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품은 악행을 일어나게 하는 인연과 악행을 멸하게 하는 인연을, 젊은 시절 부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아사세왕을 통하여 밝히고 있다. 먼저 악행을 일으키는 인연으로는 악행이 일어나게 하는 원인과 악행을 일어나게 도와주는 사연(事緣)이 있음을 말한다. 다음으로 그 악행을 멸하는 인연으로는 악행을 멸하는 원인과 악행을 멸하게 하는 사연이 있음을 밝힌다. 이와 같이 악행의 원인과 악업을 멸하는 청정행을 밝히고 있어 <범행품(梵行品)>이라 한다.

인도의 역사적인 인물로 훗날 호불왕이었던 아사세왕은 젊은 시절 제바달다와 가까이 지내면서 부왕 빔비사라왕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하고 마침내 살해하는 악행을 저지른다. 제바달다는 부처님께 위해를 가하고 교단을 파괴하는 오역죄(五逆罪)를 저질러서 당대에도 악인의 상징으로 여기는데, 아사세가 이 인물과 친구로 사귀면서 부왕을 살해하는 악행(惡行)을 저지른 것이다.

여기서 악행이 일어나는 인연에는 사람마다 악업을 일으키게 하는 원인이 있고, 이 원인을 도와서 일어나게 해 주는 사연이 있다. 악행을 일어나게 하는 1차적 원인이란 자신의 마음자세이다. 그 사람의 성질이 모질어서 살육을 좋아하면 악한 신업을 짓고, 입으로 네 가지 악한 구업을 행하며,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내는 악한 의업을 내기 때문에 이러한 십악(十惡)의 마음이 치성하여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악심을 더욱 도와주는 사연이란 현세의 오욕락을 탐하여 나쁜 사람들을 권속으로 삼기 때문에 먼 미래의 과보를 보지 못하여 악행을 일삼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모든 악행은 그 사람이 지금까지 업행에 의해 형성된 스스로의 마음 곧 성격이 가장 중요하며, 다음으로는 주위 환경요인으로 선인을 멀리하고 악인을 가까이 하여 오욕락을 취하므로 악업이 더욱 치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사세도 왕자시절 성질이 모질고 살육을 좋아하였는데 제바달다와 같은 악인들을 권속으로 하였기 때문에 왕위를 찬탈하고 부왕을 살해하는 패륜을 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사세왕은 후에 이러한 악행을 뉘우치고 몸에는 영락과 같은 사치품을 벗어놓았으며 풍류를 가까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악행을 뉘우치는 열기로 온몸에 독창이 생겨 냄새가 진동하였으니 스스로 지옥의 과보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였다. 그때 어머니 위제희 부인이 갖가지 약을 구하여 발라주었지만 독창이 더욱 성하여 차도가 없었다.

이러한 아사세의 악행을 멸하는 방법에 대해서 《열반경》에서는 악행을 멸하는 원인과 사연을 설하고 있다. 먼저 악행을 멸하는 1차적 원인이란 첫째 자신의 악업에 대한 진실하고 깊은 마음으로부터 후회이고, 둘째는 악행을 저지르면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는 깊은 인과에 대한 신심(信心)이며, 셋째는 치유(료)의 약이 필요하고, 넷째는 스스로 깊이 악행을 비루하다고 아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 생기면 악행을 멸하는 사연으로 오덕(五德)을 닦아서 청정히 하게 된다.

오덕이란 악행을 다스리는 다섯 가지 덕목이다. 첫째는 선인(善人)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 해야 하고, 둘째 악행을 참괴해야 하며, 셋째 악행을 참회해야 하고, 넷째 악행을 숨기지 말고 드러내어 밝혀야 하며, 다섯째 그 과보에 대한 깊은 신심이 있어야 한다.

첫째로 선지식을 가까이 하라는 것은 주위에 나의 잘잘못을 지적해 주고 인도해 줄 선인 선지식이 있어야 악행을 짓지 않고 악행을 바로잡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열반경》에서는 아사세도 기바라는 선지식을 만나서 붓다를 알게 되고 결국 불교에 귀의하여 선정을 베푸는 호불왕이 된다.

둘째, 악행을 저질렀으면 참괴심(慚愧心)을 내라는 것이다. 스스로 악행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참(慚)이라 하고,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괴(愧)라 한다. 스스로 악행을 부끄러워하는 이는 더 이상 스스로 죄를 짓지 않고,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이는 다른 사람을 시켜 죄를 짓지 않는다. 참괴가 없는 이는 짐승이라 하며, 참괴가 있으므로 부모와 스승과 윗사람을 공경하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 참회(懺悔)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지혜로운 이는 두 가지가 있으니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자와 악행을 지은 뒤에 참회하는 자이다. 또한 어리석을 자도 둘이 있으니 죄를 짓는 자이고 저지르고 감추는 자이다. 비록 나쁜 짓을 행하였지만 바로 드러내어 참회하면 부끄러워서 다시 짓지 않게 된다. 마치 흐린 물에 맑은 구슬을 넣으면 구슬의 위력으로 물이 곧 맑아지는 것과 같고, 구름이 걷히면 달이 청명해지는 것과 같다고 한다.

넷째, 악행을 지었으면 반드시 드러내어 밝히라는 것〔發露〕이다. 악행이 더욱 치성하여 큰 악업이 되고 큰 악인이 되는 것은 작은 악업을 드러내어 참회하지 않고 자꾸 덮어 감추려 하기 때문이다. 악업을 행하고 덮어 감추는 것은 새어나가게 마련이고, 감추지 않고 드러내면 새어나가지 않으니 털어놓고 허물을 참회하므로 새지 않게 된다. 여러 가지 죄를 지었더라도 덮어 두지 말고 감추지 말아야 하니 만약 덮어두면 죄가 점점 더하게 되고, 덮어두지 않으면 죄가 경미해지며, 부끄러운 생각을 품으면 죄가 소멸하기 때문이다. 경에서는 악행을 숨기지 말고 드러내어 참회하는 것이야말로 선(善)을 닦는 마음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악행을 드러내는 한 가지 선이야말로 백 가지 악을 깨뜨리게 된다. 비록 물방울이 작으나 점점 모이면 큰 그릇을 채우게 되고, 작은 불이 능히 온갖 것을 태우며, 적은 독약이 능히 중생을 해롭게 하는 것과 같다. 발로 참회의 작은 선일지라도 능히 큰 악을 파하게 된다.

다섯째, 신심(信心)을 내라는 것이다. 악행은 반드시 괴로움의 과를 초래하고, 그 보(報) 받음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악행을 멸할 수 있다고 한다.

만약 이러한 오덕이 없으면 악행의 중죄를 짓게 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여러 가지 죄를 짓고는 덮어두고 참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는 마음도 없으며, 인과와 업보를 보지 못하면서 지혜 있는 사람에게 묻지도 않고 선지식을 가까이 하지도 않는다면, 이런 사람의 병은 아무리 훌륭한 의원이나 병구완을 잘 하는 사람이라도 다스릴 수 없다고 한다.

이기운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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