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항, 무엇이 왜 문제인가 ②

<법인관리법> 제4조에서 법인산하에 사찰등록을 금지하도록 명문화한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재)선학원은 전법과 수행을 위해 존재한다. 1921년에 쓰여진 ‘선학원창설연기록(禪學院創設緣起錄)’에 의하면 “경성(京城) 도시내(都市內)에 정법선리(正法禪理)를 포교(布敎)하기 위하여 김남전(金南泉) 강도봉(康道峯) 김석두(金石頭) 삼화상(三和尙)이 협의하여 발기(發起)”하였다고 그 목적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정법선리(正法禪理)를 포교(布敎)’한다는 말은 부처님과 조사의 가르침을 널리 편다는 뜻이다.
이처럼 포교와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의 경우에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뜻을 함께 하는 스님을 길러내거나 역량을 모아야 하며 사찰의 설치와 운영을 확대해야 한다. 그런데도 “법인산하에 사찰을 등록받을 수 없다.”고 못 박은 것은 포교를 하지 말라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는 결과적으로 포교와 수행을 위축시킴으로써 널리 중생을 제도하라는 부처님의 당부를 저버린 것이다.

<법인관리법>에서는 법인의 권한을 침해할 수 없도록 금지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제 6 조 (법인의 권한침해금지) 이 법의 특별한 정함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종단은 종단에 등록한 법인의 재산권, 운영관리권 등 법인 고유권한을 침해하지 아니한다.(<법인관리법>)

이 조항에서는 “법인의 고유권한을 침해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마치 종단이 법인을 장악하거나 간섭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법인을 지원하고 도와주기 위한 것처럼 위장하고 있으나 다른 조항을 살펴보면 이 조항이 허울 좋은 명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지난 글에서도 밝혔지만, 종단에서 만든 법이나 조항이라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입법기구인 종회가 특정인의 세력에 장악됨으로써 법의 제정과 개정을 식은 죽 먹기처럼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저번에도 일부 언급한 내용이지만, 2002년 3월 6일 선학원 이사장 정일 스님과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스님은 5개항의 합의안에 서명하였다. 이 합의에 따라 선학원은 정관에 ‘대한불교조계종 종지 종통을 봉대한다’와 ‘임원은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중에서 덕망이 높은 승려를 이사회에서 선출한다’를 삽입하였고, 조계종은 2003년 3월 27일 <총무원법>에 선학원의 권리보장 조항을 신설하고 다음과 같은 내용을 추가하였다.

제 24 조 (선학원의 권리보장) 재단법인 선학원의 인사권, 재산권, 운영·관리권 등 재단법인으로서의 고유권한을 일체 침해하지 아니한다.(<총무원법>)

그러나 조계종 중앙종회는 이 조항을 2014년 3월 20일 삭제해버렸다. 지금은 폐지된 <법인법>이 “법인의 종단 등록 절차와 등록된 법인에 대한 종단의 지원과 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사실상 법인을 장악하기 위해 만든 법이란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반면 <총무원법> 제24조는 선학원의 권리를 보장한 조항이므로 서로 모순된다는 여론에 밀려 취한 조처였다.
<법인법>을 제정, 개정, 폐지하고 <법인관리법>을 제정, 개정하였을 뿐 아니라 <총무원법> 제24조를 삭제한 것만 보더라도 특정인의 의지에 따라 법의 제정과 개정, 폐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하나 더 예를 든다면, <선학원 정상화를 위한 특별법>이라는 것을 ‘특별히’ 만들어 “선학원의 주권을 종단으로 환수하고자 하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하면서 선학원에 대한 침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꼽을 수 있다. 조계종의 특정인 또는 특정 세력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법을 떡 주무르듯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그런 상황인데도 <법인관리법> 제6조에 법인의 권한침해금지 조항을 넣어 법인의 고유권한을 침해하지 아니한다고 억지 주장을 하면서 법인의 관계자들을 우롱하고 있다. 법인의 고유권한을 침해하는지 아닌지는 <법인관리법>을 좀 더 들여다보면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법인관리법> 제7조에서는 ‘종단법인’, ‘사찰보유법인’, ‘사찰법인’에 대하여 정관 변경 때 총무원장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인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때때로 정관을 변경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조항에서는 사전에 총무원장의 승인을 받도록 함으로써 법인에 대한 통제를 표면에 드러내고 있다.

