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선장만 살려준 격이다.”

대한불교조계종 호계원이 지난 18일 제96차 재심호계원 심판부에서 멸빈당한 전 총무원장 의현 스님에 대해 공권정지 3년을 결정하자 종단 일각에서 내놓고 있는 조롱 섞인 촌평입니다.

의현 스님은 1994년 총무원장 3선을 강행하다 같은 해 4월 범승가종단개혁추진위에 의해 총무원에서 쫓겨났습니다. 당시 의현 스님 집행부를 무너뜨리며 출범한 개혁회의는 ‘해종행위조사 특별위원회법’을 만들어 의현 스님을 비롯해 지지 인사들에 대해 무더기 징계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개혁회의에 의해 출범한 초심호계위원회(위원장 · 청화 스님)는 이 해 6월 8일부터 9월 28일까지 총 60명에 대한 징계를 단행했습니다. 이때 의현 스님을 포함한 9명이 체탈도첩(멸빈)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로부터 21년이 흐른 지금 호계원은 94년 개혁종단 당시 징계자 가운데 의현 스님만 특별재심 형태로 구제했습니다. 그러니 “세월호 선장만 살려준 격이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사법부 마저 지키지 않는 종헌 제128조 

이번 재심호계원 심판부의 결정은 몇 가지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우선 종헌 위배 시비를 이미 부르고 있는 게 그 첫 번 째입니다. 종헌 제128조는 “징계를 받은 자로서 비행을 참회하고 특히 선행 또는 공로가 있는 자에 대하여는 집행중이라도 징계를 사면, 경감 또는 복권시킬 수 있다. 다만 멸빈의 징계를 받은 자는 제외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종헌에 의해 그간 풀고 싶은 멸빈자가 있었어도 어쩌지 못하고 넘어 온 일이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1998년 종단 사태도 따지고 보면 이 종헌으로 인해 빚어진 멸빈자 사면과 관련한 종정과 총무원장의 갈등에서 빚어진 것이라 분석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종헌 제128조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당시 초심호계위원회의 심판행위가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는 청구를 받아들여 심리를 개시했습니다. 문제는 심리를 개시한 자리에서 심판을 결정한 행위가 두 번째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의현 스님의 멸빈 징계 재심은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대한 의미를 포괄하고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경범죄에 대한 즉결심판처럼 첫 심리에서 멸빈 징계를 무효화하고 공권정지 3년의 심판을 내린 것은 재심호계원 답지 않은 경솔한 처사로 여겨집니다.

 각본대로 의현 스님 살리기 성공

제96차 재심심판부는 의현 스님의 심판청구를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만 오로지 결정했어야 합니다. 이후 법리적인 판단과 종도들의 여론 등 종합적인 심리를 최소한 2~3차례 거치고 나서 심판결정 했어야 한다는 게 지배적인 견해입니다. 조계종 지도부는 이미 짜여진 각본대로 의현 스님을 살리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뒷감당을 어찌 해나갈지 종도들의 걱정이 큰 데 비해 지도부는 천하태평입니다. 하기야 언제 뒷감당 걱정했던 현 지도부였습니까?
앞으로 재심호계원은 당시 ‘의현호’를 탔다가 멸빈 당했거나 제적 또는 공권정지를 당한 이들이 의현 스님처럼 심판청구를 해 올 경우 거부할 명분이 없어 보입니다. 어찌 ‘의현호’에만 해당되겠습니까? 비슷한 예로 징계가 확정된 인물들이 이의신청을 해 온다면 군색한 변명을 들이댈 것이 뻔하고 그럼으로써 호계원의 위상도 추락될 것입니다.

또 하나 실망스러운 점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진 자들의 '쇼' 에 불과

청화 스님은 19일 교계기자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의현 스님 관련 심판을 비판하고 재심호계위원직을 사퇴한다고 밝혔습니다. 솔직히 말해 떳떳하지 못한 처신입니다. 아니 비겁합니다. 청화 스님은 18일 재심호계원 심판부에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날 유일하게 불참한 호계위원입니다. 그러나 의현 스님 심판 건은 호계위원들에게 사전 고지돼 청화 스님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부득이한 사정이었는지 모르나 의현 스님 심판 건에 청화 스님은 만사를 제쳐두고 참석해 의견을 개진했어야 옳습니다.

기득권을 누리면서 제도권 내의 불편한 자리는 피하고 대신 밖에서 구성원에게 잘못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는 박수 받을 일이 못 됩니다.

주지하다시피 94년 의현 스님을 멸빈시킬 때 초심호계원장이 청화 스님입니다. 당시를 잠시 회상해 볼까요? 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당시 의현 스님의 3선을 적극 지지하고 조력했던 반개혁인물의 하나로 지목돼 징계에 회부됐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문서견책에 그쳤습니다. 그가 오늘날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재임하고 있습니다. 개혁종단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비판은 여기에도 기인합니다.

우리나라가 해방 이후 반민특위를 내세웠지만 인적 청산을 잘못함에 따라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답습하고 있듯이 조계종단도 사정이 비슷합니다. 자승 총무원장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때 해종행위특위는 절차와 원칙 없이 ‘인민재판’을 방불케 한다는 비판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호계위원들 간에 판결내용을 놓고 갈등을 빚게 됐고 급기야 혜국 스님을 비롯한 일부 호계위원들이 위원직을 사퇴하는 상황이 초래됐습니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다릅니까?

가진 자들끼리 나누고 쇼하는 모습, 이제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습니다.

-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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