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봉당 석산 큰스님!

지난 큰 스님의 다비식에서 보았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치솟는 화염(火焰)을. 오열하는 대중에게 차례차례 인사라도 하듯 매운재가 내려앉을 때까지 하얀 연기가 허공에서 원무(圓舞)를 추는 것을.

그렇게 큰 스님의 법신(法身)은 일원상(一圓相)의 진리가 되고 종내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자리에 드셨습니다.
비록 큰 스님의 법신(法身)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이 되어 홀연히 사라지셨으나 법신에 계합하는 일단영광(一段靈光)의 가르침은 대중 곁에 남아 있었습니다.

수미산(須彌山)처럼 높고 항하수(恒河數)처럼 많은 큰 스님의 자비 법력으로 말미암아 중유(中有)의 기간 내내 우리 대중은 안지(安之)할 수 있었나이다.

이제 큰 스님의 49재를 봉행하면서 우리 대중은 흩어졌던 만 갈래 길이 하나의 길로 만나는 이치를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삼각산이 너무 가깝게 보이는 청명한 만춘(晩春)이어서 도솔천 세계의 소리를 옮겨온 것 같았던 큰 스님의 법성(法聲)이 이명(耳鳴)이 되어 울리는 듯합니다.

아마도 이 세상의 인기척을 듣고 가던 길 멈추고 큰 스님께서 뒤를 돌아보시는 것이겠지요.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다니는 새 떼조차도 큰 스님의 말후구(末後句)만을 읊조리는 봄날이어서 환생(還生)이 시작하기도 전에 큰 스님의 미래(未來)가 우리 대중 곁에 와 있는듯합니다.

꽃이 진 자리에는 꽃의 향기가 그윽하게 남듯이 때로는 천산(千山)의 눈을 밟으시고 때로는 만수(萬水)를 건너시면서 불조(佛祖)의 현지(玄旨)를 탐구하셨던 큰 스님의 가르침만은 우리 대중 곁을 지키시면서 지남(指南)이 되실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지중(至重)한 삼세(三世) 인연의 무거운 짐을 벗어놓으시고 적멸의 대자유를 만끽하소서.

불기 2559년 5월 2일

재단법인 선학원 장로원장 혜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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