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제 아무것도 없는 거니
언젠가 네가 여행을 떠날 땐
꼭 웃으며 보내주마
하지만 조금 쓸쓸하려나
부탁이다, 잘 살아야 한다

<늑대아이> 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의 OST 가사입니다. <어머니의 노래>라는 제목의 노래를 들으면서 아이들에 대한 나의 마음이 이 어머니 마음과 많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조금 뜻밖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영화에 나오는 어머니는 완전한 모성애를 보여주는 어머니인데 반해 나는 스스로를 많이 부족한 엄마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둘의 마음이 일치한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았습니다. <늑대아이>의 훌륭한 엄마든 나처럼 평범한 엄마든 엄마라는 존재는 기본적으로 자식에게는 헌신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이 영화 <늑대아이>(일본, 2012)가 보여준 모성(母性)은 우리가 익히 생각해왔던 그것입니다. 여성이라면 태어나면서 이미 모성을 타고난다고도 하고, 본능이라고도 하는데, 자식을 건강한 사회인으로 길러내는 게 여성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늑대아이>의 엄마는 여성의 이러한 숭고한 역할에 가장 부합한 어머니였습니다. 자신의 개인적 욕구보다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삶을 할애한다는 인상을 주었으며,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어머니상인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한 어머니를 통해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성숙한 인간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름 반성하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 워즈> 등의 작품을 통해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인정받은 감독입니다. 이 영화 <늑대 아이>는 2013년 제36회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애니메이션 관련 영화제에서 다수 수상했습니다.

<늑대아이>는 반인반수(半人半獸)라는 판타지적 소재의 작품이지만 표현방식은 철저하게 리얼리티를 따르고 있습니다. 영화에는 초보 엄마의 힘겨운 육아기를 비롯해서 농촌에서의 정착, 아이들의 성장기, 그리고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모습 등을 현실성 있으면서 섬세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늑대아이>에서 위대한 모성을 보여준 엄마는 평범한 여대생이었습니다. 엄마는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성실한 학생으로 어느 날 강의실에서 한 남학생을 보았습니다. 그가 늑대아이들의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면서 이 대학에서 청강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엄마와 아버지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엄마는 아버지에게서 놀라운 사실을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100년 전에 멸종한 일본 늑대의 혈족으로 자신이 바로 늑대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마지막 늑대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늑대로 변했을 때의 모습까지 확인시켰지만 이미 아버지를 사랑하게 된 엄마는 그것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둘은 마침내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곧 첫째 딸 유키가 태어나고 둘째 아들 아메가 태어나고 얼마 후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면서 엄마는 갑자기 싱글 맘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어려운데 반은 늑대인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끔찍하게 어려웠습니다.

아이들이 아플 때는 소아과로 달려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동물병원으로 데려갈 수도 없어서 갈팡질팡해야 했으며. 밤이면 늑대 울음소리를 내는 아이들 때문에 집주인에게 한소리 들어야 했고, 아직 어리다보니까 감정을 조절할 수 없어 아버지와는 달리 늑대로 곧잘 변해버리는 아이들을 데리고는 산책도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집안에 꽁꽁 숨어 있어야 했습니다.

