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을 하는 이들은 안다. 내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 이가 많아질수록 즐거움도 커진다는 걸. 평소 ‘좋아요’를 누르는 이가 많아야 열 명 남짓이던 내 담벼락 게시물에 무려 560여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런데도 나는 즐겁기는커녕 깊은 한숨부터 나온다. 해당 게시물이 40일 넘게 단식 중인 김건중 동국대학교 부총학생회장이 머물고 있는 천막에 일면 이사장이 다녀갔다는 ‘불교닷컴’ 기사를 링크한 후 다듬어지지 않은 내 감정을 토해낸 글이기 때문이다. 그 글의 전문은 이렇다.

“몇 마디 툭 던지고 사진만 찍고 3분 만에 돌아갔다? 진심을 다해 설득해도 모자랄 판에, 사람 죽어가는 데 구경하러 갔습니까? 생명나눔에 장기기증을 약속했는데, 취소하고 다른 단체 알아봐야겠습니다. 생명을 깃털처럼 여기는 당신이 이사장으로 있는데, 어찌 그 단체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좋아요’를 누른 사람 대부분은 내가 모르는 이들이다. 프로필 사진을 보고 대부분 동국대 학생들인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560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면부지인 사람의 페이스북 담벼락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 건, 그만큼 김건중 부총학생회장에 대한 학내·외의 관심과 지지가 넓고 깊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이사장과 총장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아니 애써 외면하고 있다.

백 번 양보해서 이사장과 총장이 결백하고, 단식 농성하고 있는 학생들이 주장이 잘못됐다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진실한 해명이나 진상규명 의지를 밝히지 않은 그들의 결백이 목숨을 걸고 단식하고 있는 김건중 부총학생회장과 투신 의지를 굽히지 않는 최장훈 일반대학원 학생회장의 목숨보다 소중한가? 이사장과 총장이라는 그 자리와 명예가 학생의 목숨과 불교 위상 추락보다 더 중한 것인가?

훼불, 해종이란 게 불상을 파괴하고 승려를 탄압하며 부처님 가르침을 매도하는 일만은 아닐 게다. 내 잘못된 판단과 언행으로 불교가 매도되고 돌이키기 어려운 상처를 입는다면 그것 또한 훼불이자 해종일 게다. 외부에서 가해져 오는 칼날에 의한 상처보다 내부에서 썩고 문드러진 상처가 더 목숨을 위협하는 법이다. 지금 일면 이사장과 보광 총장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내 직위와 명예를 잃는 게 아니라 자신을 헤어 나오지 못할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독선과 아집, 욕망이다.

“오늘 보광 총장이 단식 정진 중인 미산, 금강, 법인 세 스님을 찾았다는 ‘불교포커스’의 기사를 접했다. 보광 스님은 50일 가까이 단식 중인 학생보다 며칠 굶었을 뿐인 스님 몇 분이 더 걱정스러웠나 보다. 사진을 찍는 기자에게 초상권을 운운하며 항의했다는데 그래도 부끄러운 줄 아나보다. 보광 총장은 단식 중인 스님들에게 지혜로운 해결을 당부했다는데 그것이 사퇴인 것을 정녕 모르는가 보다.”

오늘(1일) 보광 총장이 단식수행 중인 스님들의 천막을 찾았다는 ‘불교포커스’ 기사를 읽고 내 페이스북 담벼락에 쓴 글이다.

단식수행 중인 스님들에게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가 ‘지혜로운 해결’을 당부한 걸 보니 보광 총장에겐 제자(학생)의 목숨보다 총장이라는 자리, 총장이라는 명예가 더 중한가 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학자로서의 양심을 져버리고 표절총장이라는 오명을 썼으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 자비심에서 우러나는 수행자적 사고도 마비된 것인가?

보광 총장은 40일 넘게 단식한 제자(학생)을 앞에 앉혀 놓고 물러날 수 없다 했다 한다. “내가 총장을 해야만 한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그 생각과 고집은 부처님이 그토록 경계하셨던 아집과 아만이 아닌가?

부처님은 비둘기 한 마리와 당신의 목숨을 맞바꾸셨다. 불교학을 전공하신 교수이고, 수행자이니 그 전생담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출가수행자라면 모름지기 자신의 모든 걸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일면 이사장과 보광 총장님! 제발 당신들의 눈을 가린 독선과 아집, 욕망의 가리개를 벗어 던지시라. 당신들의 발걸음에 두 학생의 목숨이 달려 있으니…

* 이 글엔 일부 자기 표절이 있습니다. 며칠 전 페이스북 담벼락에 게시한 제 글을 마구잡이로 끌어다 썼습니다. 표절이라고 책망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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