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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문명, 지배와 예속의 변증법
누가 인류의 자산을 지배자의 선물로 바꿨나?
2014년 12월 03일 (수) 10:07:43 김문갑 meastree@naver.com

1. 프로메테우스와 삼황오제(三皇五帝)

   
▲ 귀스타브 모로,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죄로 코카서스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는다. 프랑스 상징주의 화가 귀스타브 모로는 형벌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보다는 신 중의 신 제우스에게 맞서는 강인한 투사로 프로메테우스를 그렸다. 그의 눈은 열정으로 빛나며 그의 몸은 지극히 당당하다.

나는 불의 원천을 찾아냈고
회향풀 가지에 숨겨진 불을 훔쳐
불쌍한 인간들에게 주었어.
불은 그 자체로
모든 기술을 가르쳐 주는 선생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훌륭한 수단이지.1)

모든 기술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 불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의 지배자로 우뚝 서게 만들 것이다. 이런 사실을 프로메테우스는 “먼저 아는 자”답게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연의 지배자가 둘일 수는 없는 법. 어쩜 그런 이유로 최고의 신 제우스의 분노를 산 것인지도 모르겠다.

당신만이 피울 수 있는 불의 꽃
문명을 여는 섬광(閃光).2)

인간은 불을 다룰 수 있게 됨으로써 단순한 자연물에서 문명인으로 도약하게 된다. 불은 문명시대를 여는 만능키, 최고의 선물이었다. 프로메테우스의 선물은 불만이 아니었다. 그는 인간에게 직립보행과, 집 짓는 법과 문자, 그리고 산수를 가르쳐 주었다. 프로메테우스야말로 인류의 문명시대를 열어준 가장 고마운 신이다.

그런대 하수상하다. 불이니 건축술이니 수학 등등이 어쩌다 신의 선물이 되었을까? 따지고 보면 인류가 조금씩 깨닫고 익혀가면서 인류의 커다란 자산이 된 것 아닌가? 그런대 왜? 누가 언제부터 인류의 성과를 신의 선물로 바꾸었을까?

하수상한 거야 어찌 프로메테우스뿐이겠는가? 예수는 어째서 인류를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나? 우리가 언제 우리 죄를 대신 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나? 죄는 인간이 짓고 징벌은 신이 받는 것도 꽤나 하수상하다. 그러고 보니 이 귀스타브 모로의 〈프로메테우스〉는 어지간히 예수를 닮았다. 유럽화한 백인 예수 말이다.

서양인들은 어지간히 그것이 인류의 성과물이든, 죄악이든 신에게 돌리길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동양은 조금 다르다.

   
▲ 투르판의 고분에서 발견된 〈복희여와도(伏羲女媧圖)〉. 복희와 여와의 하반신이 뱀으로 그려져 있다.
옛날 복희(伏羲)씨가 왕이었을 때 매듭을 맺고 그물을 만들어 사냥을 하고 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해주었다. 복희씨가 죽고 신농(神農)씨가 왕좌를 이어서는 나무를 쪼개고 휘어 보습과 쟁기를 만들어 천하에 보급시켰다. 하루 종일 시장이 열리고 천하의 백성들은 온갖 재화를 갖고 와 교역할 수 있었다. 황제(黃帝)와 요ㆍ순(堯舜)은 나무를 파고 깍아 배와 노를 만들고……소와 말을 길들여 무거운 것을 멀리 나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천하를 이롭게 하였다.3)

《주역》의 이 말은 문명의 발달단계를 보여준다. 원시적인 사냥과 어로에서 농경으로 나아가고, 다시 배와 수레를 이용하여 물자를 교환하는 단계로 발전하는 모습이다. 이런 단계를 복희씨와 신농씨로, 그리고 황제와 요ㆍ순의 리더쉽의 결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원시 자연상태에서 고대문명이 열리는 시기를 상고(上古)시대라고 하며, 이 시대를 이끈 리더로 삼황오제(三皇五帝)를 설정하였다고 보는 게 옳다. 이들은 문명의 단계를 열었던 영웅이다. 서양처럼 신의 지위를 갖지는 못했으나 보통 사람과는 다른 불세출의 능력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들 지도자는 생김새부터 보통사람들과는 달랐다. 복희씨는 사람 얼굴에 뱀의 몸을 하고 있고, 신농씨는 사람 몸에 소의 얼굴을 하고 있으니, 확실히 보통사람은 아니다.

아무렴 그렇더라도 신보다는 인간에게 조금 더 가깝다. 이들은 수명이 있었고, -비록 오래 살기는 했지만- 수명을 다하면 죽었다. 서양의 프로메테우스나 예수처럼 영원히 죽지 않는, 죽어도 부활하는 그런 존재는 아니다. 그들은 분명 인간이었지만 보통의 인간과는 달랐다.

