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장의사>(한국, 2000)는 개봉 당시 그다지 주목 받지는 못했지만 ‘제24회 카이로 국제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으며 나름 의미 있는 영화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죽음’이라는 어둡고 무거운 소재를 밝고 유쾌하게 표현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시켰다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죽음에 대한 시시덕거림을 듣고 있으면 우리가 그동안 죽음에 대해 너무 무겁고 심각하게 생각했다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죽음이라는 소재를 코미디의 소재로 사용한 감독의 아이디어는 좋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죽음이 그다지 먼 일도 아니고 슬픈 일도 아니며 두려운 일도 아니게 여겨집니다. 죽음 또한 삶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제 역할을 했다고 여겨집니다.

낙천장의사는 직업정신이 투철한 장판돌(오현경)이 평생을 지켜온 일터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한 번도 장례를 치른 적이 없을 정도로 장사가 안됐지만 장판돌은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돈을 벌려고 이 일을 하는 게 아니고 이 일이 가장 아름답고 보람 있는 일이기에 하는 것입니다.

장의사는 우리 사회에서 그다지 대우 받는 직업이 아닙니다. 거기다 요즘은 대부분 사람들이 병원에서 장례를 치르니까 일거리도 없습니다. 낙천장의사가 지난 10년 동안 공친 것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장판돌은 장의사라는 직업에 굉장한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할아버지는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떠나는 마지막 모습을 꿈속에서 만난다고 그랬다. 어떤 날은 꽃이 지천으로 핀 야산으로 떠난다고 했고, 또 어떤 날은 꽃인지 상여인지… 그것이 사람인지 모를 긴 만당(滿堂)을 따라 높은 산으로 떠난다고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좀처럼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 끝 무렵 손자 재현(임창정)의 나레이션에 나오는 것처럼 장판돌은 자기 직업에 대한 프로의식이 있는 장의사입니다. 제자들에게 염습이나 입관 등 장례절차를 얘기할 때는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뛰어난 장의사라면 모름지기 귀신과 말도 하고 어울려 놀기까지 한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약간 오버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장의사에 대한 긍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장판돌은 자신의 장례는 누가 치를까, 하고 걱정하게 됐습니다. 이왕이면 손자가 그 일을 맡아줬으면 싶었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가는 길을 손자가 배웅해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마침 손자 재현은 도시에서 빚만 잔득 진채 할아버지가 사는 곳으로 왔고, 울며 겨자 먹기로 장례 일을 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파리만 날리던 낙천장의사에 문하생이 더 들어왔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판철구(김창완)는 여관에서 자살하려다가 창밖으로 보이는 낙천장의사 간판을 보고는 이건 운명이구나, 하듯이 장례 일을 배우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장례 일을 돈 벌이로 생각하는 판철구는 장판돌과는 가장 대조적인 인물입니다.

장의사라는 직업을 아름답고 숭고한 일로 여기는 장판돌과 달리 판철구는 장의사를 돈벌이로 여겼습니다. 병원에 장례 일을 다 뺏기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 판철구는 병원을 다니면서 낙천장의사 홍보 전단지를 돌리고, 홍콩 영화의 총격 신을 보면서는 죽어가는 저 많은 사람을 낙천장의사로 데려오면 얼마나 많은 돈을 벌까, 하고 상상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왜 총기 자유화가 되지 않는 거야, 하면서 오매불망 누구 하나 죽어주기를 바랐습니다.

낙천면 우편집배원이 죽었을 때 망자가 오랜 시간 집배원 일을 했고, 또 이 일을 좋아했으니까 집배원 옷을 입혀 입관하고 싶다는 유족의 요구를 그는 극구 반대했습니다. 장례에는 예가 있는데 그렇게 하는 건 예에 어긋난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상은 수의를 팔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리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반대했던 것입니다. 그는 나중에 낙천장의사를 떠납니다. ‘장의사 일은 죽음과 삶의 가교’라는 거룩한 가치관을 가진 장판돌과, 장례는 돈벌이라는 그의 생각이 충돌했던 것입니다.

낙천장의사를 떠나 판철구가 도착한 곳은 병원입니다. 병원은 요즘 우리 장례문화의 중심지입니다. 초상났다고 하면 당연히 병원 장례식장으로 달려갈 정도로 이제는 병원 장례가 일반화됐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장례를 돈벌이로 여겼던 유일한 사람인 판철구가 병원으로 간 것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병원은 죽은 자를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여긴다는 것이고, 지금의 장례문화는 망자에 대한 예의도 존중도 없다는 항변입니다. 전문화와 편리함을 쫓다보니 다들 병원만 찾게 된 것입니다.

낙천장의사에는 프로 장의사인 장판돌과 그의 손자 재현, 그리고 서울서 온 판철구 외에 한 명이 더 있는데, 이 사람으로 인해 많은 웃음이 발생했습니다. 황금슈퍼 집 아들 대식(정은표)은 아버지가 입 하나 줄여볼 생각에 장의사로 보낸 한심한 청춘입니다. 하는 일이라곤 곰다방 미스 황 꽁무니 쫓아다니는 것 밖에 없는 인물로 그는 처녀의 몸이나 실컷 보게 처녀나 하나 죽었으면 하고 오매불망 바랐습니다.

존재감이 없는 것 같지만 그로인해 죽음이 많이 희석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여자 꽁무니만 쫓아다니고 먹을 것만 밝히는 인물이지만 그는 항상 행복해 보이고, 여유가 넘치며, 그래서 그의 손에 쥐어진 죽음 또한 가볍고 유쾌한 것으로 여겨지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에게서 죽음은 두렵거나 터부시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칼을 꽂고 죽은 과부의 금니를 빼돌려 좋아하는 여자의 금반지를 만든 위인입니다. 그 반지를 받은 곰다방 미스 황 또한 죽은 사람 이빨이면 어떻고, 산 사람 이빨이면 어때? 금반지란 게 중요한 거지, 하면서 개의치 않았습니다. 재미있고 즐거운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 앞에서는 죽음 또한 재미있는 농담처럼 여겨졌습니다.

장의사 홍범표 씨 기사를 읽었는데 그는 30년 동안 장의사 일을 해오면서 수많은 시신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물에 빠져 죽은 시신, 교통사고로 팔 다리가 떨어진 시신, 늦게 발견돼 구더기가 낀 시신 등, 무수한 시신을 보면서 삶의 유한성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재미있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늘 죽음과 직면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신뢰감이 갔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미스 황이나 대식이야말로 삶을 제대로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한 장의사>는 죽음은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인가, 하고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김은주 | 자유기고가 cshchn2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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