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사는 게 재미없을 때 인도를 가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인도에 다녀오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고, 그래서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걸로 기대했습니다. 인도에 대해 이런 몽상가적 기대를 갖게 된 데엔 류시화 씨의 기행기도 한몫했지만 누군가에게서 들은 여행담이 더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사람은 단체배낭여행으로 인도를 갔는데 그날은 유명한 관광지를 방문했다고 했습니다. 사진을 찍느라고 정신이 팔려 일행을 놓쳤다고 합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두려움이 밀려왔는데 설상가상으로 앉은뱅이가 자꾸 쫓아오는 것입니다. 겁을 잔득 집어 먹은 채 그 사람을 피하려고 더 빨리 걸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은 관광객이 살해된 적이 있는, 인도에서도 굉장히 위험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패닉상태에 빠져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달리고 있는데 앉은뱅이 남자가 끈질기게 쫓아오면서 무슨 말을 했다고 합니다. 도망가면서 들어보니까 그 남자는 길을 잃은 이 여행자에게 다른 일행의 행방을 일러주려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행자의 안전을 걱정해 불편한 몸으로 이렇게 필사적으로 쫓아왔던 것입니다.

그 남자의 의도를 깨닫는 순간 두렵고 무섭게만 여겨졌던 그곳이 순식간에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따뜻한 곳으로 변하는 극적인 경험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인도는 매우 극적인 곳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반전을 통해 사고의 틀을 부셔주기 때문에 그래서 인도를 다녀오면 이전의 자신과는 다른 자신을 만나게 된다고 하면서 인도여행을 적극 추천했습니다.

<시티 오브 조이>(영국, 1992)라는 영화의 주인공 맥스(패트릭 스웨이지)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런 이유로 인도를 찾았습니다. 무기력한 삶에 생기를 넣고 싶어서, 잃어버린 꿈을 되찾고 싶어서, 상처 난 마음을 치료하고 싶어서, 그래서 그는 인도 캘커타로 갔습니다. 영화의 골격 중 하나는 희망을 잃고 좌절한 맥스가 과연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인도 캘커타에서 희망을 찾아낼 수 있을까, 입니다.

그런데 맥스가 처음 마주한 인도는 지옥의 한 풍경처럼 처참했습니다. 인간이 누려야 할 환경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맥스는 절망과 분노, 혐오감, 두려움 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폭풍처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현실로부터 빨리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똥을 밟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더러운 도로와 동전을 구걸하는 아이들과 거리에서 노숙하는 가족들의 모습도 안타깝지만 애 티를 갓 넘긴 소녀가 가족을 위해 몸을 팔러 거리로 나왔다가 조폭무리에게 면도칼로 양 쪽 입가가 찢기는 폭력을 당하고, 또 일자리를 잃은 가장은 아이들에게 먹일 빵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피를 뽑아 팔아야 하는 현실은 참담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사람들이 불행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영화 제목처럼 기쁨의 도시를 만들면서 그들은 살았습니다. 불가사의한 현실입니다. 분명 환경적으로 보면 지옥의 한 풍경처럼 처참한데 그들은 천국 백성처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지옥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인가를 찾아내는 것이, 이 영화 <시티 오브 조이>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시티 오브 조이>는 롤랑 조페 감독의 휴먼 삼부작 중 하나입니다. 제39회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미션>과 한때 큰 반향을 일으켰던, 캄보디아 대학살을 소재로 한 영화 <킬링필드>에 비해 <시티 오브 조이>는 덜 알려져 있지만 이 영화는 도미니크 라피에르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했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인도 캘커타의 최하층민들과 몇 달간 생활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영화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진짜’의 감동이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기쁨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아난드 니가르입니다. 이곳은 인도 캘커타에서도 가장 빈곤한 빈민굴로 농촌에서 삶의 기반을 잃은 사람들과 나병환자, 노숙자들, 인력거꾼 등 사회 최하층 계급에 속하는 이들이 뒤엉켜 살아가는 곳입니다.

영화에는 두 명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한 명은 외국인 맥스입니다. 맥스는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상처를 치유하고 꿈을 회복하기 위해서 인도에 왔습니다. 반면에 또 다른 주인공 하자리(옴 푸리)는 경제적 이유로, 그 또한 희망을 찾아 이곳에 왔습니다. 고향에서 농사를 짓던 하자리는 가뭄과 홍수로 농사를 망치고 가족을 먹여 살리고, 또 딸의 결혼 지참금 마련을 위해서 캘커타에 왔습니다.

