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선학원 갈등과 관련, 스님들은 지난 11월 13일 ‘전국비구니회’ 명의로 ‘조계종단과 선학원의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냈습니다. 큰 얼개에 대해서는 우리 재단이 지난 18일 ‘전국비구니회는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라’는 입장문을 통해 밝혔으므로 여기서는 못 다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결의문에서는 “최근 조계종단이 ‘법인법’을 제정하자, 선학원은 재단 정관에서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지 종통을 봉대한다.’는 조항과 임원선출 조항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승려로 한다.’는 부문을 삭제하고, 조계종단과의 결별을 선언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종단, 정상화추진위 주장 그대로 답습해서야"

여기서 오류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조계종이 <법인법>을 제정했다는 사실은 언급하면서도 <법인법>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끝까지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학원이 ‘결별’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강도 높은 조처를 왜 취했겠는가 하는 데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을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스님들은 종단이나 정상화추진위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먼저 스님들은 결의문에서 “유독 선학원만 이를 거부하는 저의가 무엇인지”라고 주장했지만 이건 틀린 말입니다.

조계종 총무부가 밝힌 바와 같이 9월 3일 현재 등록법인은 170건, 미등록법인은 73건으로 약 69.95%의 등록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종단에서 파악한 법인 열 개소 가운데 세 개소의 법인은 등록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파악하지 못한 법인까지 감안한다면 등록률은 더 낮아질 것입니다. ‘유독’이라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법인법>이 어떤 내용이기에 선학원을 위시한 다른 법인들이 등록을 하지 않는지 알기 위해서는 <법인관리법>을 읽어보길 권합니다. 이 법에는 독소조항이 많지만 여기서는 단 하나만 예를 들겠습니다.
<법인관리법> 제13조 제1항 제2호에는 “‘사찰보유법인’의 경우 대표자는 종단 소속 승려로 하며, 이사의 3분의 2 이상을 종단소속 승려로 한다. 다만 선학원, 대각회의 이사는 종단 소속 승려로 하되, ‘대한불교조계종 선학원’은 이사의 4분의 1이상을 총무원장의 복수 추천으로 해당 이사회에서 선출한다.”고 하였습니다.
선학원에 대해서만 유독 ‘이사의 4분의 1이상’을 내놓으라고 한 것입니다. ‘유독(惟獨)’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것입니다. 이처럼 선학원 이사회를 장악하려는 야욕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말입니까.

다음은 선학원이 <정관>을 개정하여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지종통을 봉대한다’와 ‘임원은 대한불교조계종 승려로 한다’를 왜 삭제하였는가 하는 점입니다.

선학원의 <정관>에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지종통을 봉대한다’라는 내용이 들어간 것은 2002년 합의 때이고, ‘임원은 대한불교조계종 승려로 한다’는 내용은 1969년에 들어갔다가 1978년에 빠졌고, 2002년 합의 때 다시 들어갔습니다.

"조계종이 합의 깨 합의 이전으로 정관 되돌려"

이미 알려진 대로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 스님과 선학원 이사장 정일 스님은 2002년 3월 6일 모두 6개항으로 이루어진 ‘조계종ㆍ(재)선학원 관계 정상화 합의문’에 서명하였습니다. 이 합의문 제5항에는 “조계종과 (재)선학원은 합의사항을 담은 종법과 정관을 개정하고자 할 때는 사전에 합의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따라서 조계종이 선학원과 관련된 뭔가를 제정할 때는 반드시 선학원과 합의를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조계종은 선학원의 공식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인사권, 재산권, 운영ㆍ관리권 등 법인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내용의 <법인법>을 제정함으로써 2002년 합의를 깼고, 선학원은 미리 공언했던 대로 합의 이전으로 <정관>을 되돌린 것입니다. 이건 선학원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조처인 것입니다.

결의문에서는 또 “선학원은 조계종 스님들에 의해 만들어진 재단법인”이라고 하였는데, 선학원은 1921년 출범하였고, 1934년 재단법인이 되었습니다.

이후 선학원 스님들은 왜색불교를 척결하고 민족불교 회복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50년대 정화운동을 주도하여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을 탄생케 하였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아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불교조계종이 1700년 한국불교를 계승하고 있다는 것은 종교적, 사상적, 이념적인 차원에서의 일이지, 사회적 실체로서의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이 법적으로 과거의 역사적인 종파의 법률적 지위를 모두 계승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고 따라서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이 1962년 이전에 성립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우리측 변호사가 답변한 것입니다. 즉, 사상적인 차원과 법적 차원은 다르다는 말입니다.

