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가요가 울려 퍼지고 시절 유행을 예고하는 젊은이들의 형형색색의 옷과 액세서리가 보는 이의 눈길을 잡아끄는 수원 팔달로 로데오거리. 젊은이들의 들뜬 열기로 가득한 로데오거리에서 한 발만 내지르면 도심수행도량 팔달사(주지 혜광 스님)를 만날 수 있다.

문[일주문] 하나 사이로 하루에도 수만 명의 사람들이 오고가는 로데오거리의 번잡스러움은 간데없고 산사의 고요만이 있을 뿐이다. 언제 이곳이 도심이었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아늑한 피안이 펼쳐진 것이다.
팔달사는 80여 년 전 비구니 홍법 스님의 원력으로 100여 평 규모의 ‘팔달암’으로 시작됐다. 지금에서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화성 성곽을 병풍 삼아 1500여 평 부지에 대웅전, 산신각, 조사당, 종각, 요사 등이 들어서고 각종 수목과 꽃들로 수놓아진 도심 속 전통사찰(1988년 75호로 지정)이 되었지만, 그 시작은 여느 도심사찰과 마찬가지로 미미했다.
팔달사의 변화는 범행 스님의 원력에 힘입었다. 기록에 따르면 1980년대에 범행 스님이 커다란 불사를 일으켜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데, 1982년 사찰의 정문인 일주문이 건립되었고, 위쪽 대지에 위치한 대웅전도 이 시기에 건립되었다. 1986년에는 범종이 건립되었는데, 범종각 역시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산신각에 모셔져 있는 석가모니후불탱화는 1989년에 조성되었다고 화기에 기록하고 있어 이 당시에 새로운 불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게 해주며, 역시 1989년에 조사당의 영정이 제작되어 이 당시에 조사당의 건립이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팔달사는 지금 불자의 마음을 다잡는 불사에 주목하고 있다. 은사 스님(범행 스님)의 원력으로 조성된 공간에 ‘불심 가득한 불자’들을 담고자 한 혜광 스님(팔달사 주지?제 3대 창건주)의 서원이 있었던 까닭이다.
2년 전 주지로 부임한 혜광 스님은 이미 주변 3층 건물을 사들여 ‘불교교양대학’을 개설?운영해 최근 1기 수료생을 배출했고 현재 2기 수료생을 모집하고 있다. 또한 여기에 덧붙여 올해부터 ‘불교문화?교양 강좌’도 개설해 불자 신행의 폭을 넓힐 예정이다.
“도심사찰은 불자들의 신심을 키우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 된
다”는 혜광 스님은 “불교의 모든 도리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지만, 보다 많은 중생과 함께 그 길을 가는 게 도심사찰의 소임이 아니겠냐”며 “팔달사가 수원의 중심 포교 도량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웅전
팔달사 경내 가장 위쪽에 앉아 수원 시내의 한 중심을 모두 내려다보게 하는 대웅전은 도리통 5간 양통 3간의 평면을 갖는 건물로, 철근콘크리트조와 목조를 조화롭게 결합시켜 지었다. 유독 크게 보이는 어간 옆으로 소슬빗꽃살 창과 심우도로 수놓인 외벽이 보였다.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다포형식의 공포가 청기와를 얻은 팔작지붕을 이고 있었다. 대웅전 불단에는 석가모니불이 모셔졌고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이 좌?우로 앉아 있었다. 화기에 의하면 “불기2526(1982)년에 조성?봉안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불단 좌우로는 벽화를 그렸는데, 석가모니의 일생을 6폭의 그림으로 그려 좌우에 각각 3폭씩 펼쳐놓았다.

산신각, 조사당
산신각은 조사당과 함께 대웅전 왼쪽에 앉아 있다. 따로 ‘산신각’, ‘조사당’이라는 현판을 달지 않아 초행자에게는 마치 요사로 인식되기 쉬운 건물이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산신각 초석은 원형초석을 사용했는데, 고대 건축에 많이 사용하던 쇠시리까지 두었다. 전면 창호는 유리를 주재료로 한 미닫이로 구성된 산신
각 내부에는 산신탱과 칠성탱이 있었다. 산신탱화는 목조에 양각의 기법을 이용해 조각했고, 그 위에 칠을 해 마감한 것이며, 칠성탱화 역시 양각의 기법을 이용해 만들었고 외부에는 금을 입혀 마감했다. 조사당은 ‘팔달암’을 창건했던 비구니 홍법 스님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범종각
팔달사는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구분되는데, 공간 사이에는 매우 큰 높이차가 있어 서로 공간이 연계되기가 어려운 특징을 갖고 있다. 이 두 공간을 서로 연결해주는 건물이 범종각이다. 높은 계단 상부에 중층으로 건립해 점이적인 공간을 만들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참배객을 상층 기단으로 안내하고 있다. 또한 매우 높게 솟은 범종각의 모습만으로도 강한 사찰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범종각 안에는 범종, 운판, 법고, 목어의 사물을 모두 봉안했다. 범종에는 ‘팔달산팔달선원(八達山八達禪院)’이라 크게 명기되어 있으며, 운판 역시 ‘팔달선원(八達禪院)’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전면에 해와 달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까치호랑이
팔달사 용화전 외벽에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만면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사중 스님은 “약 100여 년 전에 그려졌다”고 귀띔해주었다. ‘호랑이 담배피우는 그림’이라고 불리는 이 벽화는 토끼가 호랑이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호랑이는 나름대로 위엄을 갖춘 자세를 취한 듯하나 얼굴 표정에 배어나는 어수룩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고, 담뱃불을 붙여주는 토끼는 호랑이를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이 밝고 요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편집실/

부처님께서 포교를 떠나는 제자들에게 “한 길로 둘이 함께 가지 말로 따로 가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의 교법을 전하라”고『유교경』에 당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는 포교를 적극적으로 폭넓게 하라는 깊은 메시지기 담겨 있는 것입니다. 전법을 할 때는 위법망구(爲法忘軀)하겠다는 굳은 신념을 갖고 해야 되겠습니다. 불교 대중화를 위해서는 불제자들이 교리를 배우고 사상을 정립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라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정진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만이 불은(佛恩)에 보답하는 길이며, 불법을 만나 보람과 사명을 다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이 일은 누가 시켜서도 아니요 부처님과의 약속이며 평생토록 생명이 끝날 때까지 원력을 갖고 해야 될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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