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경》을 열심히 공부하고 수행하면 어떤 공덕이 있을까. 경에서는 다섯 가지 신통력이 생긴다고 한다. 곧 “예전에 얻지 못한 것을 얻고, 예전에 이르지 못하던 데에 이르며, 예전에 듣지 못하던 것을 들으며, 예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며, 예전에 알지 못하던 것을 안다”는 것이다. 《열반경》을 수행하기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다섯 경계에 들어가므로, 경에서는 이를 ‘다섯 가지 신통’이라 하였다.

경전에서는 수행을 통해 생겨나는 불가사의하고 자재한 작용을 오신통, 육신통으로 설하였다. 육신통 중에서 누진통(漏盡通)을 얻으면 번뇌와 망상을 끊음이 자재하여 삼계에 미혹하지 않으며, 신족통(神足通)은 그 몸을 마음대로 변할 수 있어서 세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장애를 받지 않고 자유자재하게 환히 볼 수 있으며, 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무슨 소리나 잘 들으며, 타심통(靑心通)은 사람은 물론, 어떤 중생일지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알 수 있으며, 숙명통(宿命通)은 자신뿐만 아니라 육도에 윤회하는 모든 중생들의 전생과 금생, 내생의 일을 다 알 수 있다고 한다. 이중에 누진통을 제외하고 오신통이라 한다.

《열반경》에서는 우선 신통을 두 가지로 구분하기도 한다. 외도들이 닦아서 얻는 신통을 외신통(外神通)이라고, 불교를 수행해서 얻는 신통을 내신통(內神通)이라 한다. 내신통은 다시 이승(성문, 벽지불)들이 얻는 신통과 보살들이 얻는 신통으로 나뉜다.

첫째의 “예전에 얻지 못한 것을 얻는다”는 것은 곧 누진통을 가리킨다. 《열반경》을 닦으면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번뇌 망상들이 다 끊어져서 이승, 보살 등의 신통이 생기므로 몸과 마음이 자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열반경》을 닦으면 이승들의 신통이 아니라 보살의 신통을 얻는다는 것이다. 《열반경》의 신통은 생사고해의 번뇌 망상을 여의는 이승의 신통을 뛰어넘어서 자리이타를 실천하는 보살의 신통을 말한다. 그러므로 경에서는 오취(五趣)의 몸을 일심 중에 원만하게 갖춘다고 하였다. 보살은 삼계의 번뇌 망상을 다 끊고 법계에 나투어 중생을 제도하므로 몸과 마음이 자재하게 된다. 중생들은 보고 듣고 내지 의식하는 대상에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은 생각을 내어 집착하므로 마음이 자재하지 못하고, 이로 인하여 색·수·상·행·식의 오온이 이루어지므로 몸도 마음도 자재하지 못하다. 중생들은 혹은 마음이 몸을 따르고, 혹은 몸이 마음을 따른다고 한다. 마음이 몸을 따른다는 것은 예를 들어 술 취한 사람의 경우, 몸이 움직이는 대로 마음이 이를 제지하지 못하고 따라 움직이고, 어린아이는 몸이 작으므로 마음도 작고 어른은 몸이 크므로 마음도 큰 것과 같으며, 만약 몸이 꺼칠하면 마음을 기름등으로 부드럽게 하려고 하는 등과 같다. 몸이 마음을 따르는 것이란 가고 오고 앉고 누울 때나 보시·지계·인욕·정진을 닦는 것이나, 근심하면 몸이 여위고 기뻐하면 몸이 살찌고 두려워하면 몸이 떨리고, 진심으로 법을 들으면 몸이 화평하고 슬퍼하면 눈물이 나는 등을 말한다. 이에 비해 보살은 몸과 마음이 자재하여 어떤 세계에 어떠한 크고 작은 몸을 나타내더라도 항상 넓고 큰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자유자재로 몸을 나툴 수 있어서 보살은 여의통 신족통을 얻는다고 한다.

