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경》을 닦으면 원만한 자애심이 생긴다.

경에서는 보살이 《열반경》을 닦으면 치우친 자애심에서 원만한 자애심을 얻는다고 한다. 자애심은 자(慈)·비(悲)·희(喜)·사(捨)의 사무량심 중 첫째 마음이다. 자애심은 모든 사람들에게 안락을 주는 마음이다. 곧 이 경을 열심히 닦으면 자애심으로 중생을 안락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중생은 편벽된 마음으로 애착하여 세속적이고 악한 현상적 자애심을 내는데 비해, 보살은 원만한 자애심으로 널리 중생들을 사랑하고 안락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경에서는 다섯 가지 치우친 자애심과 원만한 자애심이 생긴다고 한다.

첫째, 이제(二諦)의 자애심이 있으니 보살은 세속적인 자애심을 버리고 제일의제의 자애심을 가지고 있다. 세간에서는 부모와 자식 사이, 남과 여, 친구 사이의 사랑하는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출세간의 자애심에서 보면 이러한 자애심은 생·로·병·사의 윤회 속 사랑에 불과하다. 보다 높은 사랑은 진리를 깨달아 일체중생을 평등하게 사랑하는 자애심이라는 것이다.

둘째, 범부의 자애심과 성인의 자애심으로, 범부의 자애심을 버리고 보살의 무연자(無緣慈)를 얻는다. 범부의 자애심은 근본적인 욕구 욕망에서 발현된 자애심으로 탐·진·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개인이 직장이나 사회에서 행하는 고객에 대한 자애심은 근본적으로 나의 이익과 관련된 것이다. 사회인이나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애심도 마찬가지이다. 보살은 이러한 이기적인 사랑, 인연에 의해 이루어지는 자애심에서 벗어나 조건 없는 자애심을 베푼다.

셋째, 선·악의 자애심이다. 일천제나 계율을 범한 자나 방등경을 비방하는 자의 마음을 버리고, 일체중생을 가엾게 여기는 자애심과 여래가 중생을 사랑하는 자애심과 무연자의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푼다는 것이다.

넷째, 비루한 자의 마음은 버리고 보살의 수승한 자애심을 얻는다. 근(根)이 없는 자, 근이 둘인 자, 백정, 사냥꾼, 짐승 기르는 자 등과 같이 집착에서 일어난 자애심을 버리고, 성문·연각과 같은 자리적인 자애를 버리고, 보살과 같은 자리이타의 무연자를 얻는다는 것이다.

다섯째, 집착 없는 자애심을 얻는다. 자기에 대한 사랑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 계율을 지녔다는 생각이나 파했다는 생각을 버리고, 스스로 불쌍한 상태에 있었거나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더라도 괴로움 속에 있거나, 괴로움에 빠져있는 자를 도와주더라도 이러한 데에 집착하지 않는다. 보살은 제일의 진실한 진리를 닦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열반경》을 닦으면 열 가지 일을 성취하는 공덕을 얻는다고 한다.

첫째, 선근이 깊어 뽑기 어려움이다. 《열반경》을 닦으면 선근이 깊어 뽑아내기 어렵다고 한다. 여기서 선근이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선근이다. 부처님의 선근공덕은 모두 방일하지 않음에서 생긴다. 방일하지 않으므로 다른 선근들이 점점 늘어나고, 모든 선근들이 늘어나므로 모든 선한 일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한다. 모든 빛 중에 햇빛이 제일이듯이 방일하지 않는 법도 모든 선법 중에 제일이다. 방일하지 않으므로 믿음의 근본이 증장되고, 계행의 근본, 보시의 근본, 지혜의 근본, 인욕의 근본, 정진하는 근본, 생각하는 근본, 선정의 근본, 선지식의 근본들이 증장하게 되며, 증장하므로 깊고 견고하여 뽑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는 선근은 그 뿌리가 깊어서 뽑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 자기의 몸을 정함이다. 《열반경》을 닦으면 자기 몸을 관하여 장차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그릇을 이룰 것임을 정한다고 한다. 중생들은 몸을 정할 때 몸을 관하여 생사의 그릇이라고 하거나, 몸을 관하여 열반의 그릇이 없다고 관하게 된다. 《열반경》을 닦으면 몸을 관하여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 관하여 중도를 드러내니, 곧 삼보리의 그릇이라고 몸을 결정한다. 다음에는 마음 또한 이와 같아서 협소한 마음을 짓지 않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도 짓지 않으며, 마군의 마음이나 생사를 좋아하는 마음도 짓지 않고 항상 중생을 위하여 자비한 미음을 구하니, 이를 자기 몸을 관하여 정해진 마음을 내되 오는 세상에서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그릇이 되리라 정한다는 것이다.

