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59(2015)년 을미년(乙未年) 새 아침이 밝았다. 해가 바뀌면 누구나 새로운 변화를 꿈꾸게 마련이다. 지난 해의 실패를 거울삼아 도약과 성공으로 나아가기 위해 각오를 새롭게 다진다. 이때의 각오와 다짐을 흩뜨리지 않고 정진하는 이는 성공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스스로의 약속을 거둬들인 사람은 결국 좌절하고 만다. 처음엔 거창했으나 끝이 부질없으니 이를 일러 용두사미(龍頭蛇尾)라 하고 결심은 했으나 부질없이 3일도 못넘기고 마니 이것이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다.

《화엄경》에선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變正覺)이라 했다. 처음 그 마음이 곧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처음 발원(發願)하고 다짐했던 초심(初心)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이 용두사미로 끝나고 작심삼일로 낙담하는 게 태반이다.

지난 해 불교계도 이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등 주요종단들도 연초엔 이런 저런 굵직굵직한 사업을 제시하고 큰 성과를 낼 것처럼 목소리를 냈지만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점차 탄력성을 잃는 모습이었다.

특히 조계종의 경우엔 승가청규(僧伽淸規)를 제정하고 승려법을 개정해 범계행위(犯戒行爲)를 엄격히 다스리겠다고 공언했지만 오히려 음주 등 각종 범계로 국민적 망신을 자초했다. 특히 어설픈 입법행태는 종단의 분란을 야기했다. 종헌위배사항과 입법미비 등의 요소가 곳곳에서 지적되고 있음에도 <법인관리 및 지원에 관한 법>의 제정을 강행해 결국 깊은 상처와 골을 만들고 말았다. 태고종도 마찬가지였다. 각계인사로 구성된 태고종 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으나 내부 권력다툼 때문에 두 개의 총무원이 들어서는 등 대립과 갈등으로 해를 넘겼다.

비록 해는 바뀌었으나 현재 우리사회는 경제적 침체와 다변화하고 있는 한중일 관계 및 국제정세에 따라 걱정이 높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때 국민의 의지가 되어야 할 종교계마저 내분과 각종 범계로 국민을 실망시키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따라서 한국불교계가 가야 할 올해의 목표를 분명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구두선(口頭禪)으로 그칠 허황된 내용이 아니라 국민에게 의지가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는 각종 사업들을 책임 있게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는 다른 조직 및 단체와 달리 보다 엄격한 도덕성과 진실성이 요구된다. 불교에서의 출가승려는 이러한 도덕성과 진실성을 바탕으로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수행하는 공동체다. 그러기 때문에 국민이 존경하고 신뢰한다. 하지만 세속보다 못한 탐욕과 다툼으로 수행자의 위의를 스스로 무너뜨린다면 불교의 존립 자체도 위험할 수밖에 없다.

《잡아함경》48권 ‘명칭경(名稱經)’에서는 “명예를 얻고자 한다면 계율을 지키라. 재물을 얻고자 한다면 보시를 행하라. 덕망이 높아지고자 한다면 진실한 삶을 살고, 좋은 벗을 얻고자 한다면 먼저 은혜를 베풀라. 그러면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불교 지도자들은 이러한 가르침을 가슴 깊숙이 새겨들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소속 종단과 단체들의 새해 설계를 다듬어야 할 것이다.

본지는 올해의 슬로건을 ‘화해와 나눔’으로 정했다. 화해는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는 일이다. 나눔은 우리 국민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자양분이다. 화해와 나눔 없이는 사회의 정신적 근간이 위협받을 수 있다. 자신의 명예와 권력만을 좇게 되면 화해란 성립될 수 없고 물질적 탐착에 빠지면 나눔이란 무색해지고 만다. 이러한 가르침을 누구보다 앞장 서 실천해야 할 곳이 다름 아닌 불교계다.

대망(大望)의 새해가 시작됐다. 힘찬 발걸음이 무뎌져선 곤란하다. 신년설계가 여법히 회향될 수 있도록 초심을 굳건히 유지하며 국민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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