"1921년 선학원 출범, 1962년 조계종 창종"

자, 보신 것처럼 조계종 스님들에 의해 선학원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왜곡 아니면 무지입니다. 어느 쪽입니까? 스님들도 아무개 스님처럼 한국불교사 전체가 조계종사라고 억지를 부릴 겁니까?

스님들은 결의문을 통해 “애초에 만약 선학원이 조계종과 무관한 법인이었다면 선학원에 결코 등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신규사찰을 등록한다는 것은 재산을 기부하는 것입니다. 우리 재단에 신규 사찰을 등록할 때에는 몇 가지의 서류를 제출합니다. 그 서류 어디에도 ‘대한불교조계종’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특히 분원 재산의 명의 변경을 위한 동의 서류에는 “본인이 재단법인 선학원에 위 분원을 등록 신청하고 창건주 권한을 인정받음에 따라…형성되는 재산을…귀 재단에 무상 증여하고, 향후 그 명의를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변경할 것을 동의하여 이에 확약합니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 내용은 1962년 조계종의 출범 이후 오늘날까지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계종과 무관한 법인이었다면 선학원에 결코 등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은 재단에 등록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의 감정적 발언에 불과합니다. 선학원에 분원을 등록한 주변 스님에게 물어보면 즉각적인 답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절 뺏기 횡행 조계종 악습에 정재 지키려 분원 등록"

여기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게 하나 있습니다. 우리 창건주 스님들이 재단법인 선학원에 사찰을 등록한 주요원인은 절 뺏기가 횡행하는 조계종의 악습 때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수많은 스님들의 증언에 의해 증명되고 있습니다. 사찰을 창건한 조계종 스님이 조계종단에 등록하지 않고 선학원에 등록한 것은 삼보정재를 지키는 가장 명확한 방법이 바로 선학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비구니들은 조계종과 선학원이 둘이 아니라고 생각하였고, 지금도 이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하셨군요.

저도 선학원과 조계종이 한 뿌리로서 남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고, 지금도 그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조계종의 일부 권승들은 선학원이 조계종의 모태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거부하고 94년부터 선거권 피선거권마저 박탈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 선학원 구성원들은 화합이라는 이름으로 갑질하는 조계종에 대항하지 않고 숨죽이며 ‘을’로 살아왔습니다. 이제 그런 관계는 끝나야 합니다. 우리는 ‘탈종’이나 ‘분종’을 생각하지 않고 있지만, 조계종 권승들의 횡포가 여기서 그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다양한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등을 계속 떠밀면 ‘조계종’이라는 틀에 연연하지 않을 것입니다.

스님들은 또 “지금 비구니 분원장들은 ‘조계종 승적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분원의 재산을 보장받기 위해 승적을 포기할 것인가’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라고 하면서 “선학원 단독의 가사제작, 수계산림시행, 승려증발급 등 종단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독자적인 행보를 진행하고 있는 것에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수계 승적업무는 자구책, 가사도 종단이 못 쓰게 해"

이 말은 마치 우리 선학원이 탈종하려고 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분원장 스님들이 승적이나 분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처럼 우리를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실은 이렇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2002년 합의를 깬 것은 명백하게 조계종입니다. 우리가 반대하는 <법인법>을 제정하여 선학원을 장악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2002년 합의를 바탕으로 평화가 유지되고 있을 것입니다. 화합을 깨고 반목하게 하는 모든 책임은 조계종에 있습니다.
지난 11월 17일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선학원 관련 각종 규제를 해제한다”는 초법적행위 즉, 한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백기투항’을 하기 전까지 <법인관리법>에 의하면, 선학원의 구성원들에게 선거권 및 피선거권은 말할 것도 없고 승려복지에 관한 각종 혜택을 주지 않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도제들에게까지 선원과 강원에도 갈 수 없도록 하였으며, 심지어 승적증명서조차 발급하지 않았습니다. 조계종이 선학원의 도제들에게 이전처럼 수계식에 참여하게 했는데도 우리가 따로 수계산림을 봉행했습니까? 왜 정확하게 알아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권승들의 거짓말만 듣습니까? 선학원이 수계산림과 승적업무를 한 것은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재단의 모든 기능이 마비될 수밖에 없으므로 부득이 하게 시행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사를 만든 것은 “조계종 소속 사찰이 아닌 곳에서 ‘대한불교조계종’ 명칭이나 문장을 임의로 사용하는 것은 종법뿐 아니라 실정법 위반에 해당된다. 상표법에 따르면 상표권 및 전용상용권의 침해행위를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협박했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법인관리법>과 관련 보도를 읽어보시면 저절로 아시게 될 것입니다.

