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합의 이전으로 돌아가자?"
 다시 파기할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

조계종 ‘선학원 정상화를 위한 추진위원장 법등’ 명의의 공문이 어제 도착했다. 추진위가 지난 5월 11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분과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을 때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일부는 더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추진위가 제시한 6개의 협의안은 △멸빈 징계된 이사진 4인의 지위 원상회복 △선학원을 특별교구로 지정 △선학원 특별교구에 종회의원 2석 배정 △선학원 추천 원로의원 1석 배정 △분원장급 임원에 대해 선거권, 피선거권 제한 철회 △‘법인관리 및 지원에 관한 법’의 제7조(정관 변경의 종단 승인)과 제18조(법인현황 보고)의 의무조항은 선학원 적용을 예외로 한다는 등이다.

반면 조계종이 선학원에 요구한 것은 △법인 명칭에 반드시 ‘대한불교조계종’을 명기하여야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할 것 △이사의 자격은 종단소속 승려로 하며, 이사의 4분의 1이상을 총무원장의 복수 추천으로 해당 이사회에서 선출한다 등 2개항이다.

추진위원장인 법등 스님이 “조계종에서 통 큰 제안을 한 것”이라고 자화자찬성 발언을 한 데다가 조계종측 일부 언론이 “전격 제안”, “조계종이 선학원에 취해 온 제재조치를 모두 해제하는 파격적인 조치” 등 현란한 수사를 동원해 보도함으로써 본질을 왜곡시키고 있기 때문에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조계종이 종단 화합을 위해 과감한 조처를 한 것이거나, 우리 선학원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것으로 보일 수 있겠다. 그러나 하나하나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의 요구와는 무관한 여론몰이용 인기성 발언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간 우리 재단은 소위 ‘선학원 정상화를 위한 추진위원회’가 우리에게 보낸 6번의 ‘선학원 이사장 스님 면담 요청’ 공문 가운데 4번의 회신을 통해 입장을 표명해왔다. 지난 3월 11일 발송한 첫 번째 회신에서 “<법인관리법>과 <종헌> 제9조 3항이 존재하는 한 진지한 대화가 불가능하다”면서도 “(재)선학원의 공식 입장은 조계종과 선학원이 한 뿌리임을 인식하고 선학원의 역사와 정화의 이념을 존중하는 집행부가 들어선다면 대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4월 1일 발송한 두 번째 회신에서는 “우리 선학원의 선사 스님들에 의해 대한불교조계종이 탄생하였으므로 한 뿌리임이 확실하나 선학원과 조계종의 관계에 무지한 일부 승려들에 의해 이사장과 이사들이 멸빈을 당한 상태에서 대화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선학원의 임원들을 멸빈 시킨 종단의 갑질에 대한 항의성 공문이었다.

4월 22일 발송한 세 번째 회신에서는 “현 집행부는 종단과 선학원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화합을 깨뜨리는 등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그러면서 마치 우리 선학원이 탈종(脫宗)이나 분종(分宗)을 기도한 것처럼 악선전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지난 3월 18일 개최된 (재)선학원 이사회에서는 △갖가지 비리에 연루된 16명의 권승들은 즉각 참회하고 조계종을 떠날 것, △총무원장 직선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할 것, △출가 2부중(비구, 비구니)의 평등을 실현할 것, △<법인관리법>과 <종헌> 제9조 3항을 폐지할 것, △선학원과 조계종이 한 뿌리임을 인식하고 선학원의 역사와 정화의 이념을 존중하는 집행부가 들어선다면 대화할 것임을 결의한 바 있으며 4월 22일 이사회에서 재결의하였다.”고 확인함으로써 조계종이 진정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재)선학원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의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현 집행부와는 대화와 타협이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선언했다.

5월 6일 발송한 네 번째 회신에서는 “96년과 99년에도 서로간의 대표자들이 이마를 맞대고 합의안을 도출해냈지만 종회의 거부로 무산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이른 바 ‘선학원 정상화를 위한 추진위원회’가 총무원장이나 종회로부터 아무런 권한도 확보하지 못한 채 동분서주하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또한 추진위와 우리가 대화하여 합의에 이른다고 하더라도 종회나 총무원장이 거부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의문”이라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현 집행부는 종단과 선학원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화합을 깨뜨리는 등 평지풍파를 일으켰으므로 (재)선학원에서는 거기에 대해 납득할 만한 사과와 책임자에 대한 문책이 없는 한 대한불교조계종의 현 집행부와는 대화와 타협이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상 네 번의 공문을 통해 입장을 표명한 것을 포함하여 우리 선학원에서는 이번에 종단에서 제안한 6개항 가운데 “분원장급 임원에 대해 선거권, 피선거권 제한 철회”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선거권ㆍ피선거권 제한 철회’를 제외한 나머지 5개항은 단 한 번도 거론조차 한 적이 없다. 선거권 피선거권을 요구한 것도 참정권은 기본권이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요구인 것이다.

그런데도 모 매체에서는 “정상화추진위가 제시한 협상안은 그동안 선학원이 조계종 측에 끊임없이 요구해 온 현안이라는 점에서 선학원이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등 터무니없는 보도를 내보냈다.

굳이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밝히자면 우리 선학원은 일관되게 “<법인법>을 전제로 대화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고 “종헌 제9조 제3항을 선학원에 소급적용하지 말 것”을 요구해 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마치 우리가 뭔가를 요구했고, 우리의 요구 이상의 것을 협의안으로 내놓은 것처럼 호도하는 것이다.

특히 추진위에서 “2002년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스님과 선학원 이사장 정일스님이 합의했던 것으로 돌아가자는 뜻”이라고 하면서도 <법인관리법>에 의해 법인 명칭을 ‘대한불교조계종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할 것과 이사의 4분의 1이상을 내놓으라는 이율배반적인 요구를 하고는 “이러한 협의안의 제안에도 선학원이 대화에 응하지 않는다면 종단은 선학원에 중앙선원을 개원한다”,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협박성 발언을 하고 있다.

그간 법등 스님은 선학원 이사장 법진 스님의 처소로 약 10회 가량 예고 없이 방문하였는데 이를 통해 나름대로 명분을 쌓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어제(5월 13일)부터는 추진위 소속 스님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선학원 이사 스님들을 접촉하기 시작했다. 이사들을 접촉하여 명분을 쌓은 뒤에는 전국의 선학원 분원장들도 만나려 들 것이다. 법등 스님이 왜 저렇게 나설까? 총무원장과는 무슨 거래가 있는 걸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본지 편집인 · (재)선학원 교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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