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은 우리 불자들 최고의 축제일이다. 전국 방방곡곡 부처님오신날을 축하하는 오색찬란한 연등불들이 올해도 우리나라 산천을 봄꽃처럼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그러나 부처님 일생에서 중요한 사건이 어디 탄신뿐이랴. 대도(大道)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신 부다가야에서의 위대한 성도와 쿠시나가르에서의 열반도 부처님의 탄신만큼이나 지중한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 내게 부처님 생애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부처님께서 전법을 결심하시던 그 거룩한 순간’이라 답하고 싶다.

만약 부처님의 그 위대한 전법의 결심이 없었다면, 그리하여 미혹한 중생들을 깨우치시기 위해 사자후로 설하셨던 그 헌신적인 전법행이 없었다면 부처님의 탄신과 성도, 열반의 의미는 얼마나 그 빛이 바랬을까, 싶기 때문이다.

사실 부처님의 순수한 출가 동기는 ‘자기 구제’에 있었다. 온갖 부귀영화를 버리고 한밤중 성문을 나설 때 생로병사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전에는 다시는 이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으리라 태자 싯다르타는 맹세했다. 그리고 7년 후 드디어 보리수나무 아래서 일체의 진실상을 밝게 깨달아 온갖 집착과 고뇌에서 벗어나 우주가 곧 내 자신이고 스스로가 우주임을 확철한 ‘부처’가 되었다.

이렇게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얻음으로서 출가의 목표는 완벽히 달성하였으며, 그런 부처님에게 이 세상에서 할 일이란 더 이상 남지 않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다른 부처님들과 마찬가지로 각자(覺者)만이 누릴 수 있는 열반의 즐거움〔無爲之樂〕만 무한히 누리면 될 일이었다.

사실 많은 부처님들이 도를 전하지 않고 그렇게 은거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과거칠불 가운데 한 분이셨던 비바시(毗婆尸) 부처님도 성불하신 후, “이 진리는 지극히 깊고 묘하고 어려워 범부들은 도저히 알 수 없으니 사람들에게 설한다면 이해는커녕 더욱 심한 고통에 빠질 것”이라 생각하고는 침묵하셨다. 그러다 이를 안 범천왕이 찾아와 두 번 세 번 간곡히 청한 후에야 "이 가르침은 묘하여 알기 어려우니 믿고 받아 지니며 즐거이 듣는 이를 위해서는 설법하겠지만 번거로워하고 아무 이익도 얻지 못하는 이에게는 설법하지 않으리라”는 단서를 달고서야 설법을 허락하였던 것이다.

실로 부처님들이 이루신 깨달음의 경지는 너무도 수승하여 무명으로 인한 애욕과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에 전해줄래야 전해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놀라웁게도 부처님의 대응은 다른 부처님들과는 완연히 달랐다. 부처님께서는 성불하시자마자 곧바로 전법을,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결심하셨다. “나는 이제 깊디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이는 납득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려우며 깨닫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려우며 지극히 미묘하여 지혜로운 사람만이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제일 먼저 누구에게 설법하면 좋을까?” 하고 말이다.

세상의 모든 중생을 자신과 다름없이 여기신 불이(不二)의 자비심으로, 당신이 깨달으신바 진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여 다함께 해탈의 기쁨을 나누고자 하신 부처님으로서의 최초의 다짐, 아, 그것이 바로 ‘그 거룩한 전법의 결심’이었던 것이다.

이 장면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우리 모두에게 무엇보다 소중하고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까. 열반적정의 무위지락만 누리시면 될 부처님께서 차마 우리 중생들을 버리지 못해 진리를 전해주시고자 고뇌하시는 너무도 ‘인간적인 성자’로서의 모습과, 가히 우주의 진리를 밑바닥까지 들여다본 자만이 성취할 수 있는 ‘대자대비한 성자’로서의 거룩한 모습이, 드디어 그 빛을 환하게 발하는 최초의 장면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렇다. 성도의 순간이 싯다르타라는 한 개인의 출가수행의 완성이었다면, 성도 후 부처님께서 전법을 결심하던 순간은 우리 모두의 성도가 약속된 순간에 다름없으리라.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법이 있는 한 우리는 성도를 기약할 수 있으며, 부처님 법대로 제법의 실상과 묘리를 몰록 깨닫기만 한다면, 우리도 언젠가 모두 부처님 같이 될 수 있기에!

박규리 | 시인·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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