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역경원이 한글대장경을 완간한 지 15년이 지나고 있다. 총318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한글대장경을 완간하고 이를 기리는 기념법회를 성대하게 봉행한 때가 2001년. 당시의 기쁨과 환희를 잊지 못하는 불자들도 많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글대장경의 완간이 곧 역경불사의 끝이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인지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본격적인 역경은 그때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옳다. 비록 한글대장경이 완간되었다고는 하나 대장경의 체제와 번역상의 제문제등이 여전히 놓여있고 그것은 완간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불전의 한글화 작업은 쉽고 바른 불교의 대중화를 의미한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가 우리나라의 문화를 격상시키고 발전적인 미래를 견인했듯이 한국불교는 역경이 꾸준히 뒷받침되지 않으면 절름발이식 발전을 면키 어렵다. 난해한 자료와 빈약한 학문적 축적으로는 국제화에 걸맞는 한국불교의 미래 문화와 사상을 쌓아올리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숱한 어려움과 고난을 딛고 한글대장경을 완간해 냈다는 것이다. 더욱이 재정적 어려움을 이겨내고 완간의 기쁨을 맛본 것은 상찬돼야 마땅하다. 실로 동국역경원은 한국불교현대사에서 주요한 업적을 남겼다. 재원과 인력이 엄청나게 부족한 상황에서 완간의 업적을 이뤘다는 것은 큰 의미를 던져준다.

불전의 한글화 작업은 역경(逆境) 그 자체였다. 한문으로 이루어진 고려대장경은 총 639함(函) 1,514부(部), 6,805권(卷)에 이른다. 이 막대한 분량의 고려대장경을 우리말로 옮기기 위한 작업은 지난한 세월과 함께 해왔다. 조선조 세조대에 간경도감이 설치되면서 한글번역작업이 있었으나 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백용성스님이 삼장역회(三藏譯會)를 조직하고 ‘화엄경’등을 국역하는데 힘썼으나 이마저 얼마가지 않았다. 일제로부터 우리말과 글을 빼앗기는 불운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경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코자 했던 때는 1964년. 조계종단이 도제양성과 포교를 역경사업과 함께 종단 3대사업으로 확정하자 종정 직속기관으로 역경위원회를 두고 역경원법을 제정하면서부터다. 역경사업에 따른 재원마련을 위해 조계종단은 정부의 지원을 위한 여러 방안을 모색한 결과 당시 김법린 동국대 총장의 제안에 따라 동국대 부설기관으로 역경원을 출범시켰고 이에 따른 정부지원책을 요구했다. 그렇지만 역경사업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한때는 국고보조금이 중단되기도 했고 역경에 참여했던 김달진, 서정주, 조지훈, 이종익 등 당대의 기라성같은 문인과 학자들이 연로하거나 별세함으로써 침체기에 빠지기도 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딛고 마침내 지난 2001년 한글대장경을 완간했으니 그 감회와 감격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재 알려지기로는 한글대장경의 개편 및 개역(改譯)작업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국제화 시대를 맞아 대장경의 영역 독역 불역 등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시급한 과제다. 무엇보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부처님의 생애와 사상이 책으로 출간되어 보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또 다른 역경사업이다. 이러한 점에서 역경의 중요성이 강조돼야 함에도 교계와 불자들의 관심도가 극히 미미한 것 같아 아쉬움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역경은 단순히 학계의 일로만 치부돼선 곤란하다. 엄밀히 말해 역경은 전법과 포교의 수단이다. 지구촌이 날로 가까워지고 세계인류가 하나가 되어가는 글로벌 시대에서 역경은 가장 유효한 전법수단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역경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은 부처님이 유교하신 전법을 포기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교계는 역경이 계속 지속되어야 할 중대한 과제라는 점을 인식해 ▲역경사 양성문제 ▲역경사 배출을 위한 시스템 도입 ▲역경과 관련된 문화관계의 설정 ▲번역불서의 유통구조 확대 등 제반문제를 다시금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역경에 대한 이목과 관심은 한국불교가 지향하는 현대화 대중화 세계화를 열 단초라는 점에서 간과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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