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에 태국을 다녀왔는데 비행기 삯을 아끼려고 상하이 푸둥국제공항을 경유했습니다. 상하이에 도착했을 때 날은 흐리고 쌀쌀했습니다. 무겁고 짙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먼지 냄새가 많이 난다는 생각도 좀 했지만 무심하게 지나갔습니다.
방콕에서 돌아올 때도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상하이에 들렀는데 여전히 회색 도시였습니다. 먼지 냄새도 여전했습니다. 열대지방의 강한 햇빛과 파란 하늘, 멋진 수평선을 보고 왔기 때문인지 상하이 날씨는 불쾌하게 여겨졌습니다.
비행기가 육지로 다가갈수록 상하이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는데 공장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잘 닦인 도로와 높이 올라간 건물들이 보였습니다. 세계의 굴뚝을 자처하면서 중국은 경제성장을 이뤄냈고, 그 대가로 파란 하늘과 밝은 햇빛을 잃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회색 도시에서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과연 행복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자연을 잃었는데, 과연 그것이 인간의 행복조건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도 생겨났습니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영화 <스틸라이프>(중국, 2006)는 상하이 상공에서 내가 느꼈던 걱정이 표현된 영화였습니다. 중국 경제성장의 이면에서 파괴돼 가고 있는 자연과 함께, 개발이라는 큰 그림 아래서 오히려 소외당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이것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 하는 회의감을 표현한 영화입니다.
<스틸라이프>는 중국 6세대 영화감독의 대표주자인 지아장커 감독이 전작인 <동>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다가 갑자기 만들게 된 작품이라고 합니다. 현대 화가 리우샤오동의 행보를 따라 싼샤댐 건설현장에 갔다가 아름다운 싼샤와 그곳 사람들에 감동해서 이 영화를 촬영하게 됐다고 합니다. 영화의 원제는 <삼협호인(三峽好人)>으로 세 협곡에 사는 좋은 사람들이라고, 영화가 지향하는 바를 제목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발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가려졌지만 사실은 가장 중요하게 대우받아야 할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 작품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감독으로 성장했습니다.
영화는 산밍이라는 남자가 아내의 주소가 적힌 종이를 들고 싼샤에 오면서 시작합니다. 산밍은 16년 전 딸을 데리고 가출한 아내를 찾으러 이곳에 왔습니다. 아내가 적어준 주소지에 갔더니 그곳은 댐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아내가 살던 곳은 이제 물속에 잠겼고, 세상 어디서도 찾을 수 없게 됐습니다.
산밍을 댐으로 데려간 남자는 다시 돈을 받고 동사무소 같은 곳으로 데려다주지만 거기서도 아내가 있는 곳을 알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산밍의 아내 찾기는 장기전으로 이어집니다. 산밍은 공사장 철거작업을 하면서 아내를 찾아다닙니다. 수소문 끝에 찾아낸 아내의 오빠는 산밍이 찾아다니는 아이가 사실은 산밍의 아이가 아니니 자기들을 귀찮게 하지 말라면서 매정하게 대합니다.
16년이라는 시간은 육지가 물로 바뀐 것처럼 모든 것을 바꿔놓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산밍이 아내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그들 사이에 도대체 무엇이 남아있을까요? 산밍의 아내는 돈으로 산 여자로, 딸을 출산하자마자 가출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더욱 유대감 같은 건 없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오빠의 말처럼 산밍이 딸이라고 여기는 아이가 사실은 산밍의 딸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산밍이 아내와 딸을 찾아 이곳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조금 의아했고, 아내와 딸을 만난다한들 그들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산밍 이야기와 별개로 셴홍이라는 여자의 이야기가 함께 진행됩니다. 셴홍은 남편을 찾아 싼샤로 왔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돈을 벌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가 연락이 끊겼습니다. 셴홍 부부는 산밍과는 달리 돈 때문에 떨어져 살았던 부부입니다. 남편으로부터 가끔씩 연락이 오긴 했는데, 2년 전부터는 완전히 연락이 끊겨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셴홍은 이곳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산밍이 싼샤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아내를 찾는 것과 달리 셴홍은 찾는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을 찾는 일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남편이 다녔던 공장에도 그녀가 보낸 잎차 봉지가 뜯기지도 않은 채 남아 있을 뿐입니다.
