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거듭 밝히지만, 법인(法人)에는 그 정관에 기록된 고유의 목적이 있고, 그에 따른 대한민국 민법에 의한 법적 지위와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되어 있다. 이런 엄연한 실정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두 단체 사이에 감정적인 갈등을 넘어서서, 국가의 법정에 까지 이 문제를 가지고 간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조계종 총무원이 선학원의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 선학원 측의 입장은 대한불교조계종과 재단법인선학원과는 서로 다른 단체이니, 서로 독립적인 운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조계종 총무원의 직책을 맡은 일부 인사들은 ‘한국불교’라는 공통의 기반 위에 두 단체가 있기 때문에 별개의 단체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두 단체는 현행 대한민국의 민법상 분명 서로 다른 주체이다. 다만, 선(禪), 그것도 육조혜능 스님을 계기로 확산된 소위 ‘남종선’의 전통에서 볼 때, 두 단체의 성격이나 활동에는 교집합 부분이 분명 있기는 있다. 그렇다고 두 단체가 완전 동일하지는 않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의 관리권 속에 있었던 ‘조선불교조계종’과 별도로, 자주적으로 조선의 불교를 지키기 위해 법인을 만들어 독자적인 운영을 해오던 법인 단체가 선학원이다. 특히 선승(禪僧)들이 중심이 되어서 말이다.
해방 후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당시의 소위 ‘비구’들 중에서도 선승(禪僧)들이 적극 활약했다. 이 때 까지만 해도 선학원과 조계종은 서로 협조적으로 지내왔다. 선학원이 재단법인이기 때문에 나라 법에 의한 재산권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하여, 실질적인 활동은 조계종 종단 속에서 하면서 말이다. 비록 일부의 승려들이 종권 싸움에 밀려도 최후의 보루로서 재단법인을 활용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인천 용화사의 송담 선사처럼 간화선 중심으로 수행을 하고, 그런 수행인들의 복지와 수행 공간 확보를 보존하기 위해서 재단법인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변화하는 세월 속에서 대한불교조계종도 변화를 거듭해왔다. 재단법인을 보루로 삼아 재산은 법인법을 활용하여 실속을 챙기고, 총무원을 무대로 삼은 종권 행사는 그것대로 한 몫을 챙기는 일부 인사들이 생겼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님들은 재단법인을 활용하여 삼보의 정재를 잘 관리해왔고 출가 본연의 수행과 중생 교화에 온 힘을 들여왔다. ‘재단법인대각회’, ‘백련불교문화재단’ 등등이 말이다. 총무원의 종권 싸움이 쉴 날 없었던 그 와중에서도 말이다.
작금의 사안을 보면서 필자로서는 불안한 생각이 든다. 그 불안함의 근원에는 소위 ‘사판승’에 대한 나의 체험과 관련이 깊다. 승문(僧門)에서 ‘사판’은 ‘하찔’에 속한다. ‘윗찔’에 속하는 이들은 소위 《고승전》에 등장하는 10개의 전공 어디엔가 속하는 승려들이다. 경전을 번역하거나, 교학을 연찬하거나, 선 수행을 하거나, 율장을 연구하고 실천하거나, 불교 교단을 외호하거나, 신통으로 세상을 교화하거나, 몸을 던져 불법을 수호하거나, 독경으로 민중을 교화하거나, 선행으로 세상을 복되게 하거나, 염불 의례를 주관하는 것으로 10과(科)를 꼽았다. ‘사판’을 하더라도 어느 한 ‘과(科)’가 있어야 한다. ‘과’가 없는 승려들이 교단 정치에 맛을 들여 판을 치는 꼴이란 목불인견이다. 출가자라면 반드시 스승에 의지하여 대중처소에서 엄격한 수련을 거쳐야 한다. ‘하찔’ 대학교일수록 연구와 교육은 뒷전에 두고 캠퍼스 정치에 목소리 높이는 교수가 많다.
지금 두 단체의 싸움은 ‘잿밥’에 더 관심을 두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대한불교조계종’을 세운 중요 인물들도 선(禪)을 중시했고, ‘재단법인선학원’도 선(禪)을 중심에 두는 만큼, 선의 수행과 이론 탐구를 위한 동반자로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더 해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사판’들이 어리대지 못하도록 결속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학 캠퍼스도 그렇고 절집안도 그렇고 ‘사판’들이 늘어난다. 말법차일(末法次日)이란 이런 것인가?
-연세대 철학과 교수, 한국선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