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미국, 2014)처럼 진지하고 성실하게 삶에 대해 탐구한 영화도 드물 것입니다. <보이후드>는 정공법으로 삶의 의미를 탐색했습니다. 소년이 청년으로 자라는데 걸리는 시간, 12년이란 시간을 투자해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끈기 있게 찾았습니다.

<보이후드>는 삶을 관찰한 후 ‘삶의 가장 큰 특징은 변화이다. 소년이 청년으로 자라면서 그 모습이 계속 변해가는 것처럼 마음이나 관심도 끊임없이 변해가고, 또 상황도 언제나 좋기만 한 것도 아니고, 주식 사이클처럼 등락을 반복하면서 변해가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매 순간 기존의 세포가 죽어가고 새로운 세포가 생겨나는 것처럼 고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변화의 흐름에 우리 존재가 던져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는데, 이는 ‘제행무상(諸行無常)’과 닮았습니다.

‘우주 만물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아니하다’는 뜻의 ‘제행무상’은 불교의 가장 중요한 진리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제행무상’과 상반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삶이 고통스럽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이지요. 그런데 ‘제행무상’을 수용해서 ‘삶에서 고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변화는 존재의 숙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집착을 벗어나게 되고, 고통도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부처님께서 제시한 쉬운 삶의 방법입니다.

영화에서는 ‘자각’이라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세상살이가 한 바탕 꿈에 지나지 않지만 꿈속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꿈을 꾸는 자가 누구인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순간 자신을 찾게 되고 그러면서 변화라는 흐름에 무작정 떠밀려 가다가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되고, 아주 짧은 순간이긴 하지만 존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 말미에 주인공 메이슨은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순간을 붙잡으라는 말이 있잖아.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해. 순간이 우리를 붙잡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시간은 영원하잖아. 늘 지금이 순간이 되는 거지.”

영화 <보이후드>에서 말한, 순간을 사는 것은,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자각’일 것입니다. 중국선종의 2대 조사인 혜가스님이 달마스님을 찾아뵙고 마음이 불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달마스님께서는 불안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 한 번 찾아서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불안’이라는 것도 결국은 망상이고, 망상은 불성을 자각할 때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불교에서는 이런 원리를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자각하는 행위 자체가 불성인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보이후드>에서 말한 ‘순간을 붙잡는다’는 말은 결국 순간을 체험한다는 말이고, 이 의식 자체가 불성이고, 존재인 것입니다.

2014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올해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로 화제에 올랐던 <보이후드>는 정성이 많이 들어간 영화입니다. <보이후드>는 6살짜리 소년이 청년이 되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닌 극영화지만 메이슨 역을 맡았던 엘라 콜트레인이라는 배우가 아이였을 때부터 청년이 될 때까지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제작진은 2002년부터 2013년까지 해마다 늦여름 즈음 만나 영화의 15분 분량을 촬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아이에서 청년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깁니다.

<보이후드>는 메이슨의 소년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메이슨의 소년시기가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이혼한 가정에서 엄마와 함께, 때론 의붓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가끔 생부를 만나면서 성장해 가는데, 미국의 흔한 가정풍경입니다. 의붓아버지들에게서 약간의 위협을 받긴 하지만 특별한 사건은 없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사는 한 소년의 12년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앨범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메이슨과 부모님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메이슨은 싱글맘인 엄마와 매사 자신감 넘치는 누나와 함께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엄마와 이혼한 후 알래스카로 떠났기 때문에 한동안 못 봤습니다. 아버지가 부재한 삶이었지만 평화로운 삶을 살았는데 어느 날 엄마는 정든 집을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외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가서 대학을 다니고 더 좋은 직장을 얻고자 했습니다. 친구를 떠나는 것도, 마음을 주었던 마을을 떠나는 것도, 추억이 깃든 집을 떠나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깊은 상실감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가야 할 현실에 부딪친 엄마는 아이들의 상실감 같은 것은 돌아볼 틈이 없었습니다.

