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초심호계원이 지난 15일 선학원 총무이사 송운스님 교무이사 정덕스님 이사 한북스님에 대해 멸빈의 징계를 결정했다. 지난 해 이사장 법진스님의 멸빈 심판결정에 이어 두 번째로 이루어진 징계조치다. 초심호계원은 법진스님 멸빈결정 때와 마찬가지로 “도당을 형성해 종단의 법통을 문란하게 하고 탈종을 기도했다”는 호법부의 제소를 그대로 인용해 심판했다.

우리는 이러한 호계원의 심판행위가 종단권력의 눈치를 보고 행해진 무소신의 결과라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먼저 호계원은 징계에 회부된 선학원 이사들에 대한 심판이 적절하고 적법한 것인지 따졌어야 옳다. 주지하다시피 선학원 임원진은 지난 해 6월 30일 총무원을 직접 방문해 제적원을 제출했다. 당시 총무부 실무자는 이를 확인하는 접수증까지 교부했다. 제적원을 제출한 데 따라 총무원은 관련법규에 의거 이를 처리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 하지만 제적원을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종단에서는 선별적으로, 그리고 순차적으로 선학원 임원에 대한 징계절차에 들어갔다.

이는 학교를 그만 다니겠다며 자퇴서를 냈는데 관련규정을 무시한 채 퇴학 처분하는 행위와 똑같다. 말하자면 횡포요 무법이며 화풀이다. 이러한 권력의 감정적 처사를 바로 잡고 법대로 처리하는 곳이 사법부다. 종단으로 보면 호계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호계원은 종단 권력이 이런 방법과 절차를 밟는 것에 대해 엄중한 제동을 걸어야 했다. 나아가 법에 입각해 옳고 그름을 가렸어야 했다. 이것이 종헌종법의 질서를 바로 잡는 기본자세다.

종헌종법이 존중되지 않으면 종단을 이끌어 가기란 난망하다. 조계종의 역사는 종헌종법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종헌종법은 그래서 종단의 표징(標徵)이며 종단을 지켜주는 울타리다. 종헌종법이 존숭될 때 종단의 안정과 발전이 도모되며 반대로 종헌종법이 위해될 때 종단은 위기와 시련에 직면하게 된다. 종단의 역사가 말해주듯 종헌종법이 바르게 서야 갈등과 시비가 줄어든다. 따라서 종헌종법의 운용은 종단의 지도력과 긴밀한 함수를 갖는다.

이번 선학원 이사들에 대한 멸빈 심판은 호계원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매우 중요한 사건에 다름 아니다. 호계원이 종단 권력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증거는 같은 날 같은 심판부에서 총무원장 자승스님의 상좌들에 대한 심판 결정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초심호계원은 이날 음주 교통사고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총무원장 자승스님의 상좌 탄탄 · 탄원스님에 대해 공권정지 1년의 경징계를 내렸다. 전날 자승스님이 신년기자회견에서 “승풍실추와 범계는 엄중히 처벌하고 있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판결이었다.

물론 우리는 호계원의 구성 자체가 권력의 틀에서 짜여지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권력의 시중과 조종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다. 현재 종단은 비록 3권분립 체제라고 하지만 사법부에 해당하는 호계위원의 선출을 입법부인 중앙종회에서 하고 있는 구조적인 모순점을 안고 있다. 더욱이 중앙종회도 권력자의 의중에 따라 ‘아바타’역을 거부하지 않는다. 권력의 향유를 이렇게 누리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권력에 의해 분배되는 호계위원이다 보니 전문성과는 상관이 없다. 호계원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호계위원이 태반이고 종헌종법에 무지한 법규위원이 다수를 구성하고 있다. 이것이 조계종단 사법부의 현주소다.

이번 선학원 이사 심판결정을 앞두고 초심호계원이 최소한의 역할과 소신을 보여주길 기대했으나 결과는 역시였다. 그만큼 실망이 컸다는 얘기다. 호계원마저 이렇게 권력의 구조 안에 갇혀 있다면 종헌종법의 소중한 가치가 훼손될 것은 뻔한 이치다. 새로운 각성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