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용화선원서 산철 결제…원장 출마 없다
‘봉은사 한국불교 희망’으로 키우고 싶어
‘단지불회(但知不會)’는 삶의 목적이자 화두


“신도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무게감과 소신이 없었다면 1000일 기도를 회향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1000일 기도를 통한 형식을 갖춘다는 게 바로 내용을 채우는 일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 1000일 기도 회향 앞둔 명진 스님.
명진 스님(서울 봉은사 주지)은 8월 25일 봉은사 다례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1000일 기도 회향을 앞둔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스님은 “개인적 성찰과 내면의 변화에 도움이 됐다. 다른 스님들에게도 한 번 해보라고 권장하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명진 스님은 천일기도의 위기는 기도 시작 한 달 만에 있었다고 고백했다. 스님은 어려운 점이 없었냐는 질문에 “1천배를 하다 보니 발등이 부어서 고생을 했다”며 “천일기도를 못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했었다”고 고백했다. 스님은 또 천일기도 동안 사회적 이슈들이 많아 사실 고민도 많았다고 했다. 스님은 “무엇보다도 미국산 수입 소고기 반대 촛불집회를 필두로 정부의 종교편향 정책, 용산참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등 대사회적인 문제를 접할 때마다 산문 밖으로 뛰쳐나가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것이 힘들었다”고 했다.

명진 스님은 1,000일 동안 딱 한 번 산문 밖을 나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일부에서 약속을 깬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지만, 이와 관련 스님은 “봉은사 신도인 권양숙 여사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고, 국가의 대통령을 지낸 이가 검찰의 무리한 수사 때문에 자살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노환으로 돌아가신 것이면 나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역사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스님은 보았다.

1000일 기도 회향의 의미에 대해 명진스님은 “신도들의 신뢰도가 높아진 점이다. 처음 기도를 시작했을 때 여기저기서 ‘쇼하고 있네’라고 빈정거렸다. 하지만 쇼도 ‘좋은 쇼’는 감동을 주고 대중을 따라오게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봉은사를 한국불교의 새로운 희망으로 일구고 싶었다고도 했다. 봉은사의 17명의 스님들이 아침 저녁 예불을 올리고 발우공양과 울력을 모두 함께 했다. 또 사찰재정도 공개하고 종무회의에 신도회 임원들을 참여시켰다. (이렇게 좋은 쇼는) 모든 스님들이 하길 바란다. 명진 스님은 ‘좋은 쇼’의 효과는 수입 증가와 일요법회 동참대중 증가로 현실화됐다고 했다. 취임 전 90억 원이 채 되지 않던 연간 수입이 120억 원을 넘겼다고 했고, 일요법회에 매주 1,000명이 참석할 만큼 수행중심 사찰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3,000명이 참석하는 일요법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명진 스님은 1,000일 기도 회향법회는 8월 30일 봉행된다. 명진 스님은 이날 법회에서 경기도 교육청과 서울시 강남구 교육청장에게 1000석의 쌀을 전달할 계획이다. 스님은 또 법회 후 용산 참사 현장을 방문하고, 9월 3일에는 강원도 인제 용화선원 입방할 계획이다.

명진 스님은 기도 회향후 산철결제에 들어가는 이유에 대해 “결제를 빼놓은 일이 없었다. 자기성찰을 위한 수행시간을 가질 수 없다면 언제라도 주지 자리를 내놓을 의향이 있다”며 “1000일 기도도 그렇고, 이번 안거도 그렇고 바깥의 소식 좀 덜 듣고, 사판승이면서 내 수행 게으르지 않게 하기 위한 성찰의 시간으로 이해해 달라”고 했다. 명진 스님의 산철 결제 기간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일정과 겹쳐, 이번 선거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지 천명으로 해석된다.

명진 스님은 “조계종 선원시스템이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스님은 “선원 시스템이 유지되고, 방부 들여 안거하며 산다는 자체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일”이라고 했다. 스님은 “지적할 부분이 있다고 해서 선원을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명진 스님은 조계종의 가장 큰 문제점을 정체성 상실에서 찾았다.
스님은 “조계종은 선종(禪宗)을 표방하고 있지만 간화선의 가르침이 제대로 정립됐는가, 하는 문제에서는 회의적”이라며 “기도에 의존하면 기도종이고 천도제에 의존하면 천도종, 관람료에 의존하면 관람종이 된다”고 쓴소리를 했다. 하지만 스님은 “봉은사 역시 기도와 제사 수입이 40%가 넘는다”면서 현재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음을 내비쳤다. 스님은 “선종의 자기 정체성 찾기에 봉은사가 나서겠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열릴 ‘주지 스님과 함께하는 간화선 수행’ 프로그램을 염두에 둔 말로 보인다.

기자간담회를 마치면서 명진 스님은 다례헌에 걸린 송담 스님의 친필 ‘단지불회(但知不會)’ 액자와 관련,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오직 내가 아는 것은 모르고 있다는 것뿐’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송담 스님의 가르침도 연장선상에 있다”며 “단지불회는 내 삶의 목적이자 화두이다”라고 말했다.

1000일 기도 회향 법회는 오는 30일 봉행된다. 이날 행사는 회향사시기도를 비롯해 회향 법회, 회향 천도재, 회향 음악회 등 다채롭게 꾸려질 예정이다. 이날 회향법회에는 조계종호계원장 법등 스님과 박원순 변호사, 강천석 조선일보 주필이 축사한다.

서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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