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의 개들>이라는 영화를 보고 나니까 우리 절 노보살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지금 밖에 사람들이 많이 나다니는데 겉모양은 사람이지만 마음은 짐승인 사람이 많아. 이승에 사람 몸을 받아오긴 했지만 전생에 맹수였던 사람은 아직도 호랑이 마음을 갖고 있고, 돼지였던 이는 먹는 것만 욕심내게 돼 있지.”

노보살의 말에 따르면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전생과 이생에 연이어 사람이었던 사람은 지혜가 있지만 앞 생에 동물이었던 사람은 여전히 맹수의 잔인한 본성을 갖고 있거나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저수지의 개들>은 사람의 몸을 한 짐승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처녀작이자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작품 <저수지의 개들>(미국, 1992)의 첫 장면은 매우 신선했습니다. 남자들의 수다를 엿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것도 검은 정장을 입은 갱들의 수다.

“<라이크 어 버진>의 노래 내용은 밝히는 여자에 관한 거야.”
“노래 가사가 그런 뜻이라구?”
“아냐, 그 노래는 경험 많은 여자에 관한 노래라구. 함부로 몸을 굴리던 여자가 착한 남자를 만나지.”
“이거 웃기는군. <라이크 어 버진>은 그런 헤픈 여자나 남자 얘기가 아냐. <라이크 어 버진>은 남자의 물건에 대한 얘기고 그 노래는 늘 그 짓만 하는 놈들 얘기지.”

서로 이름도 모르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서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채 보스인 죠 케봇의 지시에 따라 보석 가게를 털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그들이 하는 짓은 끊임없이 농담을 하고 수다를 떨고 한 명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그리고 또 낄낄거리는 게 전부였습니다.

꽤 긴 시간을 할애한 이 수다신은 본 영화와는 상관이 없는 그런 장면으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디오 가게 점원을 하면서 동·서양의 온갖 영화를 섭렵하고 꽤 긴 시간 영화를 준비해온 타란티노 감독의 개성과 경험이 이 첫 장면에 녹아있다고 봅니다.

첫 장면과 같은 수다신은 갱들이 우리와 다름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일러주었습니다. 우리가 연예인 가십거리로 화제를 삼듯 그들도 마돈나 얘기를 하고, 성인이면 한 번쯤 경험했을 음담패설을 그들도 즐기는 것입니다. 또 팁 같은 작은 돈에 인색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걸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들의 사는 모습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인간으로서의 동질성을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저수지의 개들>의 사건 구성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먼저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실종됐고 또 한 명은 심하게 다치는 등 보석털이가 절반의 성공을 했다는 결론을 보여준 후 이 프로젝트에 구성원들이 가담하게 되는 경위를 보여줍니다.

거기에는 핑크나 블론드, 화이트처럼 이 분야에서 잔뼈가 굵어 자연스레 가담하게 된 멤버들도 있지만 미스터 오렌지처럼 치밀하게 작전을 세우고 피나는 노력을 통해 가담한 비밀경찰도 있습니다.

한 번 보면 다 꿰찰 만큼 단순한 구성이긴 하나 이 영화는 볼수록 새로운 느낌이 들게 하는 어떤 힘이 있는데, 그건 감독의 인간관이 장르 실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인간의 특성보다는 개의 특성을 갖고 있는데, 이는 감독이 인간 또한 개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갱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것처럼, 결국은 고상한 척 하는 우리 인간도 개와 마찬가지로 동물의 한 종이라는 시각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있다고 봅니다.

제목이 ‘저수지의 개들’인 것을 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사에서도 ‘짖는다’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블론드가 주로 이 표현을 많이 쓰는데 ‘개 눈에는 개만 보인다’고 영화에서 가장 ‘개’스러운 인물이 블론드입니다.

개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두드러집니다. 충성심이 동료 간에는 ‘의리’라는 말로도 쓰일 수가 있겠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충성심이 매우 강합니다. 그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중요한 특성은 아마도 의리일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개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인물은 미스터 블론드입니다. 그는 보석털이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인 죠 케봇의 아들 에디와 친구고, 그는 이들 부자를 위해서 지난 4년간 감방에서 썩어준 그런 인물입니다. 주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준 개에 관한 설화가 생각날 만큼 그의 보스와 친구 에디에 대한 의리는 각별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칭찬할 만한 의리를 지키는 인물이 인질로 잡혀온 경찰을 대하는 장면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음악에 맞춰 춤까지 춰가며 경찰의 귀를 자르더니 나중에는 석유를 부어 경찰을 태우려 했습니다.

그가 이런 행동을 하는데 특별한 목적은 없습니다. 경찰을 위협해서 뭔가를 알아내기 위함도 아니고, 경찰에게 복수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다만 상대의 공포를 보면서 자신의 강함을 확인하는 동물적인 본능이었습니다. 동정심이라고는 없고 연민도 없습니다.

그러나 미스터 블론드는 다른 사람들과 약간의 차별성을 보여줍니다. 그에게 가명인 ‘미스터 핑크’를 지어줬을 때 “왜 나는 화이트나 블루처럼 남자답고 멋진 이름이 아니라 여자애처럼 핑크라고 하느냐”고 불만을 토할 때 “너는 호모”이지 않느냐고 다른 인물과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려줍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내내 핑크는 다른 인물들에게 ‘자신처럼 프로페셜널’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감정보다는 목적을 중요시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돈 가방을 챙겨 나타났을 때 그는 화이트를 설득하려 합니다. 다른 사람이 다 죽었을 지도 모르고 이곳에 있다가는 경찰한테 죽을 지도 모르니까 차라리 여기서 우리끼리 빠져나가 돈을 우리 둘이 나눠 갖자는 그런 태도였습니다. 그러자 의리의 사나이 화이트는 오렌지에 대한 인간적인 도리를 내세우며 거절합니다.

핑크에게서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감정은 메마르고, 믿음도 없고 돈만 아는 그런 모습을. 주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던 물어뜯을 자세가 돼있는 개의 모습을 강하게 확인시켜준 블론드와는 확실히 대조적인 모습이지만 이 모습 또한 그다지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인간을 보여주고, 수다를 통해 재미를 유발하는 영화 <저수지의 개들>은 굉장히 독창적인 영화입니다. 기존의 영화가 이야기 중심의 일정 문법을 갖고 있는데 이 영화는 그런 관습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습니다. 시간성을 무시했으며 장르를 무시했고, 영화에 개인의 프로필을 보여주듯 신상 장면을 끼워 넣는 식으로 새로운 형식을 추구한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타란티노 감독은 이 영화 한 편을 통해 세계적인 감독이라는 명성을 얻었고, 열혈 마니아를 거느리게 됐고, 왕가위 감독처럼 독창적인 스타일리스트로서의 명성을 얻어냈습니다. 다음 작품인 <펄프 픽션>을 통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쾌거를 이뤄낸 감독의 정수가 숨어 있는 그런 영화이기도 합니다.

김은주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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