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때 이교도 악꼬사까 바라드와자라는 바라문이 자신의 형이 불교에 출가했다는 말을 듣고 부처님을 찾아 와 상스러운 말투로 욕설을 퍼부었다. 바라문의 욕설을 잠자코 다 듣고 난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바라문이여, 당신은 집에 찾아 온 손님에게 다과나 음식을 대접합니까?”

“대접하지요.” “만일 당신을 찾아 온 손님이 그 대접을 받지 않는다면 남은 음식은 누구의 것이 되겠습니까?” “그들이 음식을 받지 않으면 당연히 나의 것이 되겠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당신은 욕하지 않는 나를 욕하였고, 꾸짖지 않는 나를 꾸짖었소. 악담하지 않는 나에게 또 악담을 하였소. 이것들을 나는 받지 않겠소. 그러니 그것은 모두 당신 것이오. 욕하는 사람에게 욕하고 꾸짖는 사람에게 꾸짖고 악담하는 사람에게 악담하는 사람은 마치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고 서로 주고받는 것과 같소. 나는 당신의 음식을 함께 먹지 않으며 주고받지도 않소. 그러니 그것은 모두 당신의 것이오.”

- 《쌍윳따 니까야》 ‘브라흐마나 쌍윳따 1:2’

부처님의 이 말씀에 바라문은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부처님께 귀의했다. 불교에선 말과 관련해 구업(口業)을 짓지 말라고 가르친다. 구업의 죄는 매우 무겁다. 《천수경》에선 입으로 짓는 모든 죄업을 날마다 참회하라고 말하는데 구업엔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첫째 입으로 남을 속이는 망어(妄語)다. 둘째 험한 말로 남의 속을 뒤집어 놓는 악구(惡口)다. 셋째 이간질로 화합을 깨뜨리는 양설(兩舌)이다. 넷째 요망한 말로 남을 현혹하는 기어(綺語)다. 만일 망어, 악구, 양설, 기어가 없다면 우리 인간사회는 더욱 행복하고 화합된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러므로 구업을 짓지 않는 일이야말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최근 정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청소년 가운데 70% 이상이 매일 욕을 한다고 한다. 이러한 욕은 모두 어른들로부터 학습된다는 점에서 각별한 경계심이 필요하다. 바른 언어의 사용은 사회의 거울이자 개인의 인격을 나타내는 척도다.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언어습관으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자.

법진 스님 | 본지 발행인 ·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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