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페이스북 아이러브달라이라마(https://www.facebook.com/ilovedalailama)>

통일을 하려면 주변국 협조가 필요합니다. 4자회담이나 6자회담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우리 주변의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은 우리 통일에 관심이 있는 걸 넘어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깊은 인연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우리가 통일을 자주 언급하게 되면 이들 네 개 나라에 목을 좀 많이 매게 됩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손에 들고 있는 나 만의 외교적인 카드를 상대들 모두에게 한 장 적나라하게 보이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이야기를 안 하고 꼭꼭 숨겨도 이미 그들은 한 번 본 우리의 카드가 뭔지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제 마음놓고 얘기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자주 얘기 안 하는게 낫다는 겁니다.

북한 입장에서도 러시아나 중국의 눈치를 조금 안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가끔 미국이나 일본에 대해서는 ‘미사일’ 한 방으로 대응하는 걸 보면 보기에 따라서 참으로 놀랍고도 가상한 외교적인 ‘용기’입니다. ‘만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했는데도 김일성과 김정일 사후 북한이 붕괴되지도 않고 여전히 체제가 유지되는 것을 보면 그리 허약한 ‘정권’은 아닌가 싶습니다. 누구에게도 한 수는 있다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북한처럼 ‘미사일 한방’이라는 ‘북핵’이라는 외교적 카드 한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일본처럼 ‘평화헌법’까지 고치면서 ‘언제나 전쟁할 수 있는 나라’까지 되면서 미국에 아부하는 것도 불가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아부해도 ‘미국’에게 패배한 전범의 외손자인 ‘아베’가 있는 일본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미국을 버리고 중국에 붙는 것은 아직은 지는 싸움이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선택한 것은 ‘통중국하는 친미의 나라’가 됩니다. 외교부 동국아국의 국장이 일본통에서 중국통으로 바뀌는 시점에서 그와 같은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미국의 이익을 실현하면서도 중국과 소통하는 유일한 민주적인 자본주의 국가가 되는 것이 우리의 살길이라는 말입니다. 광해군대의 중립외교처럼 오늘날 우리의 외교는 니체가 말한 ‘외줄타기를 하는 피에로’와 같이, 이 냉엄한 21세기의 외교전쟁 속에서 살얼음판을 걷듯 매우 조심해서 건너야 합니다. 그래서 중국의 전승절에 참석하여 러시아의 푸틴 옆에도 서가면서 중국과 대화를 합니다.

CIA가 있는 미국은 차치하더라도 EU, 특히 과거 서유럽의 여러나라들은 우리에게 ‘중국’에 대해서 외교뿐만아니라 정치, 문화, 사회 등에 많은 것을 묻습니다. 중국이라는 강대국과 국경을 바로 접하면서도 당당하게 적어도 2000년이상 식민지가 되지 않고 가끔 중국을 공격했던 역사를 가진 ‘고구려’ 후예들의 나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로서 가끔 좀 이해하기 어려운 ‘전체주의’ 국가 중국과 정치적으로 직접 거래하면서 경험을 쌓기는 어렵기 때문에 적지 않은 ‘서방국가’들은 우리와 중국의 외교를 관찰하고 연구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의 대중국 외교는 수많은 갈림길에서 부득이한 선택을 강요받으면서도 나름 선전하고 있습니다.

국가적인 실익을 좇아야 하는 외교와 통일 가운데 우리는 어떤 것을 우선해야 할까요? 매우 어려운 문제이지만 단기적인 안목에서는 이미 우린 통일을 버리고 외교를 선택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통일이 대박이 아니라 쪽박 차는 일일 수 있다는 입장에서 UN에서 남북 모두를 함께 인정한 것처럼 양국체제의 고착화로 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인식에서는 남북국시대의 신라와 발해가 200여년동안 그랬듯이 한반도가 양분된 것을 인정하면서 한민족의 두 나라를 인정하게 됩니다. 이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닙니다. ‘이제 만나러 갑시다’(이만갑)의 내용이 아무리 북한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왜곡을 많이 한다고 ‘3등국민’이 된 ‘북한이탈주민’(일명 새터민)이 말해도 이미 우리에게 ‘통일’은 ‘오락프로’에서나 볼 수 있는 ‘개그’가 된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동서독의 통일과는 다른 해법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외교적으로 보여진 카드로서 ‘통일’이라는 ‘뻥카’를 버리면 어떨까요? 오히려 ‘북한’을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며 ‘민족’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외교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미국와 일본’과 친하게 지내고 ‘러시아와 중국’과 소통하면 국가이익은 증대될 것으로 기대하면 안 될까요? 이런 입장에서 보면 단기적으로 ‘통일’을 버리는게 ‘대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사이 신이산가족인 북한이탈주민을 포함한 이산가족상봉과 개성, 금강산 교류 나아가 평양 등도 차츰 개방시켜 나가면 어떨까요? 그렇게 교류를 하다보면 언젠가 ‘통일’이라는 시절인연도 찾아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측면에서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서로를 알고 ‘소통’하고 ‘화합’하고 ‘치유’해 나가는, 즉 마음의 통일이 법이나 영토의 통일보다 더 급선무라는 생각을 공유해야 되는건 아닐까요? 하나가 아니라 이미 둘이니 그 둘이 하나인 것처럼 느낄 수 있게 천천히 ‘믿음’을 회복하면서 가야 합니다. 나와 너가 있으니 나만 인정하지 말고 너도 인정해서 우리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불교의 ‘불이(不二)’관이 여기서도 통용되는 이유입니다.

문수보살은 설하되 설함이 없음으로써 불이법문(不二法門)을 했습니다. 유마거사는 문수보살이 무엇으로 불이법문을 삼겠느냐고 질문하자 아무 말도 안 하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말하는 것이 되고 말해도 말하지 않으니만 못한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통일’은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해 40회 넘게 회의를 했던 달라이 라마 방한 추진 추진위원장 금강 스님은 지난해부터 100만명 서명운동을 벌여 현재 10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난 9월5일부터 12일 사이 달라이라마 존자의 80회 생신을 겸한 다람살라 법회에 참석한 진옥, 금강, 운성 스님 등 달라이라마 방한 추진위 스님들은 2017년 4월1일 방한을 목표로 추진위 구성과 추진위 발대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고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달라이라마는 한국의 상황만 허락된다면 꼭 가겠다며 여러 번에 걸쳐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참배하고 싶다. 한국의 지식인들과 대화를 하고 싶다. 한국의 김치도 먹고 싶다. 어떠한 중요한 일이 있더라도 더 중요하게 여기고 한국에 방문하겠다”고 전했다고 합니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친중정권 아닌 친중정권이 되어버린 우리나라에 달라이라마가 올 확률은 거의 전무해 보입니다. 하지만, 중국과의 오랜 그리고 깊은 ‘신뢰’가 있는 우리이기에 이제 오히려 가능해지기도 했습니다. 임기 말, 아니 다음 대선이 있는 2017년 정유년의 만우절인 4월1일에 ‘거짓말처럼’ 달라이라마는 방한할 수 있을까요? 정유재란 420주년아 되는 2017년 그 해, 가을 9월4일경에 방한이 이뤄진다면, 그때 달라이라마는 위안부와 식민지배를 부인하며 ‘언제라도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된 ‘일본’에 대해서는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요?

하도겸 | 칼럼니스트, dogyeom.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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