《열반경》에서는 둘째 “예전에 이르지 못하던 데에 이른다”고 한다. 보살마하살은 성문이나 벽지불이 이르지 못하는 곳에 이르고 몸을 변화함에도 이승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에도 자재하다는 것이다. 보살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티끌과 같은 몸을 나타내고 티끌과 같은 몸으로 항하사 모래 같은 부처님세계에 이르러도 장애되지 않고, 몸을 변화하여 삼천대천세계와 같이 하며, 그 큰 몸으로 다시 티끌 같은 곳에 들어가되 걸림이 없다. 이와 같이 뜻하는 대로 자재하게 나투어 마음에 따라 제도한다. 몸이 삼천대천계 같더라도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내기도 하고, 작은 몸을 나타내더라도 넓고 큰 마음을 내며, 마음에 슬픈 일이 없지만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무서운 일이 없지만 떨기도 한다.

셋째, 보살이 《열반경》을 닦으면 “예전에 듣지 못하던 것을 듣는다”고 한 것은 천이통을 말한다. 《열반경》의 보살은 인행에서 소리의 모양을 취하여 코끼리 소리, 말의 소리, 수레의 소리, 사람의 소리, 소라의 소리, 북의 소리 등을 익혀서 한량없는 세계의 음성을 듣는다. 보살이 이와 같이 음성을 듣더라도 소리에 대한 상(相)이 없으니 과보가 없다. 세간에서 인으로부터 생기는 법은 인이 있으면 과가 있고 인이 없으면 과가 없으니, 인이 무상하면 과도 무상하기 때문이라 한다. 예를 들면 악한 소리에 일정한 상이 있다면 그 소리를 듣는 이 마다 악한 마음을 내게 된다. 따라서 악한 소리는 이 소리로 인하여 삼악도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생들이 번뇌의 속박으로 인하여 나쁜 마음이 점점 많아져서 삼악도에 나게 되는 것이다. 곧 보살은 한 글자 한 구절을 듣더라도 글자란 상을 짓지 않고, 구절이란 상을 짓지 않고, 듣는다는 상을 짓지 않고, 부처란 상을 짓지 않고, 말한다는 상을 짓지 않는다. 이를 상이 없는 상이라고 하며, 이런 까닭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한다. 보살은 이와 같이 수행하여 예전에 듣지 못하던 것을 지금 듣게 된다고 한다.

넷째, 보살이 《열반경》을 닦으면 “예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된다”고 한 것은 천안통을 말한다. 보살은 인행에서 해와 달과 별과 구슬의 빛과 약초의 빛을 취하여 알아서 성문이나 벽지불과 같지 않은 안목을 얻는다. 보살은 이승의 천안을 닦지 않고도 묘한 몸을 보고 해골임을 보며, 다른 곳의 항하사 모래 같은 세계 모습을 보더라도 색(色)이라는 상을 짓지 않고, 항상한 모습, 있다는 상, 물건이라는 상, 이름이라는 상, 인연이라는 상도 짓지 않고, 다만 인연과 인연이 아닌 상을 보게 된다. 곧 색(色)이라는 형체는 눈의 인연으로 보이는 것이요, 이러한 색은 인연으로 이루어진 무상한 것이니 색에 대한 상, 탐·진·치의 상을 짓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살은 색을 보더라도 색이라는 상을 짓지 않고 그 실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열반경》을 닦은 보살은 무상한 색을 보고 몸에 36가지 부정한 것이 가득한 것을 마치 손바닥의 아마륵 과일 보듯이 보게 된다. 또 중생의 모습만을 보고도 그 사람이 대승인지 소승인지 알며, 옷만 만지고도 선하고 악한 근기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다섯째, 보살이 《열반경》을 닦으면 “예전에 알지 못하던 것을 안다”는 것은 타심통과 숙명통을 말한다. 보살은 인행시에 항상 공한 성품과 공한 모습을 닦아서 범부의 탐내는 일 성내는 일 어리석은 마음을 안다. 또한 나〔我〕도 없고 내 것〔我所〕도 없음을 알며, 중생들이 모두 불성이 있음을 알고, 일천제도 그 성품을 버리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음을 안다. 또한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익히면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지혜가 생긴다. 보살은 이승과 달리 한번 생각하는 지혜〔一念智〕로 육취중생의 마음을 두루 안다고 한다.

이기운 | 불교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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