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58(2014)년 갑오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올해도 역시 다사다단(多事多端)이란 말이 실감날 정도로 슬프고 분노할 일이 많았다. 대한불교조계종을 비롯해 교계의 주요종단과 단체들은 희망을 내세운 힘찬 기운으로 새해를 시작했지만 벽두부터 암운(暗雲)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가장 역설적 상황에 빠진 것은 조계종이다. ‘자비와 화쟁으로 이웃과 함께 하겠다’는 캐치프레이즈로 새해 문을 연 조계종은 승가청규를 제정하고 승려법을 개정해 범계행위를 엄격히 관리하겠다고도 선언했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졸속 제정한 <법인관리 및 지원에 관한 법>에 묶여 선학원과의 극한 대립을 야기했다. 임원진 전원이 제적원을 제출하자 곧바로 호법부가 등원통지서를 발송하는 등 비상식적인 처사로 갈등을 키웠다. 이러한 조계종단의 ‘몽니’는 결국 종단의 큰 어른인 법보선원 이사장 송담스님의 탈종까지 부르게 되었다.

범계행위를 엄격 관리하겠다는 당초의 목소리도 무색해지고 말았다. 종단 권력승과 가까운 이들에겐 바라이죄가 들통나도 문서견책이라는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했다. 이러한 와중에 자승 총무원장의 두 상좌가 음주운전에 적발돼 사회적 물의와 망신을 자초하는 일이 벌어졌다.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에서는 자승 총무원장 퇴진을 위한 헌정방송을 진행하는 극히 이례적인 상황까지 전개됐다.

사정은 태고종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태고종 역시 투명한 종무행정 확립 등 8대 핵심기조를 발표하면서 새해를 시작했으나 종단 속 깊은 갈등은 8월에 드러났다. 원로회의가 종정의 재가를 받았다며 총무원장·종회의장·호법원장의 동시퇴진을 촉구하고 나섰다. 10월 7일 개원된 중앙종회에서는 도산 총무원장의 불신임 결의안이 통과됐다. 그러자 도산 총무원장은 비상대책위원회가 내세운 총무원장 권한대행 종연스님을 상대로 ‘부존재 확인소송’을 제기하는 등 태고종의 내홍은 내년으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천태종도 신년 초기 예기치 않은 아픔을 겪었다. 도정 총무원장이 토지명의신탁 매입 의혹으로 검찰에 고발되자 3월 12일 전격 총무원장 직을 사퇴하게 된 것이다.
진도 앞바다에서 있었던 세월호의 침몰사건은 전국민을 충격과 비탄에 빠뜨렸다. 무엇보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에 나섰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최대 희생자로 확인되면서 기성세대의 탐욕이 비판받는가 하면 눈뜨고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무력감에 절망했다. 때마침 치러야 했던 봉축행사에 처음으로 영가등(靈駕燈)과 만장이 등장했다. 국민의 분노와 상처를 보듬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은 조계사 봉축법요식을 비롯해 카톨릭과 개신교의 기도행사에 참석했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작용한다는 게 불교의 가르침이다. 불교계 3대 종단의 비운은 공통적으로 보자면 정도(正道)를 지키지 않는 지도부의 처신에 원인이 있다. 세월호 침몰도 유병언 일가의 몰락이 말해주듯 정도를 벗어난 지나친 탐욕이 부른 참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잘못은 드러내지 않고 ‘남탓’만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법구경》에 이르길 “남의 허물은 보기 쉬워도 자기 허물은 보기 어렵다. 남의 허물은 겨처럼 까불어 흩어버리면서 자기 허물은 투전꾼이 나쁜 패를 감추듯 한다”고 했다. 불교계에서 올해 벌어진 모든 대립상황은 이 가르침을 따르지 않은 데 기인한 것이다. <법인관리법>에 따른 조계종단의 갈등상황, 태고종의 내홍, 비구니계의 대립,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분란 등이 모두 그렇다. 문제의 해법은 나를 성찰하고 점검하는 데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나에겐 아무 문제 없고 상대방만의 탓을 들어 겁박하고 굴복시키려 하므로 갈등이 커지고 분규로 비화되는 것이다. 올해의 다사다단을 거울삼아 내년엔 함께 웃고 모두 기뻐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만들어냈으면 한다. 이것이 부처님을 웃게 만들 수 있는 불자들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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