엄마는 늑대아이들의 아버지가 갖고 다니던 사진 속 마을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오지마을 빈집에 이사 들게 됐는데 그 집은 폐가와 다름없었습니다. 마당에는 잡풀이 무성하고 지붕은 곳곳이 뚫려 비가 새고, 그야말로 사람이 살만한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좋아했습니다. 누나 유키는 특히 활달한 성격답게 마당으로 지붕 위로 뛰어다니면서 신나했고, 고양이와 싸우고, 맨 손으로 뱀을 잡는 등 산속 생활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엄마는 놀라운 인내력으로 이곳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갔습니다. 마당의 풀을 뽑아내고 그곳에 아담하고 예쁜 정원을 만들고 지붕을 손봐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끄떡없게 손질하고, 집안을 반짝반짝 윤기 나는 깨끗한 곳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이제 누나와 동생은 엄마의 보호 아래서 산을 뛰어다니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과 달리 엄마에게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이제 돈은 다 떨어졌고 앞으로 먹고 사는 일이 걱정이었습니다. 엄마는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기로 마음먹고는 이동도서관에서 농업 관련 책을 빌려다 읽으면서 농사를 지었지만 뜻대로 안 됐습니다. 농사는 책으로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나타났습니다. 그 동네에서 괴팍하기로 유명한 노인이 엄마에게 “오늘 밭을 갈고 내일 열매가 맺기를 기대하느냐”면서 선문답 같은 말로 기를 죽이더니 점차 밭을 갈아 이랑을 높이고, 씨감자를 심고, 그리고 이웃과 어울리게 하는 등 엄마가 마을에서 정착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전반부가 엄마가 싱글 맘으로서 홀로 13년간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의 어려움을 담고 있었다면 후반부는 어느 정도 성장한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누나인 유키는 늑대와 인간의 갈림길에서 인간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을 사귀고, 그리고 늑대인간이라도 상관없다는 소년을 만나게 됐습니다. 아버지가 인간사회에 살면서 엄마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던 것처럼 누나 유키 또한 그런 삶을 살게 될 걸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누나는 기숙사가 있는 상급학교로 진학하면서 엄마 곁을 떠났습니다.

반면에 동생인 아메는, 늑대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누나와 달리 아메는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학교를 빠지는 날이 많았고 그런 날이면 늘 산을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스승을 만났습니다. 아메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이는 산의 대장으로 여우입니다. 아메는 학교를 빠지고 여우와 산을 뛰어다니면서 사냥하는 법, 지형읽기, 영역 정하기 등을 배우면서 야생의 삶을 익혀나갔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누나 유키가 식탁에 앉아 숙제를 하고 있을 때 앞에 앉은 아메는 누나에게 자신과 함께 산에 가서 선생님을 만나자고 했습니다. 선생님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넘치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메의 말에 누나는 버럭 화를 내면서 당장 학교나 나오라고 하고, 아메는 싫다면서 언성을 높이다가 둘은 물고 뜯고 할퀴면서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이 장면은 둘의 길이 완전히 갈렸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누나는 인간의 길을 가고, 아메는 야생늑대의 길을 가는 걸 의미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마침내 여우 선생님이 죽자 아메는 산의 대장이 되었으며 이제 완전히 엄마 곁을 떠났습니다. 10살이라는 나이는 늑대로 보면 어른에 해당하지만 인간의 측면에서 보면 아직 어린 나이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엄마의 눈에 아메는 10살짜리 소년에 불과한데 그런 아메가 천둥을 동반한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산으로 들어가자 엄마는 아메를 찾아 산속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산에서 길을 잃고 쓰러져 있었는데 어린 줄로만 생각했던 아메가 엄마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미련 없이 돌아섰는데, 그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엄마는 아들과의 이별을 실감했습니다.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엄마의 모습은 <보이후드>라는 영화의 한 장면과 겹쳤는데 그 영화에 나왔던 엄마와 <늑대아이>의 엄마는 같은 장면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보이후드>의 엄마는 다른 도시에 있는 대학으로 떠나기 위해 짐을 싸는 아들 앞에서 눈물바람을 보였습니다. “내 인생에 뭔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뭐야. 다들 떠나버린 빈 집에서 이제 관으로 들어갈 날만 기다려야 하는 거야?” 하면서 깊은 상실감을 보였습니다. 반면에 <늑대아이>의 엄마는 아메가 산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난 너에게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는데….” 하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보이후드>의 엄마가 자식보다는 자기에게 의식의 중심이 있다면, <늑대아이>의 엄마는 한없이 희생적이었습니다. 자신을 의식할 틈이 없을 정도로 자식에 대한 애정이 넘쳤습니다.

<늑대아이>의 엄마는 아이들이 다 떠나버린 빈 집에서 여전히 살았습니다. 가끔씩 산속에서 늑대울음소리가 들리면 아들의 안녕에 안도하듯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제는 자식들을 직접적으로 보살피지는 않지만 여전히 마음은 자식들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읽었던 <어머니의 노래>라는 엔딩곡이 흘러나왔는데, 언제나 자식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담은 노래였습니다.

영화에서는 늑대아이라는 판타지적 소재를 통해 모성애를 극적으로 보여주었지만 세상의 많은 어머니들의 삶이 이 어머니의 삶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은주 | 자유기고가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