"특별교구법은 미끼, 덥석 물면 권승 손아귀로"

조계종이 <특별교구법>이란 걸 만들어서 선학원을 특별교구로 만들겠다는 것도 결국 선학원을 장악하기 위한 술수에 불과합니다. <법인관리법>이든 <특별교구법>이든 종단에서 던지는 미끼를 덥석 무는 순간 선학원은 조계종 권승들의 손아귀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조계종 중앙종회가 <법인관리법>을 개정하여 전체 이사를 총무원장이 임명하도록 만들면 선학원의 미래는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선학원 이사회가 권승들에게 장악되면 선학원을 해체하여 교구별로 나누든, 선학원을 해산하여 통째로 조계종유지재단에 집어넣든 분원 스님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계종 승적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분원의 재산을 보장받기 위해 승적을 포기할 것인가’하는 선택의 기로로 분원장 스님들을 내몬 것은 우리 선학원 임원들이 아니라 <법인관리법>으로 으르고 ‘특별교구법(가칭)’으로 유혹하는 조계종의 권승들입니다. 스님들에게 갖가지 피해를 준 것은 선학원이 아니라 조계종입니다. 스님들은 지금 엉뚱한 곳을 향해 볼멘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또 스님들의 결의문에서는 “창건주 분원장들을 재산관리인이라고 망언한 선학원 이사장”이라고 문제 삼았는데, 이것은 우리측 변호사가 쓴 소송답변서에 있는 내용입니다.

"변호사 법률 논리가 이사장 망언이라니"

법률가들은 조계종의 주지나 선학원의 분원장이 법률적으로 재산관리인이라고 봅니다. 조계종의 <종헌> 제98조 제2항에 “주지는 당해 사찰 재산을 관리하고 수도, 전법, 포교, 법회 및 의식을 관장하며 그 사찰을 대표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조계종 사찰의 주지도 관리자의 역할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조계종에서 ‘재산관리인’이라고 하면 괜찮고, 선학원에서 ‘재산관리인’이라고 하면 안 되는 겁니까? 또 ‘재산관리인’과 상대되는 말은 ‘재산소유자’인데, 그러면 스님들은 절집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재산소유자’의 지위를 원하는 겁니까? 진실로 그걸 원합니까?

마지막으로 결의문에서는 “이제 우리 비구니들은 분연히 일어나야 합니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스님들은 분연히 일어나야 합니다.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온갖 범계승과 범법승이 종단을 말아먹고 있는 이때 양심을 가지고 지성을 갖춘 비구니 스님들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야 합니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의 모습으로 종단을 장악하고 있는 몇몇 조계종의 권승들을 꾸짖어야 합니다. 도박과 은처로 한국불교를 나락에 떨어뜨리고 있는 권승들을 승단에서 쫓아내고 조계종을 정화해야 합니다.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신임 비구니 회장 육문 스님은 취임사에서 “처음의 설립 취지와 달리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점, 비구니스님들과의 소통 및 구심점이 되어주지 못한 점, 종단 내에서 여전히 열악한 비구니의 위상 등에 대한 반성의 소리도 없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양성평등 시대에 권승 들러리 할것인가"

한국의 비구니 스님들은 양성평등의 시대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권승들의 들러리 역할에 머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건 비구니 지도자 스님들이 비구 권승들에게 휘둘리기 때문입니다. 이번 결의문이 바로 그걸 증명합니다. 선학원-조계종 양쪽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만 들여다보면 옳고 그름이 한눈에 드러납니다.

그런데도 진실을 보려는 노력은 손톱만치도 하지 않은 채 조계종 권승들의 말만 일방적으로 듣고 경솔하게 오류투성이의 결의문을 냈습니다. 그러니 비구니 스님들이 승단 구성원의 절반을 차지하면서도 본사 하나 만들거나 차지하지 못하고 고작 몇 석에 불과한 종회의원 때문에 서로 얼굴을 붉히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반성을 전제로, 비구니 스님들이 올바른 지혜의 안목으로 갖가지 사안의 본질을 통찰할 때 이 땅에서 비구니 스님들의 위상을 올바로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제11대 전국비구니회가 한국불교를 나락에서 건져내고 이 시대를 선도하는 스승으로 우뚝 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본지 편집인, 재단법인 선학원 교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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