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참된베풂, 선학원
   
문화일반
학술
문화재
출판
예술
전시·공연
방송·언론
교육
> 뉴스 > 문화 > 예술 | 핫이슈
     
“십자가 든 부처, 화합의 화두 던지다”
‘조영남이 만난 부처님’을 석왕사에 전시한 신정아
2015년 05월 28일 (목) 11:27:10 이석만 dasan2580@gmail.com
   
▲ 신정아 큐레이터가 그림을 그린 조영남 씨와 법당을 전시회장으로 제공한 영담 스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관람객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이석만>

24일 오전 부천 석왕사가 들썩거렸다. 절집안이 조용하리란 건 편견에 불과했다. 조영남이 십자가를 든 부처님을 잔뜩 그려왔다. 신정아는 28점을 이 절 천상법당에 기어코 장엄했다. 천막법당으로 시작한 석왕사가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을 설립한 지 20년을 맞은 해이기도 하다. 야단법석이 펼쳐진 이유다.

단연 관심은 어떻게 예수님의 상징인 십자가를 그린 작품을, 부처님을 모신 사찰 법당에 전시하게 됐느냐다. 영담 스님-신정아-조영남은 무슨 인연인지,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고 엉뚱한 전시회를 꾸몄는지도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권사의 아들, 법당 전시회는 세계 최초 퍼포먼스

   
▲ 조영남 작 ‘웃는 부처’, 75×93, 2015
법당에 십자가를 건 연유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조영남의 말은 이렇다.

팔자 드세기로 유명한 신정아 큐레이터가 부처님 오신 날을 기해 미술전시를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흘리듯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너무 놀라 되물었죠.

“뭐라구? 절에서 그림 전시회를 하자구?”
“네. 법당에서요.”
“너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저 멀쩡해요.”
“그러니까 내 화투그림을 법당에 걸어보자는 거 아냐?”
“그렇죠.”
“그럼 저하구 같이 부천 석왕사에 영담 스님을 직접 만나뵈러 가요.”

저는 그저 놀라웠을 뿐입니다. 내가 만난 영담 스님 말입니다.
저는 동시대를 사는 똑같은 남자로서 원 세상에 사람이 어찌 저토록 확 트일 수가 있을까.
나야말로 평생 바다처럼 드넓게 트인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하! 인생 끝무렵 바로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조영남은 “무엇보다 김정신 권사님의 아들 조영남이 법당 그림 전시를 하다니, 이건 뭐 재미를 떠나 국내 최초일 뿐 아니라 세계 최초의 미술 이벤트가 될 것 같다.”며 “거기에다 이 시대 가장 귀중한 다문화가정도 섞여 있다”라고 감탄을 연발했다.

그는 1970년대 빌리 그레이엄 목사 집회 때 성가를 부른 계기로 도미, 플로리다 트리니티신학대에서 수학했다. 그런 조영남은 “우리 한국 사람은 좋건 싫건 이 마음속에는 불교부터 유교, 그리고 최근에 기독교, 이 세 개가 다 안에 들어가 있다. 이런 걸 이해시키는 거죠.”라며 “한평생 교회 권사로 살다 가신 내 어머니도 고려시대에 태어났다면 독실한 불자였을 것이고, 조선을 살았다면 철저한 유교주의자가 되지 않았을까. 뒤늦게 모든 종교가 목표하는 지향점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고나 할까.”라고 했다. 그는 “석왕사가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부천이주민센터 설립 20주년을 기념하고 이웃 사랑이라는 종교의 공통 가치에 공감했기 때문이다”라고 전시회 결행 이유를 나열했다.

종교 벽 허물고 다문화가정 편견 깨자는 거다

   
▲ 조영남 작 ‘십자가와 만자를 든 영남 어린이’, 53×75, 2015
신정아가 기획하고 조영남이 그리고 영담 스님이 마당을 펼친, 이 전시회에서 던진 메시지는 부조리, 종교간 벽, 다문화가정의 편견 등을 모조리 넘어서보자는 것이다.

작품에는 한 화면에 부처님과 십자가, 부처님과 화투짝, 십자가와 만자 양손에 든 조영남의 자화상, 태극기와 인공기 등 부조리의 극치를 담았다.

