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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와 원전, 무명無明의 두 그림자
2015년 06월 11일 (목) 08:08:03 박병기 buddhismjournal@daum.net
‘메르스’라는 이름을 가진 새로운 바이러스가 공포를 불러일으키면서 우리 모두의 마음속으로 침투하고 있다. 확진 환자의 숫자나 사망자 숫자와는 상관없이 당분간 이 바이러스는 우리 일상을 지배하며 확산될 기
   
세다. 공포영화에서나 보았던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나오는 전철역에 들어서노라면,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되었나 하는 불만과 불안이 동시에 밀려들곤 한다.

이 바이러스는 중동의 낙타를 매개체로 삼아 성장하여 우리 인간에게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신종이지만, 이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경험한 것처럼 인간들 사이에 쉽게 퍼지는 것은 아니라는 과학적 사실이 ‘네이처’라는 과학전문지에 보도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특히 초기대응에 실패하고도 정보조차 제대로 공유하지 않으려 한 정부의 무능력과 오만함, 인터넷 소통 매체를 통한 왜곡된 정보의 무분별한 확산 등으로 인해 근거가 부족한 낙관과 절망 섞인 극도의 불안감 사이를 널뛰기하듯 넘나들며 불안한 하루하루를 겨우 견디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이른바 ‘국가전력수급계획’에 입각해서 원전을 더 짓겠다는 계획을 슬그머니 내놓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과 송전탑 건설의 난항 등을 이유로 화력발전소를 건립하는 대신에 원자핵발전소를 더 짓겠다는 계획을 확정된 것처럼 발표하고 있다. 공장이나 가정에서 전기를 활용한 편리함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은 전기를 사용하고 있고, 그로 인한 전기부족 사태가 전국적인 암흑의 세계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정부의 과장된 경고가 온전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원전의 위험성이 충분히 드러난 현 시점에서 그 원전을 더 짓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보다 원전을 먼저 받아들인 독일 정부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원전 제로 운동’을 벌여 가시적인 성과를 보고 있고, 원전대국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프랑스조차 원전을 더 짓는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다른 에너지 대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우리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것인지가 쉽게 드러난다. 더욱이 안전을 극도로 중시하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후유증이 여전한 가운데 결정된 정책 방향이라는 점에서 무언가 다른 배경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되기도 한다. 원전마피아들이 국민 안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킨 결과물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 말이다.

이런 무명(無明)의 두 그림자는 단순한 우려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어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는 점에서 근원적인 절망이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그 실체를 똑바로 바라보는 여실지견(如實之見)의 지혜가 요청되고, 그것은 나를 포함하는 세계의 실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실천적 노력으로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근대 문명의 달콤한 혜택 속에서 빠름과 깨끗함만을 추구해왔고, 그 이면에 숨겨진 느림과 더러움의 미학을 가능하면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뒤편으로 제쳐놓았다. 느림과 더러움이 없다면 빠름과 깨끗함 또한 있을 수 없다는 중관(中觀)의 가르침을 되새겨야 할 때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원전 마피아를 향하는 준엄한 비판과 함께 전기에 의존하는 빠름과 밝음을 한사코 포기하지 않으려 않는 내 안의 원전 마피아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어야만 한다. 또 병균을 박멸해야만 하는 독립된 악마로 생각하는 그릇된 관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그 병균이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성찰함으로써 막연한 불안감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메르스 사태는 현재의 어리석은 삶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거울 역할을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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