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개혁종단이 들어서기 전 해인 1993년 10월에 있었던 일이다. 충남 부여읍내 포교당에 목검 등 무기를 든 일당들이 들이닥쳤다. 목격자들 가운데는 진짜 사람을 베는 칼도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만큼 포교당에 불시에 들이닥친 그들은 위협적이었다. 포교당은 부여읍내 시장 중심에 위치했다.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포교당으로 쏠린 것은 당연하다. 무기를 든 일당들을 보노라니 모두 삭발염의한 스님들이다. 외양은 스님들이 분명한데 하는 행태는 저잣거리 폭력배, 일명 ‘깍두기’에 가까웠다. 그들은 이날 주지 교체에 따른 포교당 인수인계를 위해 나타났다. 시장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대한불교조계종의 한 조그만 시골읍내 포교당에서 살벌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주지 인수인계 과정을 지켜보며 혀를 차야만 했다.

 물리적 충돌 등 불상사
 정략인사가 빚는 폐단

총무원장 의현스님 시절 주지 인수인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물론 모두 이렇지는 않았다. 특수한 예다. 특수한 예란 다름 아닌 정략적 인사다. 정략적으로 이루어진 주지 인사는 이렇게 인수인계 과정에서 살벌하고 위협적이며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그렇다면 개혁종단이 들어서고 20년이 지난 오늘은 주지 인사에 있어서 정략이 없어졌는가? 정략인사가 없으므로 이러한 무력행사도 사라졌을까? 다 차치하고 지난 해의 경우에만 국한해 되짚어보자.

먼저 부산 성주사 건. 7월9일 총무원장 자승스님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무관스님은 15일 성주사 진입을 시도하지만 200여 신도들에 의해 제지당한다. 신도들은 무관스님이 총무부장에게 총무원 공양비로 1천만 원을 준 것을 비롯해 본사 범어사와 총무원의 공감 못 할 인사를 문제 삼았다.

용주사 말사 수원사도 9월에 주지 인사로 홍역을 치렀다. 본사 주지 선거에 나선 수원사 주지 성관스님이 떨어지자 후임에 호법부장 세영스님을 임명한 것. 그러자 신도회는 “수원사 1만 신도는 인천의 사표로 지난 30여 년 동안 이끌어온 성관 스님께서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하루아침에 해임된 사실을 접하며 비통함과 분노심을 감출 수 없다”며 “지역사회와 국제사회로부터 신망과 존경을 받아 온 스님을 그 어떤 협의나 절차도 없이 하루아침에 천박한 방식으로 내쫓으려고 하는 것이 ‘자비 문중, 자비종단’이라고 일컫는 조계종의 방식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두 사찰 주지 인사의 공통점은 정략인사라는 점이다. 물론 정략이 부정적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승의 이익을 위한 긍정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정략은 누구나 환영하고 공감한다. 그러나 법과 원칙과 상식을 저버리는 정략적 계산에서 행해지는 인사는 언제든 대중의 저항을 받게 마련이다. 실제로 정략인사로 인해 포교와 복지 분야에서 커다란 후퇴를 불러온 예들이 적지 않다.

주지 인사와 관련해 규정대로 하자는 목소리가 그래서 높아지고 있다. 현행 <본말사주지인사규정>에 따르면 종무행정, 포교, 복지, 재정, 불사를 인사평가에 있어서 5대 주요항목으로 삼고 있다. 동규정 제7조는 ‘품신특례’를 명시하고 있는데 “갑의 인사고과를 받은 공찰주지를 우선으로 품신하여야 한다”고 했다. 인사고과는 ‘갑’‘을’‘병’‘정’‘무’ 5단계로 구분하고 있으며 앞의 5대 주요항목이 인사고과의 대상이다, (동규정 제7조의 2)

이 규정은 종무행정, 포교, 복지, 재정, 불사에 각별히 기여하고 성과를 내도록 하려는 종단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규정은 딱 여기까지다. 말사주지 품신절차에 있어서는 이러한 인사고과가 제출서류에서 빠져있다. 정략인사는 이미 본말사주지인사규정에서 허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 폐해는 고스란히 우리 불교의 몫으로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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