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당시에도 오늘날 재가종무원과 유사하게 교단 내에서 회계, 관리, 요리, 조경, 판매 등을 비롯해 교단의 의식주 및 생활 전반에 관한 일들을 맡아 봤던 남녀 재가자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들 재가자가 승가의 도덕성과 위의를 유지토록 하는 대신 승가는 이들에게 정당한 보시금을 지급했음도 확인됐다.
효현(쌍문동노인복지센터 관장·사진) 스님은 최근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인 「초기불교 교단의 정인에 대한 연구」를 통해 대승경전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사분율』, 『십송율』 등 율장에는 자주 등장하는 ‘정인(淨人)’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그 결과 스님은 정인이 처음부터 존재했던 게 아니라 교단의 확장과 출가자들의 증가에 따라 등장한 것으로 승가 운영에 있어 출가자를 대신해 계율에 저촉되는 행위들에 대해 합법하게 해줄 필요성이 요구됨에 따라 생겨난 것이라고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정인(kapiya-karaka)은 ‘허물을 없애 깨끗이 해주는 사람’이란 뜻으로 율장에서는 사가인(寺家人), 집사인(執事人) 등으로도 불렸으며, 이들 정인이 없으면 당시 수행자들은 과일 하나도 먹을 수 없었고 약도 구할 수 없었으며 집도 지을 수 없었다는 것. 초기불교 교단에서는 출가자들이 분소의를 입고 걸식하고 나무 밑에 머무를 수 있었을 뿐 경제활동이나 노동, 요리 등을 할 수 없도록 계율로서 엄격히 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부처님이 승가의 생명을 도덕성과 검박함으로 보았고 수행자들이 세속인들과 똑같이 행동할 경우 세간의 지탄을 받을 뿐 아니라 자칫 탐욕과 분쟁으로 승가가 와해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효현 스님은 분석했다.
이런 까닭에 정인은 수행의 필수품을 제외한 모든 물품을 관리했고, 심지어 새 신발은 정인이 먼저 신도록 한 이후에 신을 수 있었으며, 병든 스님이 의약 값을 충당하는 것조차 정인을 시켜 비축해야 했다는 것이다. 특히 재가자가 돈이나 금?은을 보시할 경우에 수행자는 직접 받을 수 없으므로 정인에게 받게 해 이후에 필요한 것으로 바꾸어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수행자가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재가자가 수행자에게 보시한 밭, 집, 가게, 과일밭도 정인이 관리토록 했다. 수행자가 밭을 갈고 물건을 팔면 속인과 무엇이 다르겠냐는 비난이 일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이러한 정인 제도는 왕이 500명의 사람을 승가에 기부하면서 시작됐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승가 내에서까지 노비는 아니었다. 부처님이 승가에 노비를 둘 수 없음을 강력하게 천명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출가자들은 정인에게 옷과 약, 밥뿐만 아니라 정당한 품삯을 지불토록 했으며, 실제 『사분율』 등 율장에 다수 나타나고 있음을 효현 스님은 밝혔다.
또 수행자와 출가자의 대화법도 흥미롭다. 출가자가 무엇을 가리키면서 정인에게 “이곳을 파고 저 나무를 베십시오”라고 하는 잔인하거나 합법하지 않은 말(不淨語)은 곧 계율에 저촉됨으로 “이것을 아십시오, 이것을 보십시오”라는 우회적인 표현과 정어(淨語)를 써야만 했다.
이런 까닭에 때때로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필연적이었다. 출가자가 정인에게 물건을 잠시 맡겼지만 이를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생기고 귀중품을 보관하다가 정인이 가로채는 경우도 발생했던 것. 이럴 경우에 수행자는 “붓다께서 가르치심이 있고 정(淨)하게 하기 위해 그대에게 맡겼으니 마땅히 그 비구에게나 선지식이나 본래의 시주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라고 해야 한다.
만약 수행자가 여기에서 “내게 돌려주시오.” “그것은 내 것이오.” 등 방식으로 말을 하면 계를 어기는 게 된다. 또 이런 독촉도 계속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단 6회로 한정했고, 그래도 정인이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원래의 시주자에게 그 물건을 되찾아가도록 알리게 했다는 것. 만약 더 요구했다면 수행자는 니살기바일제(尼薩耆波逸提)로 대중 앞에서 참회해야만 했다. 당시 정인에게 가장 요구되던 덕목이 신뢰와 정직이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효현 스님은 “이들 정인은 출가자들에게 청정성, 투명성, 합법성을 가지게 했고 세속 사람들의 비난에서도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이라며 “당시 붓다께서는 승가의 위의를 지키는 동시에 승가의 타락을 막기 위해 수행자들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도 얼마나 깊이 고민을 했었는지 정인의 역할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이번 효현 스님의 정인에 대한 연구는 초기교단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라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초기불교에 나타난 출가자와 재가자의 의무사항은 오늘날 스님들과 재가종무원의 관계 정립에 있어 바람직한 기준이 되기에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형/법보신문 차장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