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영화 ‘야곱신부의 편지’(2012)를 본 후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과연 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일까? 끝내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죽을 때 결코 후회하지 않게 될까? 하고 2시간 동안 걸으면서 진지하게 생각 했습니다.

‘야곱신부의 편지’의 야곱 신부는 삶의 목적과 현실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로서의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습니다. 그가 맡은 소명은, 신자들의 편지에 지혜로운 조언을 적어 답장을 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해 일을 하는 것인데, 그는 이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일은 삶의 목적이자 현실이었습니다.

아주 낡아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사제관은 비라도 오면 양동이를 이곳저곳에 놓아야 했으며, 노 사제가 먹는 음식이라곤 보기에도 딱딱한 빵조각뿐이었습니다. 거기다 말벗조차 없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이라곤 편지를 전해주러 오는 우편배달부뿐이었습니다.

레이라 라는 무기 징역수가 노신부의 조수로 왔을 때는 상황이 더 나빴습니다. 살인죄로 수감됐던 레이라는 마음만 먹으면 눈 먼 신부를 해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로 보일 정도로 거칠어 보이는 여자였습니다.

우편배달부가 레이라를 극도로 경계하면서 혹시나 레이라가 노신부를 살해하지 않았을까 하고 걱정돼서 몰래 사제관에 숨어든 것만 봐도 노신부의 상황이 무척 위험하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비가 새는 집에서 매일매일 딱딱한 빵조각을 먹으면서, 거기다 외롭기까지한데, 야곱신부는 행복했습니다. 난로 위에서 찻물이 끓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자신과 레이라를 위한 아침을 준비했는데, 그의 손놀림과 발걸음은 정확하고 안정돼 있으며 평화와 행복이 느껴지는 일상이었습니다.

살인죄를 저지른 경력이 있는 레이라가 왔을 때도 그는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레이라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의지했습니다. 자신의 전 재산도 레이라에게 공개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야곱 신부가 레이라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조금 놀라왔습니다. 나라고 하더라도 분명 우편배달부처럼 레이라를 경계의 눈으로 바라봤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그가 ‘나’라는 아상을 많이 극복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나’가 있는 이상은 상대를 구별하게 되고 나를 지키려고 모든 시스템이 가동되기 때문에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에 초연하고, 살인범에게조차 마음을 열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오른 야곱 신부를 보면서 정신적으로 상당한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경지였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물질에 초연하기 어렵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분별심을 갖지 않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신부는 이런 인간적인 약점을 초월한 사람이었습니다.

견고하고 대단하게 보였던 신부의 경지는 다음 순간 허무하게 무너졌습니다. 뜻밖의 상황에서 완전히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느 날부터 편지가 뜸해지더니 마침내 끊겨버린 것입니다. 그를 행복하게 하던 편지가 끊겨버리자 몹시 낙담했습니다. 그동안 보여주었던 밝음과 평화는 자취를 감쳤고 깊은 우울과 낙담, 심지어 정신까지 오락가락 하는 노인네로 전락했습니다. 밥도 안 먹고 침대에서 나오지도 않고,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고, 거의 폐인 수준으로 삶의 의욕을 잃었습니다.

야곱 신부의 삶의 목적은 사제로서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사제의 도움을 원하지 않게 됐고, 교회에는 신자 한 명 없고, 그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야곱신부는 편지를 기다리면서 내복차림으로 뛰어나왔다가 쓰러져 이 세상과 작별을 했습니다.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것과 그의 소멸이 함께 일어났다는 것은, 결국 삶이란 목적이 중심이 돼서 굴러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중심을 잃은 삶은 존립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야곱 신부는 사제로서의 사명에 가장 큰 삶의 의미를 두었었고, 그걸 마치자 이 세상으로부터 퇴장했습니다.

그런데 야곱 신부는 이 세상을 떠나기 전 편지를 통해 사람들을 구원했던 것처럼 레이라라는 불행한 여인을 구하면서 그의 마지막 일을 마쳤습니다. 세상에 완벽하게 거름이 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곱 신부가 평화와 행복, 자비심 등 좋은 성품을 많이 갖고 있다면 레이라는 반대입니다. 레이라는 세상을 삐딱하게 보았습니다. 감옥에서도 사람들과 단절된 채 자신의 어둡고 외로운 세계에 갇혀 있었고, 야곱 신부가 사람을 대할 때 마음을 여는 것과 달리 레이라는 경계심을 갖고 사람을 대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된 데는 많은 사연이 있습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학대를 받았습니다. 엄마는 무슨 이유에서지 모르지만 그녀를 자주 때렸습니다. 그때마다 언니가 구해주긴 했지만 그녀의 마음에는 불신과 반항이 자리 잡았고, 매우 거친 사람이 됐습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 유일하게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도와주었던 언니가 손버릇 나쁜 형부로부터 매 맞는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 모습에서 강한 분노를 느꼈던 레이라는 마침내 형부를 죽이고 살인자가 됐습니다.

레이라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을 죽인 사람도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한 채 12년을 살아왔습니다. 세상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 없고 갈 곳도 없는 레이라는 이 악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자살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레이라는 어느 날 석방돼 야곱신부의 조수로 오게 됩니다. 앞이 안 보이는 신부가 편지를 읽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고, 레이라가 할 일은 신부에게 편지를 읽어주고, 신부를 대신해서 답장을 써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사제관에 왔을 때 그녀는 당황했습니다. 세상을 삐딱하게 보고 분노로 가득 차 있던 그녀에게 야곱 신부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시시한 편지에 답장이나 쓰면서 엄청난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신부를 이해할 수 없어서 레이라는 성의 없이 답장을 썼습니다. 어떤 편지는 몰래 빼돌려 우물에 던져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편지가 끊긴 후 야곱 신부의 절망감을 본 후 야곱신부를 이해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야곱 신부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녀가 알던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돈을 빌려갔던 사람들은 갚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정직하게 돈을 갚았고, 우편배달부가 진심으로 신부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레이라는 사람에 대해 점점 마음을 열게 되고 세상을 따뜻한 곳으로 보게 됩니다. 편지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신부를 위해 가짜 편지 소동까지 벌일 정도로 그녀의 마음은 부드러워졌습니다.

레이라가 구원됐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두운 생각으로 꽉 차 있던 마음에 다른 사람에 대한 자비가 들어찬 것입니다. 레이라처럼 마음이 바뀌는 상태가 바로 구원이라고 봅니다. 레이라의 상황은 바뀐 것이 없지만 마음이 바뀜으로 인해 레이라는 한결 부드러운 표정을 갖게 됐고, 행복하게 보였습니다. 밖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죄인이었던 레이라는 신부와의 만남을 통해 구원된 것이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한 신부와 어둠 속에 갇혀있던 여인이 구원받는 얘기인 ‘야곱신부의 편지’는 연극처럼 몇 개의 장면만 나옵니다. 야곱신부와 레이라가 편지를 쓰는 자작나무 숲 장면과 빵과 커피를 마시는 사제관의 소박한 장면이 주요 일상입니다. 또한 레이라와 신부를 제외하고는 우편배달부가 전부일 정도로 출연진도 간단합니다. 그런데도 지겹지 않게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감독의 연출력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연출력과 연기력을 인정받아 카이로국제영화제, 산타바바라국제영화제, 만하임 하이델베르그 국제 영화제 등 전 세계 영화제 15개 부문에서 수상했습니다.

‘야곱신부의 편지’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끔 한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역할을 한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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