영화의 두 주인공인 맥스와 하자리는 여러 면에서 상반된 캐릭터입니다. 맥스가 외국인이고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다면 하자리는 인도인이고 경제적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둘은 모두 다른 지방에서 캘커타라는 곳에 왔지만 맥스는 정신의 치유를 위해서고, 하자리는 부자가 되고자 낯선 곳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맥스의 경우를 보면, 맥스는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여권과 지갑을 도난당하고 조엔이라는 여자가 운영하는 무료진료소에서 일하게 됩니다. 처음 얼마 동안 그는 인도를 거부했습니다. 부패한 관리인 앞에서 가난한 자들이 착취당하는 현실을 보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감을 발견했습니다. 캐나다에서 인도로 왔던 이유도 이 무력감 때문이었습니다. 외과의사로서 어린 아이의 목숨을 구하지 못한 자책감 때문에 도망치듯 인도로 왔는데 그는 이곳에서도 반복해서 그 감정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캐나다에서처럼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자리 가족을 만나면서 상황은 반전됐습니다.

하자리는 영화에서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가장으로 책임감을 다하는 그의 희생을 통해 영화는 많은 부분 힐링 되는 편입니다. 전반부에서 맥스는 인도의 헐벗은 모습만 보고 염증을 느껴 달아나려고 했지만 하자리의 숭고한 희생을 통해 그는 캐나다에 있는 자신의 아버지에게서는 경험하지 못한 가장의 숭고한 역할을 경험했기에 영화의 제목처럼 기쁨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하자리 가족은 캘커타에 도착하자마자 사기꾼에게 걸려 갖고 있던 돈을 몽땅 잃어버리고 길거리에서 노숙하게 됩니다, 다섯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고 딸의 결혼 지참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을 느끼며 거리를 헤매던 하자리는 마침내 마음씨 좋은 릭샤꾼을 만나 그의 주선으로 빈민굴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에게서 인력거를 빌리게 됩니다. 대부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그런 사람인데 그의 아들은 더 나쁜 악당이었고, 이들 부자로 인해 삶은 더욱 험난했습니다.

인력거꾼이 된 하자리는 맨발로 발등이 터져라 뛰어다니면서 사람들을 실어 날랐습니다. 고단한 일상입니다. 차와 오토바이가 바쁘게 흘러가는 도로를 무거운 인력거를 밀며 아슬아슬하게 뛰어가는 모습은 동일한 인간으로서 연민이 느껴졌습니다.

말이 해야 할 일을 사람이 대신 하는 것인데 그렇지만 하자리는 돈을 벌 수 있는 현실에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도 그렇게 오래 할 수 없었습니다. 맥스가 무료 진료소에서 일하면서 대부와의 사이에 논쟁이 생겼고, 맥스의 편을 들었다고 인력거를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일자리를 잃은 하자리는 매우 낙담했습니다. 먹을 걸 구하기 힘들어지자 그는 피를 뽑아 가족들에게 줄 빵을 구해왔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자리는 어렵게 마련한 돈으로 딸의 결혼식을 하게 됐는데 마침 그때 지난 번 대부 아들이 휘두른 칼을 맞은 배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그는 딸의 결혼을 망치고 싶지 않다면서 다른 사람들 몰래 혼자 조용히 어디론가 걸어갔습니다. 그 뒷모습에서 진정한 희생정신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가난한 인도에는 이렇게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피를 뽑아 가족의 배를 채우고, 뼈가 부셔져라 릭샤를 끌고, 또 가족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자기 아픔을 숨기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하자리를 보면서 고향을 떠나올 때 그의 아버지는 “가장 노릇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라고 말했었는데 그 말의 무게를 실감했습니다.

하자리 뿐만이 아닙니다. ‘기쁨의 도시’라는 아난드 니가르에는 가족을 위해 몸을 파는 창녀 푸미아가 있고,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전부를 던져 봉사하는 조엔과 같은 봉사자도 있었습니다. 비록 모든 게 부족했지만 이곳엔 희생과 자비가 넘쳐났습니다. 그래서 지옥과 같은 이곳이 기쁨의 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경제적으로는 한없이 부족했지만 정신적으로는 매우 풍요로운 곳이었습니다.

정신적 결여를 채우기 위해 이곳에 왔던 맥스는 많은 성장을 했습니다. 진정한 기쁨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타인에 대한 봉사와 희생이 결국은 자신의 행복을 배가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래서 그는 인도에 완전히 남기로 했습니다. 맥스는 자신이 원하던 것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치유를 위해,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 인도에 왔는데 그는 희생의 의미를 깨닫게 됐으며 진심으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시티 오브 조이>는 인도를 정확하게 설명한 영화였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가치를 설명한 영화였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희생정신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그곳이 바로 극락이고, 거기서 기쁨이 생겨날 수 있음을 적절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