셋째, 복밭인가 복밭 아닌가를 보지 않음이다. 보통 사람들은 외도의 계행을 가진 이로부터 부처님에 이르기까지를 복밭이라고 하지만, 보살은 이념처(異念處)를 잘 닦아서 온갖 한량없는 중생들을 모두 복밭이라고 관한다. 이념처를 닦은 사람은 중생을 관하여 계행을 가지거나 파함이 없고, 보시를 행하나 네 가지를 항상 부처님이 말씀하신 대로 관찰하여 청정한 과보를 받는다. 네 가지 보시란 시주는 청정하나 받는 이가 부정한 경우, 시주는 부정하나 받는 이가 청정한 경우, 시주와 받는 이가 부정한 경우, 시주와 받는 이가 모두 청정한 경우이다. 보살이 이와 같이 관하여 보시하는 인 보시의 과보를 보지 않으면 이 사람은 계행을 파하고 나쁜 소견에 집착한다고 이름하지 않아서 청정한 과보를 얻는다.

넷째, 부처님 국토를 깨끗이 함이다. 보살이 대열반의 경전을 실천하여 오로지 정토업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중생을 제도하고 불살행, 불투도, 불사음 등 십선을 행하고 십악을 멀리 여읜다. 이와 같이 보리심과 화합하여 행하니, 이 선근을 모든 중생들과 함께하며 부처님 세계에 있는 중생들이 모두 반야바라밀 얻기를 원하면, 이렇게 서원한 인연으로 내세에 부처님을 이룰 때 모든 중생들이 다 마하반야바라밀을 얻게 되니 이를 부처님국토를 청정히 닦는다고 한다.

다섯째, 다른 나머지 업 등을 없애고, 여섯째 업의 인연을 끊음이다. 나머지 업 등이란 하나는 번뇌의 나머지 과보이고, 둘은 나머지 업이며, 셋은 나머지 인과이다. 어떤 중생이 탐욕을 익히며 그 과보가 성숙되어 지옥 등 악도에 떨어지고, 여기서 나오면 다시 그 나머지 과보로 선도에 떨어지더라도 불선근을 얻어 법을 배우지 못한다. 예를 들면 어떤 중생이 탐욕을 익히면 그 과보가 성숙해져서 지옥에 떨어지고, 지옥에서 나와서 축생의 몸을 받는다. 설사 인간의 몸을 받더라도 근(根)이 원만하지 못하고 계율 등을 범하므로 이를 나머지 과보라고 한다. 나머지 업이란 모든 범부의 업, 모든 성문의 업, 수다원의 업, 사다함의 업, 아나함의 업 등 아식 생사윤회의 업을 얻으니 보살은 《열반경》을 닦음으로 모두 끊어버린다. 또한 나머지 인과란 아라한이 아라한과를 얻고 벽지불이 벽지불과를 얻을 때 업과 번뇌가 전멸(轉滅)해버려서 그 인과만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일곱째, 청정한 몸을 닦는다는 것은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륜왕을 청하려면 선법을 행하여 안팎의 32상 80종호 등 몸과 마음을 닦아야 한다. 마치 사람이 감로를 먹으려면 먼저 몸을 청정히 해야 하듯이 보살도 위없는 감로맛인 반야바라밀을 얻으려면 먼저 80종호로 몸을 청정히 해야 한다. 이와 같이 몸이 청정해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얻기 때문이다.

여덟째, 모든 인연을 분명히 앎이다. 인연화합으로 생긴 것들은 세제(世諦)로, 이러한 인연의 세제를 보지 않고 실상을 아는 것을 말한다. 보살은 형상과 빛의 모양과 그 소멸을 보지 않으니 이는 그 인연을 분명히 안다고 한다.

아홉째, 원수를 여읜다는 것이다. 온갖 번뇌와 마군은 보살의 원수이니 보살은 이를 멀리 여의기 때문이다.

열째, 두 가장자리를 끊음이다. 보살이 삼계 25유와 애착의 번뇌를 멀리 여의는 것을 말한다.

이기운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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