산밍과 셴홍의 공통점은 가장 가까워야 할 관계로부터 분리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을 잃고 싼샤를 떠도는 그들의 모습은 쓸쓸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뿌리가 뽑힌 사람들의 아픔과 외로움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이런 감정을 부추기는 것은 싼샤라는 공간입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산밍과 셴홍 보다 더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싼샤의 풍경입니다. 지금도 영화에서 봤던 몇 개 장면이 머릿속을 떠도는데 대부분 공간이미지입니다. 멀쩡하게 서있던 벽이 갑자기 무너지는 모습이라던가, 노동자들이 망치를 내리쳐 콘크리트를 잘게 부수고 있는 가운데 앞이 안 보이게 먼지가 피어오르는 장면 등 싼샤는 한 마디로 형체를 잃어가고 있는 공간, 사물이 해체되고 있는 장소였습니다.
간신히 찾은 셴홍의 남편에게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새로 사귄 여자는 여류 사업가였습니다. 새로 사귄 여자의 재력 때문인지 남편은 깔끔한 옷을 입고 손목에는 지갑을 걸고 다녔으며 심지어 차까지 굴리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공장에 다니던 예전의 그가 아니었습니다. 지방 유지들을 사귀고 멋진 조명이 켜진 곳에서 사교춤을 추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셴홍은 남편과 자신 사이엔 이미 정이 끊어진 걸 확인했고,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무덤덤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이미 가정에서 돈으로 이동했던 것입니다. 상하이로 떠나는 여객선에 몸을 신은 셴홍의 얼굴은 무표정했습니다. 남편을 찾기 전에 셴홍은 내내 패트병에 든 물을 마셨습니다. 잃어버린 남편을 되찾아야 한다는 기대와 초조감이 갈증을 일으켰었는데, 이제 모든 희망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무너진 건물처럼 셴홍의 가정 또한 이곳 싼샤에서 무너진 것입니다.
그런데 산밍은 셴홍과는 다른 종류의 이별을 합니다. 16년 만에 만난 아내는 자기가 철이 없어서 가출했다고 후회하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뭐하다가 이렇게 늦게 찾으러 왔냐면서 산밍을 힐책하기까지 합니다. 다시 가정을 재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산밍의 아내는 오빠 빚 때문에 어떤 사람의 배에 잡혀 있었고, 3만 위안이나 되는 돈을 갚아야 이들 부부는 함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산밍은 아내의 빚을 갚기 위해 탄광으로 떠납니다. 기약 있는 이별이긴 하지만 그렇게 낙관적인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산밍이 일하러가는 탄광은 1년에 12명 이상 죽어나가는 굉장히 위험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죽음을 맞을지 모르는 전쟁터와 같은 곳으로 그는 간 것입니다.
시인 이백이 시를 지어 헌사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싼샤의 풍경은 이제 화폐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됐고, 누군가의 고향은 물속에 잠겼습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유랑민이 돼 떠돌아다니고, 건물들은 연신 무너져 내립니다. 형체가 있는 것들은 어느 순간 사라져가고, 사람들은 돈 때문에 이곳에서 이별을 합니다. 이것이 영화에서 표현한 싼샤입니다.
영화의 소재가 된 싼샤댐 건설은 중국 정부의 숙원사업이었습니다. 댐은 세계 최대의 전기를 생산해내면서 경제성장의 주축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싼샤댐의 이면에는 이런 모습이 있는데, 영화는 산업화 이면에 숨겨져 있는 어두운 단면을 싼샤라는 공간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산업화되고 있는 중국사회의 어두운 모습이지만, 그것은 중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적인 물질 숭배가 극단화되면서 인간은 오히려 외롭고 황폐해졌으며, 현실은 햇빛이 없는 회색 도시의 삶처럼 활기를 잃었는데, 영화는 현실의 이런 면을 드러낸 것입니다.
김은주 |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