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의 해체에 따른 사회적 여파가 컸다. 최근엔 황선과 재미동포 신은미의 종북 강연 문제로 나라 안이
시끄러웠다. 신은미는 이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국외추방이라는 처벌을 받았다. 이번 종북 관련 문제에 대한 사회 일반의 반응은 대체로 차가웠다. 종북 사상은 알다시피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이념이다. 여론 조사가 말해주듯 진보라는 얼굴을 내밀고 종북 활동을 했던 정치인에 대해 염오를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정권 전복에 있었던 것인가. 분명 폭력성향의 급진적 과격파는 지금의 우리 문화의식에는 맞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유토피아적인 사회가 달성될 수 있다는 환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준 옛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실상 특정 이념을 ‘장사’해, 자신들만의 권력을 쟁취한 인간들로 판명나지 않았던가. 대부분의 독재국가는 관료부패가 만연했다. 나라는 피폐해진 왕조 시절의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부와 권력의 지나친 편중 현상. 결국 자타가 그 몰락을 지켜봐야 했다. 한데 북한은 아직도 소위 주체사상을 유일무이한 이데올로기로 이상화시키고 있다. 독재의 합리화를 위한 전략의 일환일 게다. 국민들 삶의 질은 아프리카 최빈국 수준. 하지만 종북주의자들은 한사코 북한의 인권문제나 실상에 대해서는 제대로 입을 열지 못하고 있다. 모든 사실을 제 신념/이념의 합리화에 꿰맞추고 있어서다. 확증 편향의 논리다. 인지 왜곡의 증상이다. 깊은 적대의식이 저변에 깔려있어서일 것이다.

언론에 노출된 황선과 신은미의 진술을 듣다 보면, 민주와 언론 자유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북한을 ‘미화’하는 측면이 강하게 풍겼다. 자신들은 통일로 가는 길을 여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말이야, 반질반질하게 닦여 있어 보여도 몹시 어설퍼 보인다. 우리의 시민 의식 수준을 깔보고 함부로 내뱉는 것만 같다. 잘 포장된, 준비된 말만 하는 것 같다. 가식에는 미숙과 천박성이 뒤따르게 돼있다. 나만의 소회가 아닐 거라 믿는다.

통일문제가 어찌 그들만의 화두인가. 모두의 화두다. 문제는 접근 방법에서의 차이일 것이다. 저들은 흔히 애국의 차원에서보다는 ‘민족’을 우선시한다. ‘민족의 가치’를 최전방에 두게 하여, 보편적인 다른 가치들을 무시하거나 희생시킨다는 맹점이 지적되어 왔다. 민족이나 자주의 이름으로, 여타의 소중한 가치를 복종시키는 태도가 문제다. 이에 동조가 안 되는 사람은 곧바로 적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정체성이 유보된 ‘순진한’ 청년들은 이런 ‘사이비 정체성’에 매료될 여지가 크다. 어느 새 조직에 몸을 담으면서 이념은 신념화가 되기 십상이다. 사이비 종교가 그렇듯 통과의례에서는 조직의 엄숙한 의미부여가 따른다. 조직의 배신에는 치명적 후유증이 따른다는 암시도 있을 것이다. 각자는 언젠가 조국의 영웅적인 존재로 각인될 수 있으리란 자부심도 주어졌으리라.

종북주의자들의 행동 매뉴얼이 대략 짐작 간다. 나름의 사업 목적 달성을 위해 옛 모택동 주의자들이 한 수법과 유사하지 싶다. 기만전술, 허위, 흰 거짓말이나 우회적 진술, 대중 선전/선동에 의한 집단 ‘히스테리 유발’, 가해자-희생자 구도 만들기. 물 타기 혹은 매카시즘으로 몰아세우기, 민주/애국적인 투사로 내세우기, 선-악의 구도나 네 편이냐/내 편이냐로 선명하게 집단을 구분하기,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겠다는 차별화 심리, 외연의 확대를 통한 위치성의 공고화, 내부로는 점조직으로 단속을 하고, 비밀주의에 기반을 둔 연대 의식, 작은 문제를 과대한 관심으로 유도하거나 과장된 언어로 포장하기 등의 전술들이다. 이런 전술들은 낯설지가 않다. 이들만의 것이 아니 어서다. 어느 나라 이류, 삼류 정치인들도 흔히 애용하는 낮은 수준의 전술들이다.

하루 속히 이런 틀에서 우리 모두 벗어나야 한다. 악취 나는 그 자아도취 현상에서 말이다. 도시 정직이라든가, 순수함 같은 것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우리 정치 사회 풍토다. 자신을 속이는 버릇도 일종의 중독 증상이다. 우리 각자가 먼저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에 대한 각성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시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