2. 세이렌과 오디세우스

그들(세이렌)은 자기에게 다가오는 인간들은 누구든 다 유혹해요.
……
그대는 얼른 그 옆을 지나가되, 꿀처럼 달콤한 밀랍을 이겨서
전우들의 귀에다 발라주세요.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말예요. 그러나 그대 자신은 원한다면 듣도록 하세요.
그대는 돛대를 고정하는 나무통에 똑바로 선 채 전우들로 하여금
날랜 배 안에 그대의 손발을 묶게 하되, 돛대에다 밧줄의
목소리를 듣게 될 거예요.4)

세이렌의 유혹은 치명적이다. 인간은 결코 그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세이렌의 유혹은 자연의 위협을 형상화한 것이다. 원시인들은 가뭄에, 홍수에, 때론 해충에, 맹수에 부지기수로 당하였다. 자연은 인간이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만 하는 형극의 장이었던 셈이다. 마치 세이렌에게 속수무책 끌려가야만 하듯, 인간은 자연의 위협에 굴복하여야만 하였다.

   
▲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율리시즈와 세이렌〉. 이 그림은 율리시즈(오디세우스의 로마식 표기)보다는 병사들, 병사들보다는 세이렌에게 더 큰 비중을 둔 것으로 보인다.

그랬던 인간이 드디어 세이렌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오디세우스와 그의 일행은 인간이 어떻게 세이렌의 유혹에서 벗어나는지를 보여준다. 이 신화는 인류가 원시자연 상태에서 문명단계로 진입하는 알레고리(Allegory)인 것이다. M. 호르크하이머와 Th. 아도르노는 이 신화에서 문명은 지배와 피지배의 분열, 노동하는 자와 노동하지 않는 자의 분업, 사유와 경험의 분리로 가능했음을 읽어낸다. 병사들은 눈 감고 귀 막고 부지런히 노를 저었다. 그들은 오디세우스가 지시한대로 차질없이 수행하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머리를 쓰고 병사들은 손발을 쓴다. 병사들이 보지도 듣지도 못한 채 노를 젓는 동안,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노래에 빠질 수 있었다. 이런 분업과 분리를 통해 인류는 자연의 위협에서 문명단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맹자(孟子)와 같은 시대에 허자(許子)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진 임금은 백성들과 함께 일하고, 함께 밥 먹으며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자의 제자인 진상(陳相)이 맹자에게 스승의 이런 사상을 설파하였다. 그러자 맹자는 말한다.

마음을 쓰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을 쓰는 자는 남에게서 다스림을 받는다.5)

누구는 머리를 쓰고, 누구는 몸을 쓴다. 머리를 써서 생각하는 사람은 지배자가 되고, 몸을 써서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은 피지배자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게 맹자의 생각이었다. 그러니 허자처럼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뒤섞여 분리되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는 것이다. 맹자는 이어서 말했다.

요(堯)임금 시대에, 홍수가 나고, 초목은 무성하고, 금수는 번식하니 백성들은 맘대로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금수에 잡아먹히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요임금은 이를 걱정하여 순(舜)을 기용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순은 익(益)을 시켜 산과 숲에 불을 질러 태워 버리니 금수가 도망가고, 우(禹)가 막힌 곳을 터주며 강물을 소통시키자 드디어 사람들이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일을 하느라 우는 8년 동안 밖에서 일하면서 집 앞을 세 번이나 지나가면서도 집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니 밭을 갈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것이다.6)

지도자들의 지혜와 헌신적인 노력으로 인류는 자연의 위협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를 고민하기에도 부족한 판에 농사지을 겨를이 어디에 있겠냐는 게 맹자의 생각이었다.

지도자들의 영웅적인 행동을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들의 살신성인(殺身成仁),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문명이 특정 개인의 창조물일 리는 없다. 문명은 분명 신이 내려준 선물도, 위대한 지도자의 성과도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신의 선물이 되고, 지도자의 공덕이 되는 걸까?

3. 자연의 신비

오디세우스 일행이 세이렌의 유혹에서 벗어나자 세이렌들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절벽에서 추락해 죽고 만다. 자연이 인간 앞에 정복당하는 알레고리이다. 자연은 이제 인간사회에서 저 멀리 떨어져 있다. 인간들은 산과 들에 불을 질러 금수들을 쫓아내고 그곳에 문명을 세웠다. 성을 쌓고 해자를 파며 거대한 도시를 만들었다. 도시는 문명의 총아이다. 이제 인류는 도시 안에서, 문명 위에서 안전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은 자연에서 멀어졌다. 인간은 더 이상 자연의 신비를 경험할 수 없게 되었다. 스스로 귀 막고 눈 감으며 문명을 건설한 결과 정말로 맹인이 되고 귀머거리가 된 것이다.

하지만 자연의 신비를 보고 듣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지도자이다. 오직 지도자만이 자연의 신비를 보고 듣는다. 사람들은 지도자가 전해주는 신비를 들으며 경탄할 뿐이다. 자연은 이제 지도자의 독점물이 되었다. 대부분의 인류는 문명의 혜택을 얻는 대가로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도, 자연의 빛을 볼 수도 없게 되었다. 다만 지도자가 가르쳐주는 대로 상상하면서, 두려워하고, 때론 그리워한다.

김문갑(철학박사,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주) ---------------
1) 아이스킬로스,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2) 아이스킬로스, 위의 책
3)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4)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5) 《맹자(孟子)》 〈등문공(文公)〉
6) 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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