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곤명의 백족(白族) 구도차(九道茶) 시연 모습.

4.중국 소수민족의 음차문화

중국에 “천리 밖은 풍기(風氣)가 다르고, 백리 떨어진 곳은 습속(習俗)이 다르다.”1)는 옛말이 있다. 중국은 그 영토가 광활할 뿐만이 아니라 56개 민족으로 형성된 다민족국가이기 때문에 각자 처한 지리적 환경과 역사문화가 다름은 물론이고, 그 전통의 생활풍속까지도 서로 많은 차이가 있다. 이렇게 각기 크고 작은 차이가 있는 각 민족들의 생활풍속들로 인해 음차방식도 제각각의 독특한 음차풍속을 형성하게 되었다. 설사 같은 민족이라 할지라도 서로 다른 지역적 환경으로 인해 음차풍속이 각기 달라지기도 하고, 또 지역 나름의 독특한 음차풍속과 역사를 지니기도 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음차풍속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하나의 커다란 공통점을 찾을 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차를 마시는 모든 민족들이 하나같이 건강과 정신수양을 위해 차를 마신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음차의 ‘대동소이’한 점이라 할 수 있겠다. 지면이 제한된 관계로 본문에서 56개 민족의 음차풍속을 다 거론할 수는 없다. 몇몇 대표적인 민족만 가려뽑아 그들의 독특하면서도 의미 있는 음차풍속을 소개하겠다.

1) 곤명(昆明)의 구도차(九道茶)

‘구도차(九道茶)’는 주로 중국 서남지역에서 유행하며, 운남성 곤명 일대에서 가장 성황을 이루고 있다. ‘구도차’를 우려낼〔泡茶〕 때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차는 당연히 ‘보이차(普洱茶)’이다. ‘구도차’는 일반 가정에서 손님을 접대할 때 주로 행하는데, 이로 인해 ‘손님맞이 차’ 즉, ‘영객차(迎客茶)’라고도 부른다.‘구도차’의 기본방식은 태도를 온화하게 하고 거동을 우아하게 하는 것이며, 이를 일러 중국인들은 ‘온문이아(温文尔雅)’라고 표현한다. ‘구도차’란 명칭은 차를 마실 때 아홉 가지 단계로 나누어 행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① 첫 번째 단계는 ‘상차(賞茶)’이다. 즉, 진귀한 보이차를 작은 다반에 올려놓고 차를 감상하는 것이다. 주인이 손님 앞에 내밀어 차의 감상을 청하면 손님은 차의 외형을 관찰하고 색을 살피며 차향을 맡는다. 이때 주인은 손님에게 보이차의 특징을 간단히 설명함으로써 손님의 차를 마시고 싶은 정취를 북돋운다.

② 두 번째 단계는 ‘결구(潔具)’이다. 이는 차 마실 도구들을 청결하게 씻는 단계이다. ‘구도차’에서는 의흥(宜興)의 자사(紫砂) 다기를 선택 사용하여 손님을 대접하는 것을 으뜸으로 치며, 통상 차호(茶壺), 찻잔〔茶杯〕, 다반(茶盤)을 한 질로 갖춘다. 다기의 온도를 높이고, 차즙의 침출을 돕고, 다기를 깨끗이 하기 위해서 끓인 물을 충분히 부어서 다기를 깨끗이 씻는다.

③ 세 번째는 단계는 ‘치차(置茶)’이다. 차를 넣는 단계이다. 넣은 차의 양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먼저 차호의 크기부터 살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차 1g 당, 끓인 물 50~60ml의 비율로 맞춘 뒤, 보이차를 자사호에 넣고 포다(泡茶)할 준비를 한다.

④ 네 번째 단계는 ‘포다’이다. 막 끓은 물을 보이차가 든 차호 안에 재빨리 붓는데, 이때 차호의 3~4부 정도만 채운다.

⑤ 다섯 번째 단계는 ‘침차(浸茶)’이다. 즉, 차의 성분을 물속에 침출시키는(우려내는) 단계이다. 물을 붓자마자 즉시 차호 덮개를 덮고 차호를 좌우로 약간 흔들어 준다. 그리고 다시 5분정도 찻잎이 물속에 충분히 우러나도록 조용히 놓아둔다.

⑥ 여섯 번째 단계는 ‘균다(勻茶)’이다. 즉, 차호 속 차의 농도를 고르게 하는 단계이다. 차호의 덮개를 열고, 물이 덜 채워진 차호(茶壺) 속에 남은 끓인 물을 다시 부어 넣어 차탕〔茶湯〕의 농도를 적당히 조절한다.

⑦ 일곱 번째 단계는 ‘짐다(斟茶)’이다. 차를 찻잔에 따르는 단계이다. 차호 속에 농도가 고르게 우려진 차탕을 주인 앞에 반원형으로 배열된 찻잔들 속에 나누어 따르는데, 이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왕복하며 각 찻잔 속 차의 농도가 고르게 하며, 찻잔의 8부 정도까지만 따른다.

⑧ 여덟 번째 단계는 ‘경차(敬茶)’로서 주인이 손으로 다반을 받쳐 들고 장유유서(長幼有序)에 의해 순서대로 차를 권하며 예를 표한다.

