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불교가 소승-대승-금강승을 지나 말법시대가 도래했다는 웃지 못할 주장이 나오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은처를 하든 도박을 하든 이제 문제가 안 된다는 보도가 지면을 메우고 있다. 자승 총무원장에 반대하면 멸빈이 된다. 가끔 제적돼도 그 동안의 ‘정리’가 있어서 눈감아 주기도 하나 보다. 제적원을 낸 인천 용화선원의 송담 스님도 그랬고, 제적원을 내고도 멸빈된 선학원의 법진 스님과 한북스님도 그랬던 것으로 파악된다.

부처님 법에 따라 우리나라를 말법시대로 이끈 16국사와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권승들이 지금의 조계종이 가장 황금기를 걷고 있다고 했던가? 수많은 문화재청 사업, 템플스테이를 비롯한 보조금 사업, 매년 수백억원이 걷힐 것이라는 무성한 추측을 낳고 있는 연주대, 봉은사, 갓바위 등 직할자찰의 비공개 수익 등으로 소위 출가자인 그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가?

자승자박(自繩自縛)이란 속담이 있다. 이는 자신이 만든 줄로 제 몸을 스스로 묶는다는 뜻이다. 자기가 한 말과 행동에 자신이 구속돼 어려움을 겪는 것을 이르는 한자성어로 우리 불교의 인과응보와 비슷한 말이다. 해결은 결자해지(結者解之)다. 밧줄을 묶은 자가 스스로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일을 해결해야 함을 비유한 한자성어이다. 모두가 부처님 가르침대로다.

일차적으로는 자승 총무원장 시대의 모든 공직에 있는 승려가 스스로 참회하고 그 죄과에 따라 물러나면 되지만 실제론 불가능하다. 화쟁, 자성과 쇄신이라는 허울만 좋은 철갑면죄부로 중무장한 그들과는 대화는커녕 소통도 불가능해 보인다고 한 불교 전문가는 전한다. 어쩌면 부처님의 화엄신중조차도 가까이 하기를 꺼리기에 이러한 불통이 지속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한 신도는 말한다.

근래 창립의 시동을 건 바른불교재가모임(우희종·김종규·김경호 공동대표)이 신행결사를 병행하는 새천년의 참다운 재가불교운동을 시작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새로운 천 년을 준비하는 모임으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말법시대를 겨누는 하나의 시퍼런 칼날이 돼 그들을 조금이라도 자제시켰으면 하는 바람을 적지 않은 불자들이 가지고 있다. 즉 무엇보다도 급선무는 진정한 자성과 쇄신을 위해서는 고양이에게 방울을 달아야 한다.

최근 불교저널이 한국불교기자협회에서 탈퇴했다. “불교 언론 종사자가 보도내용에 불만을 품은 정치승려에게 폭행당하는 사태가 벌어져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이 관제의 힘을 빌려 유신 시절에나 가능했던 불교 언론사의 출입을 통제하는 일이 계속 이어져도 불기협은 진지한 고민을 통한 대응을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연인지 현재 불기협에는 불교저널리즘이 살아있다고 평가되는 ‘불교닷컴’과 ‘불교포커스’는 포함돼 있지 않다. 바른불교재가모임은 불교저널 등을 비롯해 저널리즘이 살아 있는 불교계 언론과 함께 조계종을 정조준한 모니터링을 통한 불법홍포에 앞장서야 한다. 아울러 권승들과 그들의 사찰에 대한 보시 안 하기 운동을 비롯해 사찰들이 받은 국가보조금의 투명한 사용도 독려해야 하는 등 일이 산적해 있다.

양띠 해에 대한불교조계종 권승들이 또 무슨 범계나 범법행위로 우리 불교를 기독교보다 못한 처지로 곤두박질 시킬지 걱정이라는 불자들의 간절한 연꽃과 같은 마음을 이제라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연꽃을 보면 불자는 누구나 처염상정(處染常淨)을 떠올린다. 처한 곳이 진흙 속으로 더러워도 항상 깨끗함을 잃지 말라는 말이다. 어떤 권승은 온몸에 문신을 해서 대중들과 목욕탕에 못 간다고 한다. 과거를 탓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는 강물에 흘려 버리면 된다. 다만, 과거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새롭게 사는 참회를 통해 거듭나야 한다. 허울 좋은 ‘화쟁’이나 ‘은닉’으로 진실을 은폐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사부대중의 결사는 깨끗이 살고자 하는 모든 불교 언론과 함께 가야 한다. 그것이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우리 모두의 잘못을 해결하는 결자해지의 유일한 방법이다.

* 이 칼럼은 사부대중 모두가 부처님 구도의 길을 가기 위한 자성과 쇄신 등 공익적 목적으로 일부 전문가와 신도들의 의견이나 우려를 전하는 형식으로 작성됐다. 이는 일방의 의견일 뿐 다른 해석과 반론도 충분히 가능하다.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하도겸 | 칼럼니스트 dogyeom.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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