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봉당 석산 큰스님!

홀가분하십니까?

일찍이 세연이 다해 옴을 아시고
“ 본래 자리, 한물건도 없는 그 곳으로 빨리 가고 싶어.
닦을 곳 없는 그 곳으로 가야지.”라고 말씀하시더니
진정 기쁘십니까?

하지만 아주 배움과 수행이 턱 없이 모자란 졸승들은
큰스님과의 이승 인연이 다했음을
아직도 실감하지 못합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대웅전에 들면
큰스님의 염불을 들을 수 있고
기도수행하시는 모습을 뵐 수 있을 듯한데
정녕 이 졸승들을 뒤로 하고 가셨단 말입니까?

큰스님!

세상 사람들이 말하길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이런 시대에
우리 불교는 그 맨 앞자리를 차지해서
낙발염의로 산문을 나서기가 부끄러운 지경입니다.

500년 동안 조선의 억불을 극복하고
왜정시대 36년 동안에는
승가의 세속화에 온몸으로 저항하신
선대 고승대덕의 은덕으로
한국불교 중흥의 기틀이 마련되었건만
요즈음은 하루가 멀다 하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승가의 범계행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으니
부처님오신날을 채 한 달도 안 남긴 지금
이 졸승들은
기쁨은커녕 참담하고 죄 진 마음에 가슴이 찢어집니다.

하지만 큰스님!

비록 배움과 수행이 턱 없이 모자란 졸승들이나
그래도 우리는 큰스님의 경책을 잊지 않고
이 무간지옥도 모자랄 업장을
반드시 끊어 내고 말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중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계(戒)가 바로 중이다.
몸으로 짓고, 입으로 짓고, 뜻으로 짓는 모든 업을 닦고,
계율을 지키고 행하는 것이 바로 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가르침, 이승 인연이 다하는 날까지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큰스님께서는
“법문 잘한다고, 강 잘한다고,
염불 잘한다고 중이 아니다.
계율을 닦아 지켜나가는 것이 그것이 진정한 중이다.
계를 지키지 않고서는
결코 부처의 길로 들어설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가르침, 이승을 떠나서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큰스님께서는
“중노릇이란 것이 짐이 아주 무겁다.
일단 출가를 하면
부처님과 뭇 중생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한다.
신도가 가져다주는 것을 먹어야 하는 처지에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이 시은을 갚기 어렵다.
‘백미 한 톨에 시주공덕이 7근’이라 했다.
신도가 가져오는 쌀알 한 톨에 깃든 공덕의 무게가
그 정도인데
어찌 함부로 시주를 쓸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가르침, 숨을 못 쉴지언정 한 순간도 잊지 않겠습니다.

지봉당 석산 큰스님!

바라옵건대,
이러한 졸승들의 간절한 참회를 헤아리시고
부디 이승에 다시 현현하시어
이 졸승들의 게으름과 어리석음을
1만근 주장자로 후려쳐
백척간두에서 거침없이 진일보하게 하소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향을 사르옵니다.

불기 2559년 5월 2일

비구 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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