승인(承認)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一定)한 사실(事實)을 인정(認定)하는 행위(行爲) 또는 어떤 사실(事實)을 인정(認定)하는 행위(行爲)”이다. 인정(認定)이라는 말을 다시 사전에서 찾아보면 “옳다고 믿고 정(定)하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승인의 비슷한 말로 허가와 승낙이 있고 반대말은 거부(拒否) 또는 거절(拒絶)이다. 상위 기관으로 군림한 총무원이 법인을 하위 기관으로 취급하며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종단에서 설립한 ‘종단법인’이야 총무원장의 승인을 받거나 말거나 알아서 할 일이지만, 정관 개정이 법인의 고유권한인데도 불구하고 ‘사찰보유법인’과 ‘사찰법인’까지 정관의 해당 조항을 개정할 때 총무원장의 승인을 받도록 한 것은 총무원장이 법인에 지나치게 간여하도록 만든 조항이며, 법인의 고유권한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조항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단법인에 준하는 임의단체인 조계종이 <민법>으로 그 지위가 보장된 재단법인을 통제하겠다는 것도 문제지만 정관을 변경할 경우 <민법>에 의해 주무관청의 허가를 얻도록 되어 있는데, 이 조항에서는 ‘사전에 총무원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니 어디를 먼저 받아야 할지, 그리고 총무원이나 주무관청 가운데 하나가 승인이나 허가를 하지 않을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여간 복잡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제 7 조 (정관 변경의 종단 승인) ‘종단법인’, ‘사찰보유법인’, ‘사찰법인’의 경우 해당 법인의 정관 중 다음 각 호의 사항을 개정하고자 할 때는 사전에 총무원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1. 법인명칭
2. 임원 자격과 선출
3. 정관 개정 의결 정족수
4. 법인 해산 시 잔여재산 귀속(<법인관리법>)


제7조는 법인 임원의 자격ㆍ선출에 관한 사항과 법인에서 정관을 개정하고자 할 때 의결 정족수를 종단에서 통제함으로써 법인 이사회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법인 해산 시 잔여재산을 종단이나 종단에서 만든 법인에 귀속하도록 강제하는 조항이다. 불교 재산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한다는 대의적인 명분을 가짐으로써 법인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법인을 해산하고자 할 경우 이 조항을 통해 해산 대상 법인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재단운영의 전반을 종단에서 관리하겠다는 뜻이며, 법인이 종단에 완전히 예속된다는 의미이다. 법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독소조항이 아닐 수 없다.

<법인관리법>에서 법인 해산에 관해 언급한 것은 제8조와 제14조 두 개의 조항이다.

제 8 조 (법인 해산)
① 종단등록 법인이 해산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해산절차를 진행하기 전에 ‘종단법인’, ‘사찰출연법인’, ‘사찰공동출연법인’과 증여 등의 통합절차를 추진하여야 한다.
② 제1항의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해당법인 정관에서 정한 해산 절차에 따른다.

제 14 조 (법인 해산 조항) 법인이 해산하는 경우에는 국가법률에서 특별히 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잔여재산을 재단법인 대한불교조계종 유지재단 또는 종단에 등록된 동일한 목적을 가진 법인 및 사찰에 귀속함을 그 정관에 명기하여야 한다.(<법인관리법>)

먼저 제8조에서는 종단에 등록한 법인을 해산하고자 할 경우 해산 절차를 진행하기 전에 종단에서 만든 법인이나 사찰에서 출연한 법인과 통합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고, 만일 그게 여의치 않을 경우 해당법인의 정관에서 정한 해산 절차를 따르도록 하고 있다. 제14조에서는 해산할 경우 그 잔여재산을 대한불교조계종 유지재단 등에 귀속함을 해당 법인의 정관에 명기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제8조에 의해 해산절차를 진행하기 전에 ‘종단법인’ 등에 통합절차를 추진해야 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제14조에 의해 해산 시 귀속할 곳을 정관에 명기함으로써 대한불교조계종 유지재단 등에 귀속되도록 안전장치를 하나 더 마련해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법인관리법>이 탄생하기 이전에 만들어졌던 <법인법>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제 13 조 (법인 해산) 법인이 해산하는 경우에는 그 잔여 재산을 재단법인 대한불교조계종유지재단 또는 종단에 등록된 동일한 목적을 가진 법인 또는 사찰에 귀속함을 그 정관에 명시하여야 한다. 다만, 국가법령이 별도로 정하는 경우에는 그에 따르되, 해당 법인은 본문에 따른 처리가 이루어지도록 적극 노력하여야 한다.(<법인법>)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조항을 둘로 나누어 중언부언한 이유는 그 만큼 종단에서 법인의 ‘해산’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법인의 해산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법률은 <민법>이다.

