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공부하는 것일까? 아동기에는 아마도 신기하고 새로운 것들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본능적인 공부를 하게 되는 것 같고, 거기에 부모의 자연스런 욕심에 기반한 다양한 공부기회들이 여행이나 이른 한글 공부, 캠프 등의 형태로 주어지면서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억지로 공부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다가 유치원이나 학교 교육과정에 근거한 이른바 진도를 맞추는 수동적인 공부로 접어들면 공부하는 이유는 성적 올리기나 좋은 학교 진학 같은 외적인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다보니 우리 아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엄마의 공부하라는 강요가 되어 버렸고, 이렇게 오염된 공부라는 단어를 피하기 위해서 학습(learning)이나 교육(敎育)이라는 말을 일부러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대학이 직업교육기관으로 전락해가고 있는 세계적인 현상을 비판하면서 이득을 중심에 두지 않는 진정한 교양교육을 강조하는 미국 철학자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Not for Profit)』라고 의역한 경우를 들 수 있다. 역자는 오염된 공부란 말을 피하고 싶어한 것으로 보이고, 이때 공부는 단지 이득을 위한 수단적인 의미로 해석되었을 뿐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 만큼 우리 아이들은 엄청난 양의 시간과 정력을 ‘공부’에 쏟아 붓고 있다. 같은 유교문화권에 속하는 중국과 일본의 경우도 이른바 일류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극심한 경쟁을 겪고 있다지만, 유치원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시작되는 사교육 시장의 규모나 학교와 학원의 수업 시간을 합한 양에 있어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과거시험을 보기 위한 공부에만 매달리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송나라 시대의 주희가 자신이 운영하는 서원(書院) 방학 기간 중에 그들을 불러 모아 공간을 제공해주면서까지 진짜 공부의 과정을 끼워 넣고자 했던 중국의 사례나, 조선 중기의 남명 조식이 퇴계 이황에게 편지를 보내 당신 같은 어른이 앞장서서 젊은이들이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일갈한 우리의 사례를 보면 입시를 위한 공부 전통은 꽤 오랜 역사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은 우선 먹고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그 먹고사는 문제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공유하고 있는 숭고한 사명이자 살아있음 자체의 중요한 징표이기도 하다.

인류 문명이 자연과 거리를 벌리기 시작하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연 속에서 과일을 모으거나 짐승을 잡은 능력이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만 했다는 점이 인간의 특수성으로 추가되었을 뿐이다. 그 특수성은 점차 우리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본능 속에 공감과 협력의 능력까지 심화되어 왔다.
그런데 이기심에 기반한 공정한 경쟁만을 필요한 도덕의 최대치로 삼는 자본주의 사회가 되자 고립된 경쟁력만을 생존능력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20세기는 그런 점에서 이제 극복되어야만 이기심의 시대로 재평가되고 있다. 21세기는 공감과 협력이 중심이 되는 자비(慈悲)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는 명제가 짙은 호소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공부가 그 과정에 대한 역사적이고 내면적 성찰로 자리매김 되어야만 하는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인간의 식욕과 성욕 속에 자리하고 있는 이기심은 다른 인간과의 공감과 협력을 전제로 할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온전히 충족될 수 있다는 안목을 갖추는 과정이 곧 진정한 공부인 것이다.

현재의 맹목적인 경쟁력은 개인과 사회 모두 암울케 해

현재처럼 맹목적인 경쟁력 갖추기로서의 ‘가짜 공부’에 매진한다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 모두에서 암울할 수밖에 없다. 가끔은 학교와 학원에 치인 아이의 지친 눈망울을 마주하면서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서 먼저 ‘공부를 왜 하지?’라는 물음을 던져보아야만 한다. 그러다보면 아이들의 근사한 미래를 열어갈 실천적인 방법들도 자연스럽게 찾아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을 햇살이 눈부신 낙엽으로 떨어지는 동네 산책길을 우리 아이들 손 가만히 잡고서 나서고 싶은 서럽도록 아름다운 저녁이다.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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