs), 고매함(megaloprepeia) 및 이와 같은 부류인 모든 것”을 교육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신화나 설화 작가들이 지은 이야기들은 “훌륭한 것이면 받아들이되, 그렇지 못한 것이면 거절해야 하고…… 오늘날 그들이 이야기로 들려주고 있는 것들 중에서 많은 것은 버려야만” 한다.…… 거짓은 나라와 시민들의 이익을 위해서 통치자들에게만 허용한다.6)

지난 호에 실린 졸고 중의 마지막 부분으로, 플라톤이 《국가》에서 교육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이 글의 요체는 도덕적이며 고결한 것을 위해 사실을 사실대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것은 빼고 어떤 것은 더하며, 진실이 아닌 거짓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요순과 선양에 얽힌 이야기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플라톤의 교육이념이 멀리 극동의 중국과 조선에서 얼마나 잘 구현되었는가. 현재 우리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요순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면 교육의 힘과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상상조차 힘들다. 요순은 실로 수천 년 동안 엄청난 사람들의 의식을 완벽하게 지배한 성인이었다. 이른바 교화(敎化)에 의해 그게 가능했던 것이다.

다시 순자와 한비자로 돌아가 보자. 이들은 공맹 사상이 지배이념으로 정착된 이래 당연히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었다. 또한 주목해야할 점은 이들의 철학은 매우 유물론적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유물론적이라는 말은 사실적이라거나 혹은 자연법칙적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즉 이들은 하늘과도 같은 어떤 인격적인 초월자를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사실에 입각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순자는 말한다.

“하늘(자연)에는 법칙이 있으니 요순(堯舜)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걸주(桀紂) 때문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7)

사실을 사실대로 보면 요순시대에도 홍수와 가뭄이 극심했으니, 하늘이 특별히 이 성군들에게 천명(天命)을 내렸다고 할 근거는 없다. 또한 폭군의 대명사인 걸왕이나 주왕 때에도 태양은 여전히 떠올랐고, 때에 맞춰 비가 내렸다. 그러니 천명이니 천인합일(天人合一)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 거짓이다. 이들은 사실을 말했고, 비판받았다.

정의(正義)가 사라진 도시 고담. 미치광이 악당 조커에 맞서 배트맨은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조커를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고담시의 영웅 하비 덴트의 추락을 보게 된다. 젊은 검사 하비 덴트는 악당과 싸우는 영웅에서 형사 두 명을 포함한 다섯 명의 살인자로 전락하고 만다. 영웅과 악당, 선과 악의 두 얼굴, 투 페이스(Two face)가 되었다. 이런 사실을 앞에 두고 배트맨은 말한다.

“사람들이 하비 덴트가 무엇을 했는지를 결코 알게 해서는 안 되오. 조커가 이기게 할 수는 없소. 고담은 영웅이 있어야 하오.…… 왜냐하면 때로는 진실만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이오. 때로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한 법이오.”

하비 덴트의 추악한 얼굴은 가려지고 영웅적인 얼굴이 높이 걸렸다.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영웅이 만들어졌다.

교화란 결국 거짓을 참으로 믿게 하는 것이다. 반복하고 반복하면 사람들은 믿게 된다. 증자(曾子)는 공자의 제자 중에서도 효도와 덕행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이런 증자의 어머니에게 한 사람이 달려와 말했다. “증삼(曾參, 증자의 이름)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베틀 위에서 베를 짜던 증자의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태연히 말하였다. “내 아들은 그럴 사람이 아니오.” 잠시 후에 또 한사람이 와서 같은 말을 하였다. 어머니의 대답 또한 마찬가지였다. 얼마 후에 또 한 사람이 달려와 말했다. “증삼이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러자 증자의 어머니는 베틀 북을 내던지고 담을 넘어 도망갔다. 세 사람이 말을 하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난다고 했던가.

거짓말의 효력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 사람은 히틀러의 선전관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였다. 그는 독일의 각 가정에 라디오를 보급하고는 연일 떠들어댔다. 히틀러가 얼마나 위대한 지도자이고, 독일 국민은 얼마나 위대한 국민인지. 그리고 유태인은 왜 절멸시켜야하고, 독일은 왜 전쟁을 하여야하는지. 이런 괴벨스가 말했다.

“99개의 거짓과 1개의 진실이 적절히 배합되면 100% 거짓보다 훨씬 더 효과가 크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 하면 결국엔 모두가 믿게 된다.”
“언론은 정부의 손 안에 있는 피아노가 되어야 한다.”

교육이 국가나 사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로 그 사람을 위해서 이루어지기를 빌어본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슬픈 가을이다.

주) ----------
1) 《중용(中庸)》, “조술요순 헌장문무(祖述堯舜 憲章文武)”
2) 《서경(書經)》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
3) 위의 책, “인심유위 도심유미 유정유일 윤집궐중(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4) 《순자(荀子)》 〈정론(正論)〉
5) 《한비자(韓非子)》 〈설의(說疑)〉
6) 플라톤 지음, 박종현 역주, 《국가·정체》
7) 《순자(荀子)》 〈천론(天論)〉

김문갑 | 철학박사,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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