제80조(잔여재산의 귀속) ①해산한 법인의 재산은 정관으로 지정한 자에게 귀속한다.(<민법>)

<민법>에서 이렇게 명확하게 명문화하고 있으니 조계종에서 법인 해산 조항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고, 현 조계종 집행부는 법인의 해산에 대비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법인관리법>의 칼날은 과연 어느 법인을 향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대답은 이미 나와 있다. 작년 11월 5일 한국문화연수원에서 열린 불교광장 워크숍에서 현응 스님은 “법인관리법은 종헌 9조 3항에 근거해 만든 법으로, 발단은 94년 종단개혁 당시 개혁입법이었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선학원을 염두에 둔 법”이라고 했다. 선학원을 염두에 두고 만든 법이니만큼 해산 조항 또한 선학원의 해산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해석은 그래서 무리가 없다.

<법인관리법> 제9조는 등록 및 승인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조항이다.

제 9 조 (등록 및 승인)
① 이 법 제2조 1호, 2호에서 정한 법인을 설립한 법인의 대표자 또는 법인을 설립하고자 하는 법인의 대표자는 총무원에 등록하여 승인을 받아야 한다.
② 중앙종무기관이 설립한 법인은 이 법에 의해 승인된 것으로 본다.
③ 제1항의 등록 및 승인에 대한 절차는 종령으로 정한다.(<법인관리법>)

이 조항에서는 제2조 제1항의 제1호와 제2호를 적시하면서 법인의 대표자가 총무원에 등록하여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미 앞에서 한 번 살펴보았지만, 제2조의 해당 조항은 “종단의 사찰 또는 복수의 사찰이 재산을 출연하거나 모연하여 설립한 법인”과 “중앙종무기관이 재산을 출연하거나 모연하여 설립한 법인”을 말한다.
즉, 종단의 사찰이 설립한 법인이거나 종단에서 설립한 법인을 대상으로 제9조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중앙종무기관, 즉 종단이 설립한 법인의 대표자가 총무원에 등록하여 승인을 받든 말든 상관없다. 문제는 종단의 사찰이 설립한 법인의 대표자까지 총무원에 등록하고 승인까지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법인관리법 시행령>에서는 이미 설립된 법인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이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제3조(기설립법인 등록) ① 사찰출연법인, 사찰공동출연법인, 사찰보유법인, 사찰법인의 대표자는 다음 각 호의 서류를 갖추어 총무원에 등록하여 총무원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1. 법인 등록 승인 신청서(별지서식 제1호) 1부
2. 관할 관청 법인설립허가증 사본 1부
3. 법인 정관 1부
4. 법인 임·직원 현황(별지서식 제3호) 1부
5. 법인 등기부등본 1부
6. 법인 산하사찰 현황(별지서식 제4호) 1부(해당 법인에 한함)
7. 법인 재산 현황(별지서식 제5호) 1부(<법인관리법 시행령>)

<법인관리법 시행령>에 의하면 법인의 정관과 임직원현황은 물론 갖가지의 등기 현황과 산하 사찰 현황, 법인 재산 현황에 이르기까지 법인에 관한 거의 모든 서류를 요구하고 있다. 법인의 모든 것을 종단에서 들여다보고 통제하겠다는 뜻이다. 이러면서도 <법인관리법> 제6조에서는 “(법인의 권한침해금지) 이 법의 특별한 정함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종단은 종단에 등록한 법인의 재산권, 운영관리권 등 법인 고유권한을 침해하지 아니한다.”라 하고 있으니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는 속담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법인관리법 시행령> 제3조 제6호에서는 법인 산하사찰 현황을 제출하도록 명시해 두고 있다. 조계종에서 법인 산하 사찰들, 예를 들어 선학원의 분원들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나서는 어떤 일을 할까? 아마 조계종 말사와 같은 의무를 부과할 것이다. 이 부분은 뒤에 부칙을 설명하면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이 뿐만 아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약 선학원이 <법인관리법>에 의해 종단에 등록했다고 가정해 보자. 현재의 선학원 이사장 스님이 종단 권력자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승인을 거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조항과 연계하여 예상해보면 종단의 입장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종단에서 파견한 이사를 이사장으로 선정하려 할 것이고 결국 선학원은 종단 권력자의 뜻에 의해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 본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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