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명상이 기독교 교회는 물론 천주교 내에도 점차 널리 퍼졌다. 명상이 건강에 유익하다는 소리가 여러 과학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가 커서일 것이다. 지금도 일부 개혁적인 교회에서는 명상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앤드류 뉴버그 박사 같은 저명 의학자는 기독교인일지라도 명상 과정에서는 하나님이 꼭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까지 한다. 한술 더 떠 그는 예수나 붓다는 다년간의 명상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물론 서양의 기독신자 가운데, 특히 마음을 탐구하는 사람들 가운데 불교적 명상을 폄하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그 이유의 핵심은 불교 같은 동양 종교는 그저 하나의 철학일 뿐, 결코 인간을 구원에까지 이르게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들의 반론에는, 예컨대 불교란 선악이 영원히 공존한다는 우주적 이원론을 가르칠 뿐이라는 사념도 있다. 붓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명상을 통해 단지 평안을 얻었다는 주장도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이나 득도는 생사와 선악을 모두 초월해 얻은 경험일 뿐이다. 그러면서 똑같은 명상을 하는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하나님과의 만남’이라 표현하기도 하나보다.

‘정통 기독교인들’은 대체로 불교 명상이란 고작해야 이원적(선악이나 생사) 상태의 번뇌를 피하고자 스스로 인위적인 도취감을 만들어내고, 개인적인 현실로부터 일시적으로 단절하고 있다는 견해도 품고 있다. 명상이란 환상을 만들어낼 뿐인 것이다. 해서 명상을 한다면, 마치 자신이 치유되어 이원성이 없는 건강한 합일 상태로 변화된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는 얘기다. 명상을 통해서는 근본적인 영적 변화란 없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두려움과 이기심에 병들어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이들은 기독교의 회심이야말로 자아를 내려놓게 하고, 자신을 구하려 하지 않고 자아에 대해 죽는 마음을 갖게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이기심을 몰아낸다고 한다. - 이런 주장을 하는 기독교인들을 보면 나는 묻고 싶다. 과연 당신들은 불교적 명상을 제대로 해봤으며, ‘유사 열반’같은 것이라도 체험하고 하는 소리인가. 또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이 현존한다면, 그/그것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거나 우리의 지각 반응에 응하는 그런 ‘상대적 의미의 존재’는 분명 아닐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각 저 너머에 상주하면서도 찰나마다 ‘사랑’ 혹은 ‘무한의 현존’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창조 설계 논리에 따르자면, 피조물인 인간에게도 하나님의 속성이 깊이 새겨져 있을 터다. 그러니 생명의 본성이 사랑이라는 말에도 능히 공감이 간다. 예수는 동양적 어법과는 꽤나 색다른 언어로, 직접 ‘하나님의 빛’을 사람의 목소리에 담아 전달했다고 본다. 성령은 과거, 현재, 미래에도 역사한다는 사실에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한편, 불교에서는 신성한 앎을 참된 공[眞空]이라 했다. 불교에서는 하나님이란 말을 안 쓴다. 하나님 관념을 대입시키자면, 아마 ‘비인격적 실재’로 규정될 수 있으리라. 인간의 마음을 투사한 신이 결코 하나님일 수는 없을 것이기에. 한데 기독교인 가운데 불교의 공을 두고, 그것은 생각도 없고 의식도 없는 텅 빈 묵상 같은 것으로만 알고 있는 이가 많은 것 같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그분의 방법인 사랑을 곰곰 생각하고 되새기는 자신들의 묵상만이 유일무이한 ‘진리의 도구’라 여기고 있다.

기독 신앙에 신실한 사람들이 쓴 이런 유의 글들은 도처에 무수하다. 이런 글 읽다 보면, 생각 드는 게 많다. 착잡하기까지 하다. 왜, 우리의 불교는 현대 철학과 접목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내내 기복 신앙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나. 타 종교와의 소통의 부재, 구두선(口頭禪), 우주와 서로간의 합일을 말하면서도 일견 자폐적으로만 보이는 언행들, 혹여 속으로는 물질 숭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사랑 실천의 부재, 깨달음 병(노이로제) 같은 말들도 떠오르게 된다.

실상 피부로 느끼는 우리의 현 주소가 그러하지 않은가. 일부 기독교인들 눈에 불교가 ‘이상한 신비주의’로 보이게 되는 이유도 수긍이 가는 바다. 나부터 변화를 일으켜야겠다는 분발심이 생기는 요즘이다.

-시인 · 블레스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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