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난세를 헤치고 나아가 위대한 인물이 된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희생하여 민족의 영원한 등불로 남은 위인은 많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만해 스님은 민족사에 우뚝 선 횃불이었으니 우리는 그를 일러 민족의 스승이라 일컫습니다.

만해 스님께서는 1879년 7월 20일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세기 말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던 조선의 현실에 맞닥뜨려 민족이 나아갈 해답을 찾기 위해 번민하다가 설악산 백담사 연곡 스님을 은사로 출가사문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후 일제에 국권이 침탈되자 스님은 중국과 시베리아, 일본 등지를 주유하며 민족해방의 길을 모색했고, 귀국 후 항일운동을 본격화 하는 동시에 저술과 대중강연 등으로 민족혼을 일깨우는데 앞장섰습니다.

만해 스님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으로 3.1독립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셨으며, 불후의 명작 《님의 침묵》을 쓰신 시인이셨으며, 《조선불교유신론》을 집필하고 제창하신 불교개혁사상가이셨으며, 자유와 평등을 높이 외치고 실천하신 사회사상가이셨습니다.
평생을 조국독립, 불교개혁과 사회변혁을 위해 제 한 몸 돌보지 아니하고 전력투구하셨으니 그 거룩한 의기는 자손만대에 전할 본보기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스님께서는 그토록 염원하셨던 독립의 기쁨을 맛보지 못한 체 해방 한 해 전인 1944년 오늘 이곳 심우장에서 굴곡 많은 66년의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비록 만해 스님은 가셨지만 자신을 불살라 스스로 빛이 되신 스님을 흠모하는 세상의 그리움은 날로 더해 갑니다.

올해로 입적 71주기를 맞는 만해 한용운 스님 다례재에 자리를 함께 해주신 내외귀빈과 사부대중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일찍이 만해 스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돌아보아 조금도 부끄럽지 않고 옳은 일이라 하면, 용감하게 그 일을 하여라. 비록 그 길이 가시밭이라도 참고 가거라. 그 일이 칼날에 올라서는 일이라도 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스님께서도 이 말을 몸소 실천하셨으니 많은 이들이 일제의 탄압과 박해에 훼절하고 굴복하였지만 스님만이 오로지 지조와 의리를 지키셨습니다.

이러한 정신이 이어져 조국의 독립과 해방의 새 날을 열었지만 불행하게도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기심과 탐심으로 얼룩져 갈등과 분열의 아픔을 겪고 있으니 스님께 죄스러운 맘 금할 길이 없습니다.

실로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때보다 스님이 몸소 보여주셨던 보살정신이 간절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의 지도자라면 누구나 희생과 헌신으로 일관하셨던 스님의 구도자적 삶을 본받아 사회 속에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곳 심우장에서 스님께 한 줄기 향을 사루며 발원합니다. 스님께서 희망하셨던 자유와 평화가 넘실대는 국가, 만중생이 행복한 국토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불살라 겨레의 빛이 되고, 민족의 등불이 되었던 스님의 고귀한 뜻과 실천행을 우리도 이어가겠노라 다짐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늘 스님의 행화를 기억하고 유지를 받들어 계승해 나아가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불기 2559(2015)년 6월 29일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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