⑨ 아홉 번째 단계는 ‘품다(品茶)’이다. 일반적으로 먼저 차향을 맡아 마음을 맑게 하고, 이어서 천천히 차를 마시며 섬세하게 차 맛을 음미하여 음차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2) 장족(藏族 : 티베트족)의 쑤여우차(酥油茶)

장족은 주로 중국의 서장자치구에 분포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운남, 사천, 청해, 감숙성 등의 일부지역에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티베트 고원은 지세가 높고 험준하여 ‘세계의 지붕’이라 불린다. 대체로 기후가 매우 춥고 건조하여 장족들은 대부분 방목생활을 하거나 일부 한지(旱地)작물을 재배하는 것으로 생업을 삼고 있다. 티베트 고원은 채소와 야채 그리고 과일이 매우 적어서 일 년 내내 우유와 고기 및 참파(糌粑)2)를 주식으로 삼고 청과주(靑稞酒)를 즐겨 마시기 때문에, 차가 아니면 육식을 소화하기 어렵고, 청과(靑稞)의 열을 해소할 길이 없다.3) 그러므로 차(茶)는 장족에게 있어서 야채류의 영양소를 보충할 수 있는 주요 공급원이며, 특히 쑤여우차(酥油茶)는 그들에게 있어 마치 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대단히 중요한 생활필수품이다.

‘쑤여우차’는 차탕 속에 쑤여우(酥油)나 기타 소금 등의 양념을 첨가하여 특수한 방식으로 가공하여 만든 차이다. 쑤여우란 소젖이나 양젖을 펄펄 끓여서 휘저어 냉각시키면 표면에 응결되어 나타나는 고체 지방질로써 치즈나 버터에 해당한다. 쑤여우차를 만들 때 주로 사용하는 차는 보이차와 강전(康磚) 그리고 금첨(金尖)4)이다. 그럼, 쑤여우차를 만드는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우선 긴압차(緊壓茶)5)를 적당량 떼어내어 부순 뒤 차호 속에 넣고 20~30분가량 끓인다.

둘째, 거름망을 이용해 차 찌꺼기를 걸러낸 후 차탕을 긴원통형의 타차통(打茶筒)6)에 넣고, 이어서 적당량의 치즈나 버터를 함께 넣는다. 이때 기호에 따라 사전에 이미 볶아서 빻아놓은 호두가루, 땅콩가루, 깻가루, 잣 등을 함께 넣어도 무방하다. 또 소량의 소금이나 계란 등을 넣기도 한다.

셋째, 나무로 만든 공이(목저 : 木杵)7)로 길고 둥근 차통 안을 위아래로 피스톤 운동을 하듯 힘차게 여러 번 저어준다. 장족은 “나무공이로 휘저을 때 처음엔 ‘꽈당! 꽈당!’ 소리가 나다가 ‘솨~솨~’하는 소리로 변하게 되면 차탕과 가미한 첨가물이 적당히 잘 섞였으므로 ‘쑤여우차’가 비로소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완성된 ‘쑤여우차’는 식기 전에 곧장 보온 차병에 옮겨 담아 마실 준비를 한다.

‘쑤여우차’는 차를 주재료로 하여 여러 종류의 식료를 섞어 만든 건강음료의 일종이다. 그러므로 만드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맛이 다양하게 나타날 뿐만 아니라 일단 마셔보면 짠맛 속에 차향이 배어나오고 입안에는 은근히 단 기운이 맴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섬세한 미각을 지니지 않거나 혹은 그곳 음식에 동화되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쑤여우차’는 그 맛이 역하게 느껴질 것이다. ‘쑤여우차’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어 방한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영양보충에도 뛰어난 효과가 있어 평균 4000m 이상의 한대 고원지대에 사는 장족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음료일 수밖에 없다.

티베트의 초원과 고원지대는 땅이 광활하고 인가가 드물어 집에 찾아오는 손님이 드물며, 또 어쩌다 손님이 방문하는 경우에도 대접할 음식이 워낙에 없기 때문에 오직 ‘쑤여우차’만이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유일한 대접거리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장족은 라마교(喇嘛教)를 신봉하는 독실한 불교신자이다. 그들은 라마제사 때엔 빈부에 상관없이 반드시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차를 올린다. 특히 부유층들은 라마제사에 참가한 대중들에게 널리 차를 베풀며, 이러한 시차(施茶) 행위를 적덕(積德)과 행선(行善)의 보살행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티베트의 일부 대규모 라마교 사원에는 대부분 한 번에 몇 백 근의 차를 끓여낼 수 있는 거대한 차 솥이 구비되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원에서는 명절이 되면 신도들에게 차를 베푸는데, 이는 모두 중생에게 부처님의 은덕을 베풀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금도 이러한 광경은 티베트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주)  -----
1) “千里不同風, 百里不同俗.”
2) 참파(糌粑 : rtsam-pa) : 청과맥(靑稞麥)의 볶은 가루를 쑤여우차나 청과주에 개어 먹는 경단으로 장족의 주식(主食)임.
3) 明代談修在《滴露漫錄》中說 : “茶之爲物, 西戎土蕃古今皆仰給之. 以其腥肉之食, 非茶不消; 靑稞之熱, 非茶不解.”《格致鏡原》卷21《飮食類・茶》, 《四庫全書》1031冊, 284面.
4) ‘강전(康磚)’과 ‘금첨(金尖)’은 모두 찐 뒤 벽돌 모양으로 단단하게 압착하여 만든 차이다. 이 차들은 모두 장족에게 공급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만들어진 긴압(緊壓)형태의 흑차(黑茶)들이다. ‘강전’은 품질이 고급에 속하고 ‘금첨’은 그보다 떨어진다 하지만, 지나치게 고급차에만 익숙해져 있는 우리나라사람들에게는 둘 다 품질이 그리 좋게 느껴질 수 없을 것이다.
5) 이때 사용하는 긴압차(緊壓茶)는 보이, 강전, 금첨이다.
6) 타차통(打茶筒) : 중국어에서 ‘타차(打茶)’란 ‘차(음료)를 만들다.’는 뜻이다.
7) 목저(木杵):나무로 만든 막대기 형태의 공이, 또는 휘 젖는 막대기란 뜻으로 ‘교곤(攪棍)’이라고도 한다.

박영환 | 중국 사천대학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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