화투짝에 파묻힌 고산 스님, 만(卍)자와 십(十)자를 결합한 일명 만자가를 앞에 두고 활짝 웃는 영담 스님 등의 작품을 통해 종교간의 벽을 허물고자 시도했다.

‘사랑합니다’를 각국어로 짜집고 다문화가정의 국기들을 빼곡히 그려 넣었다. 곧 백조가 될 미운오리새끼를 앙증맞게 표현하는가하면, JTBC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프로그램을 함께 했던 경기예술고등학교 학생들과 그린 작품 등을 통해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을 깨고자 했다. 이 그림은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 20주년을 기념해 아직도 낯선 울타리 속에 서성대는 다문화가정의 어린이들과 조영남이 소통하는 과정이 담겼다는 호평을 받았다.

하여, 조영남이 던진 화두는 화합이다. 서슬퍼런 군사정권 아래서 신명나게 불러재낀 노래 ‘화개장터’도, 최근의 ‘통일바보’도 거기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석왕사 천상법당에서 “불이(不二)를 넘어 통일(統一)”이라고 주창했다.

인생 총체적으로 망가진 큐레이터 8년만에 복귀

봄날이 가는 오월, 이 눈부신 전시회의 공범들은 무슨 인연의 끈으로 이어졌을까.
조영남의 설명이다.

신정아 큐레이터는 18년 전 그녀가 미국유학에서 막 돌아와 삼청동 쪽 어느 미술관에서 일을 시작했을 무렵부터 소위 화가와 큐레이터로 만나 오늘에 이른 겁니다. 신정아 큐레이터는 내 기억에 일을 아주 잘하는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일은 신 큐레이터가 근대 한국미술문화사에 길이 남을 요란한 스캔들 이후에 처음으로 시작하는 조심스런 신장개업인 셈입니다.

신정아는 8년만에 큐레이터로 이끈 일을 이렇게 설명한다.

   
▲ 조영남 작 ‘대한민국 사랑해’, 91×107, 2015
내가 조영남 선생님을 만난 것은 막 큐레이터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던 1997년 겨울이었습니다. 당시 내가 일하던 미술관은 <호앙미로전>을 하고 있었는데, 조영남 선생님은 미모의 탤런트와 함께 오셨습니다. 내 사건 이후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내가 그 탤런트를 만나지 않고 너를 만났으면 니가 감옥도 안 갔을 텐데...”

선생님의 대표작인 화투작품의 근원은 꾸미지도 않고 거짓도 없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저 소박한 풍경에서 왔으리라. 2007년 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지면이 주어질 때마다“신정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고마운 마음이 8년 만에 나를 다시 큐레이터로 이끌었습니다.

신정아는 영담 스님을 용서 화해 포용이라는 낱말로 설명했다.

무엇보다 세계에서 최초로 법당을 전시장으로 허락해 주신 영담 스님께 감사합니다. 스님은 지난 몇 년 간 미얀마 봉사활동을 통해 나를 용서와 화해의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20여년 전 다문화가족이 우리나라에 맨 처음 정착할 무렵 영담 스님은 석왕사 마당에 천막을 치고 낯선 타국땅에 온 낯선 민족들을 안아주셨습니다.

소외된 계층을 사랑으로 안아주시는 영담 스님과 이 세상 모든 여자를 자신의 여친이라고 큰소리치는 조영남 선생님과 삑사리 한번 제대로 날려 인생 총체적으로 망가진 내가 한곳에 모여 꼼지락거리게 된 셈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게는 자비로운 부처님이 계십니다.

이 전시회는 6월 28일까지 계속된다. 종교나 국적을 떠나 누구든 관람하고 평할 수 있다.

이석만 | 불교닷컴 대표

ⓒ 불교저널(http://www.buddhismjourna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 등 인신공격성 글과 광고성 글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 | 기사제보 | 광고문의 | 불편신고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청소년보호정책
03061 서울특별시 종로구 윤보선길 35-4 (안국동) 재단법인 선학원 내 | 전화 02)720-6630 | 전송 02)734-9622
등록번호 서울특별시 아00856 | 등록일자 2009년 5월 8일 | 발행일자 매주 목요일 | 발행인 최종진 | 편집인 박근직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창윤
Copyright 2009 불교저널.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udjn200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