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가 세상에 머무는 까닭은 갖가지 악업을 지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함이라 한다. 만약 세상에 무위(無爲)의 성인들이나 불성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굳이 부처님이 세상에 머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열반경》에서는 이와 같은 이유로 아사세왕과 같이 악업을 지은 자들을 위하여 부처님이 열반에 들지 않는다고 하였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아들을 일곱 두었는데 그 가운데 한 아들이 병이 났다고 한다면 부모의 마음은 모든 아들을 사랑함에 있어서 평등하건만 병든 아들에게 마음이 치우치게 되듯이, 부처도 모든 중생들을 평등하게 사랑하지 않음이 없지만 악업을 지은 육도중생에게 무량한 자비로 염려하며 6주(住) 보살과 같이 방일하지 않는 이에게는 마음을 놓는다고 한다.

그러면 악업 중죄의 중생을 어떻게 제도하는가.

여래는 중생들에 대해서 문벌이나 늙고 젊음이나 빈부나 시절이나 미천하거나를 보지 않고, 선심(善心)이 있으면 자비심을 내는데, 월애삼매(月愛三昧)에 들어서 중생으로 하여금 열반의 길을 닦아 익히게 한다는 것이다. 이 삼매는 달빛이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점점 늘어나듯이 처음 선심을 낸 사람들로 하여금 그 본심이 점점 늘어나 익히는 사람들이 기쁘게 하며, 한창 무더울 때 모든 중생이 항상 달빛을 생각하고 달빛이 비치면 찌는 듯한 더위가 감하여지듯이, 이 삼매는 중생들의 탐욕과 번뇌의 더위를 덜어지게 하고, 보름달이 모든 별 중에 왕이듯이 선한 일 중의 왕으로 감로맛이 되어 모든 중생들의 즐거움이 된다.

여래는 이러한 월애삼매에서 법을 설하여 아사세와 같은 삼악도 중생을 제도한다. 중요한 것은 중생들이 악업에 빠져 있을 때 어떻게 부처님을 뵙고 불법을 익히게 하느냐의 문제이다. 모든 악업의 중생에게는 착한 벗과 같은 좋은 인연이 있어야 한다. 아사세왕의 경우, 기바라는 의사가 있어서 좋은 날 흉한 날을 가리지 않고 부처님 의원을 구하여 여래를 뵙고 불교에 귀의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운 인연을 짓게 되었다.

여래는 중생에 대하여 대자비로 가엾게 여김에 차별이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법을 닦으면 오역죄의 중생이나 삼악도의 중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아사세의 입장에서 보면 오역죄를 지은 주체인 자신과 그 대상으로서 아버지의 오온은 나는 모양, 머무는 모양, 없어지는 모양이 허망하여 그 성품이 머물지 아니하므로 볼 수도, 잡을 수도, 측량할 수도 없고, 속박할 수도 없다.

먼저 죄업 악업을 짓는 주체인 오온의 색온부터 관찰해 나아가면, 마음을 가다듬고 몸을 살피는데 20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나의 몸이 공한데 무루심(無漏心)이 없어서 어리석음에 차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선근의 근본이 없으니 선업 복업을 지음이 적다. 세 번째는 나의 생사는 아직 조복되지 못하여 생사고가 끊임이 없다. 네 번째는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가는 곳마다 두려움이 있으니, 진리에 무지하여 무외심(無畏心)이 없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는 어떤 방편으로도 불성을 보지 못하니, 불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섯 번째는 어떻게 선정을 닦아야 불성을 볼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일곱 번째는 생사가 늘 괴로워서 항상함〔常〕과 나〔我〕와 깨끗함〔淨〕이 없다, 여덟째는 팔난의 액난은 여의기 어렵다. 아홉째는 항상 원수가 따라다니는 괴로움이 있다. 열째는 한 가지 법도 유(有)의 생주이멸(生住異滅)을 막을 수 없다. 열한 번째는 삼악도의 고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열두 번째는 가지가지 나쁜 소견을 구족하여 정견을 가린다. 열세 번째는 오역죄의 나무를 건너갈 일을 마련하지 못하였다. 열네 번째는 나고 죽는 일이 끝이 없는데 그 끝을 얻지 못한다. 열다섯 번째는 업을 짓지 않고는 과보를 얻을 수 없다. 열여섯 번째는 내가 짓고 다른 이가 과보를 받을 수 없다. 열일곱 번째는 즐거운 인을 짓지 못하였으니 즐거운 과보가 없다. 열여덟 번째는 업을 지었으면 과보가 없어지지 않으니 미혹한 업으로 그 과보를 받는다. 열아홉 번째는 무명으로 인하여 나왔으니 무명으로 인하여 죽을 것이다. 스무 번째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항상 방일을 행함이다.

이러한 20가지 일을 관찰하지 못하면 갖가지 악업을 지어서 죽음의 두려움과 삼악도의 두려움이 따르게 된다. 따라서 바르게 관찰하여 오온의 색온으로부터 십이처 십팔계 온갖 법의 성품과 모습이 결정되어 있지도, 항상하지도 않음을 아니, 모든 악업과 오역죄도 실체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아사세왕은 탐욕에 눈이 어두워져 왕위를 찬탈하고 부왕을 죽게 한 오역죄를 지었다. 중생들이 이러한 악업을 짓는 것은 네 가지로 미치기 때문이라 한다. 첫째는 탐심으로 미치게 되니, 아사세왕과 같이 권력을 탐하여 부왕을 시해하거나, 욕탐으로 살생, 도둑질, 사음 등 오역·십악을 저지르게 된다. 둘째는 약으로 미치게 되니, 어떤 사람이 술·마약 등에 취하여 가족, 친지, 생명들을 해치고 깨어서는 후회하는 마음을 내는 등이다. 셋째는 주문으로 미치게 되니, 사람을 현혹하게 하는 일체의 사술(邪術)이다. 환술하는 사람이 네거리에서 여러 가지 환술로 갖가지 남·녀·코끼리·말·영락 의복을 만든다면 어리석은 사람은 참인줄 알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진실이 아닌 줄 안다. 넷째 본래 지은 업의 인연으로 미치게 하니, 원수 맺은 사람이 와서 친한 척하는 것을 어리석은 사람은 참인줄 알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거짓인줄 안다.

중생들이 미혹으로 짓는 악업의 갖가지 중죄 중에도 무겁고 가벼움이 있다. 마음과 입으로 지은 것은 가벼운 죄가 되고,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것은 무거운 죄업이 된다. 곧 어떤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고 말을 하였으나 몸으로 행하지 않았으면 그 받는 과보가 삼업으로 행하여 지은 것보다 가벼운 것이 된다고 한다.

이기운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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