고향을 떠난 슬픔과 외로움도 곧 잊혀졌습니다. 엄마는 대학을 다니다가 교수와 재혼을 했고, 아이들은 그 전에 살았던 집보다 훨씬 크고 수영장도 있는 집에서 또래 아이들과 함께 살게 됐습니다. 엄마와 재혼한 교수에게도 메이슨과 누나 또래의 아이들이 있어서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맘때쯤 알래스카에서 아버지가 오셔서 매주 한 번씩 남매를 찾아왔고, 남매는 아버지와 함께 야구장도 가고 캠핑도 가고 쇼핑도 하면서 나름 행복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삶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의붓아버지의 술주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술에 취한 의붓아버지는 엄마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메이슨 남매를 괴롭혔습니다. 참다못한 엄마는 어느 날 남매를 데리고 의붓아버지 집을 나왔습니다. 의붓형제들과 헤어질 때 남매는 고향을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깊은 상실감을 경험했습니다.

또 다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고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전학 간 첫 날 메이슨은 낯선 학교에서 약간 체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정든 곳을 떠나 낯선 곳에 던져지고, 이런 일상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인 아이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에도 말을 걸어주는 친절한 애들은 있기 마련이고, 곧 마음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정이 들 만하면 엄마는 어김없이 다른 곳으로 터전을 옮겨갔습니다. 그래서 메이슨의 소년시절은 온통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감과 정든 것을 떠날 때의 상실감을 경험하면서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이런 부침을 겪으면서 메이슨 남매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습니다. 누나는 머리를 빨갛게 물들인 채 반항기를 보이다가 어느 순간 차분해지더니 대학으로 떠났고, 메이슨은 다소 음울한 소년으로 자라났습니다. 사진에 취미를 가진 메이슨 또한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등 사춘기의 일탈을 하기도 했지만 별 탈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마침내 대학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부모도 변화해갔습니다. 싱글맘이었던 엄마는 두 번의 재혼을 실패한 후 다시 혼자가 됐습니다. 가정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엄마는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습니다. 엄마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강사가 됐다가, 마침내 그렇게 고대하던 교수가 됐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메이슨이 대학으로 떠나기 위해 짐을 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내 삶을 위해서 공부를 하고, 그래서 교수가 되고 치열하게 살면서 너희를 키우고 대학을 보내고, 그리고… 그리고 또 무언가가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이제는… 내 장례식만 기다려야 하는 거야?”

잠시도 멈추지 않고 앞만 보면서 달려왔는데 엄마가 마주친 것은 텅 빈 공허였습니다. 안정과 행복을 기대하면서 달려왔는데 그녀에게 남은 것은 외로움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떠난 집에 홀로 남아 외롭게 늙어갈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아이들이 엄마의 야망 때문에 무수하게 경험했던 상실감을 비로소 맛보게 된 것입니다. 순간을 살지 않고 시간에 떠밀려온 삶의 결과입니다.

그녀는 잘못 살아왔던 것입니다. 영화에서 보면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삶에서 중요한 건 균형이라고 가르칩니다. 영화에서 엄마가 보여주었던 책임감이나 성실성 같은 덕목과 함께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자유나 기쁨과 같은 것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면서 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책임감과 성실성에 너무 치우친 삶을 살았고, 이제야 후회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보이후드>는 앨범 속 사진을 구경하는 것처럼 메이슨의 가정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렇다면 감독은 왜 이런 영화를 찍으려고 했을까요?

영화에서 인생이란 흐르는 강물처럼 그냥 지나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봄이 오면 새순이 돋아나고, 여름엔 녹음이 우거졌다가 가을이 되면 낙엽이 떨어지고, 겨울엔 차가운 눈을 뒤집어쓴 앙상한 나뭇가지를 만나게 되는 것처럼 삶을 변화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고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안정됐는가 하면 곧 이별과 상실감을 맛봐야 하고, 사랑의 설렘에 이어 혐오와 증오가 따라오고, 행복이 왔는가 싶으면 곧 엄청난 불행이 파도처럼 덮쳐오고, 이런 상반된 것들이 끊임없이 밀물과 썰물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채웠습니다.

어느 한 쪽에 집착해서도 안 되고, 너무 절망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나무가 묵묵하게 계절의 변화를 견뎌 내거나 즐기듯 우리 삶도 그런 태도가 필요하다는 걸 영화는 보여주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인생이란 그저 변화의 연속이고, 우린 힘을 뺀 채 그저 그 변화에 몸을 맡기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 김은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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