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도처시고향(男兒到處是故鄕)  장부는 이르는 곳마다 고향이건만,
기인장재객수중(幾人長在客愁中)  나그네 시름에 겨운 사람 그 몇이던가.
일성갈파삼천계(一聲喝破三千界)  한소리 질러 온 우주를 깨우쳐 밝히니,
설리도화편편홍(雪裏桃花片片紅)  펄펄 날리는 눈 속에 복사꽃이 보이는구나.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1917년 12월 3일 설악산 오세암에서 깨달음의 경지를 읊은 오도송입니다.

만해스님은 이미 약관의 나이에 삼천대천세계가 환히 열리는 구경(究竟)세계를 체험하셨고, 그런 까닭에 눈 속에 복사꽃이 흩날리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원만한 경계를 정신의 낙처(落處)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해 스님께서는 수행을 통한 정신적인 깨달음은 대중에게 회향될 때 비로소 완결된다는 것을 잘 아셨기에 평생 동안 독립운동과 계몽활동 문학창작에 매진하셨던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또한 만해 스님께서 열반하신 지 71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그러니까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는 자신께서 그토록 갈앙했던 조국 광복도 보지 못하고 열반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알 수 없어요>라는 시편에서 말씀하셨듯이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는 것’처럼 꿈결에서조차 잊지 않으셨던 스님의 조국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부끄러운 것은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많은 시와 논문들을 통해서 자비사상을 역설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스님께서 열반하신 지 71년이 지난 지금도, 남과 북, 동과 서로 나뉘어 내 편, 네 편을 가르고, 내가 옳네, 네가 옳네, 무용한 싸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 스님의 영전 앞에 서기가 차마 죄스러운 것은 우리 불교계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는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요즘의 참선하는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옛사람들은 그 마음을 고요하게 가졌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 처소를 고요하게 가지고 있다. 옛사람들은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다.”

만해 스님은 출가사문들이 참답게 수행을 하지 않고, 겉모습과 위선에 치우친 수행자들에게 경책의 죽비를 드셨던 것입니다.
근간의 한국불교는 ‘불교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불교를 걱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만해 스님의 『불교유신론』과 추상과 같은 불호령소리가 그립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물을 나르고 땔 나무를 운반함도 묘용(妙用)아님이 없고, 시냇물 소리와 산 빛도 같은 참모습(眞相)임을 알라”고 일러주셨던 것입니다.

우리 재단법인 선학원은 재단 설립자의 한 분이신 만해 스님의 이념과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고자, 매년 추모행사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금년은 “어지러운 세상, 만해에게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추모일을 즈음하여 음악제, 학술제, 문학제,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불망(不忘), 만해 한용운 스님의 가르침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만해 한용운 스님의 발자취를 쫓아서 우리 후학들은 이르는 곳마다 고향마을이 될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쳐 삼천대천세계를 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불기 2559(2015)년 6월 29일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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