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교보문고에 들렀다. 주말이라 좁다란 통로마다 북새통이다. 아마 낯선 외국인이 모처럼 서울 시내의 이런 곳을 들렀다면, 우리나라엔 독서 인구가 꽤 많을 거란, 추측도 했으리라. 그러나 우리 국민의 독서
역량은 매우 빈약하단다. 일 년에 책 한권도 제대로 읽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보고다. 청년층은 독서와 점점 거리를 두고 있으며, 외려 장년층이나 주부층에서 독서 열기가 좀 더 높다고 분석되고 있다.

영상문화나 디지털 매체의 발달, 문화 콘텐츠의 다양화, 소비의식의 변화에 따라 문학이 쇠퇴해진 이유도 있겠다. 이러다 문학은 완전 실종되는 게 아니냐고, 식자들은 우려한다. 이제 시집은 500권 정도의 자비출판 형식이 보편화되었다. 소설은 오천 권 이상만 팔리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시대보다 각종 문학상은 아주 풍성해졌다. 그리고 여러 문학상들도 웬만큼 지명도가 있는 사람이라면, 돌아가면서 ‘공평하게’ 타먹고 있는 모양새가 됐다.

문학잡지는 약 300여종이 넘는다고 했던가. 한 문학잡지가 2000부 이상 찍는 경우는 아주 희귀하다. 대략 500~1000부 정도가 평균 부수일거라 추측한다. 각 문학잡지들은 일종의 계모임 형식이거나 친목단체로 운영되고 있는 듯하다. 미상불 작가들은 그들만의 리그에 참여하여 일종의 자위행위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출판사는 2만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대부분 부실경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부자 출판사는 상당한 ‘권력’ 행사를 하나보다. C 대학 박모 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소위 주요 언론사 문학 담당 기자들과 메이저 출판사간에 ‘음성적 거래’를 통해, ‘문학 권력’ 같은 게 형성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간다. 작가라면 작품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는 소망이 있기 마련이다. 누가 무슨 문학상을 타도, 세상에 널리 알려져야 의미가 깊지 않겠는가. 그런데 상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이 ‘알림’에 문화 권력이 자연스레 개입된다는 소리다. 이제는 이런 ‘알림’의 메커니즘에, ‘권력’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상의 권위마저 희미해지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말할 것도 없이 시장의 이익-독자확보-여론을 ‘살피는’ 작가는 진정한 의미의 자립적 존재라 할 수 없다. 일부 출판사 권력이나 언론 권력의 유착 고리가 끊어져야 마땅하다. 상업주의의 발로에서 나온 이런 얼치기의 미성숙한 태도에서 우리 모두 벗어날 때가 됐다는 박 교수의 목소리다. 작가에게 출판과 언론 매체는 에이전트이자 동시에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주인-노예’의 구조로까지 비약된 현실이 슬프기만 하다.

선진 외국에서도 이런 ‘현상’이 유행하는지? 아니면, 이런 게 우리만의 고착화된 풍토병인지, 의문도 든다. 언제쯤 이런 권력이 정화의 과정을 거쳐 ‘정당한 힘’을 얻을는지, 그것 또한 궁금하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난한 잡지/문인들을 더욱 옥죄게 하는 시책이 본격 가동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지난 2014년 7월 23일 문예진흥기금의 대안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나온 말이다. “문진기금에 관한 명확한 정책대안이 수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는 2016년에는 기금이 완전히 고갈될 위기에 직면했다.

2017년부터는 정상적인 ‘문진기금’사업예산 편성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일부에서는 문학의 위기와 종말의 서곡이 시작됐다는 탄식을 한다. 이제 문화정책도 돈을 버는 논리를 따라가야 하는 형국이 돼버렸다. 작가들은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할 길을 먼저 찾아 나서야만 되는 시대가 도래된 지 이미 한참 됐다.

문화 권력에는 의당 종교권력도 포함된다. 사실 서비스업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종교 문화/사업도 출판문화만큼이나 위기다. 모든 사업이 돈 없이 유지될 순 없다. 언론과 금전과 종교/문화 권력간 ‘유착성 관계’의 문제는 이제 ‘품격’면에서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즉, 관행처럼 지켜온 미성숙한 ‘관계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종교 또한 스스로 ‘건전한 자립’을 심각하게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테면 현재 대한불교조계종이 출판사의 이름으로 카렌다나 물장사를 사업으로 펼치고 있는 것도 돈과 직결돼 있다. 안 팔리는 책을 팔기보다 팔리는 물과 카렌다를 상품으로 진열해야 하는 모순 구조가 있다. 책 읽는 풍경이 그립다. 작은 변화라도 기대를 해 본다.

-시인 · 정신건강의학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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