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봉당 석산 대종사께서 세연을 접고 열반에 드셨습니다.
“사해(死海),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석산 대종사의 말씀이 우레처럼 귀를 때립니다.
퇴타심 없이 수행하셨던 터라 석산 대종사께서는 생사일여(生死一如)의 이치를 득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렇지 않게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거지요. 이는 하루밖에 못 사는 월면불(月面佛)이나 1,800년을 사는 일면불(日面佛)이 같다고 하신 마조스님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합니다.

하지만 대종사의 가르침에 기대어 살아왔던 우리 대중은 대종사의 법신을 보내기가 아쉽다 못해 사무칩니다. 대종사의 가르침 없이 어떻게 삶의 바다를 건널지 마냥 두려울 뿐입니다.

대종사께서는 견문각지(見聞覺知)를 홀연히 멈춘 채 깊고 깊은 적정(寂靜)에 드셨으나, 부처님이 하강하신 것만 같았던 대종사의 염불소리가 여전히 허공을 맴돌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게 석산 대종사께서는 보광 스님에게 염불을 배운 마지막 어장이셨습니다.

대종사께서는 입적하기 전까지 단 하루도 염불과 기도수행을 거른 적이 없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천수경과 나무아미타불 정근을 하고 낮에는 <금강경>을 사경하며 노구에도 불구하고 방일함을 경계하며 늘 수행심을 유지하셨습니다.

대종사가 없는 삼각산은 조락의 들녘처럼 황량합니다. 대종사의 법신을 볼 수 없는 대중의 마음에도 통열한 슬픔의 노래만이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종사의 법신은 가고 없어도 대종사가 남긴 가르침은 오롯이 남아 대중의 아픈 가슴을 어루만질 것을 믿습니다. 대종사께서 건봉사에서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연을 맺은 바 있는 만해 한용운 스님의 시구처럼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스님은 가셨지만 우리 대중은 스님을 보내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가 스님의 침묵을 휩싸고 돌고 있습니다.

스님! 스님의 법신을 보내는 우리들의 통렬한 마음을 헤아리시어 언제라도 다시 돌아와 다시 크신 법문을 들려주시옵소서. 영전에 향 사루며 깊은 슬픔을 삭입니다. 가시는 듯 돌아오소서.

불기 2559(2015)년 3월 19일

동국대학교 석림동문회장 영담 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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